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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15] '플랫폼 리더'로 사는 법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팀원 중 한 명씩만 돌아가며 화장실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10분 이상 다녀오면 안 되고요. 변비라도 있으면 회사에 '변비 있으니 5분만 더 달라'고 말을 해야 허락해 줬습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직장갑질119’라는 시민단체에 접수된 제보 내용이다. 참담할 따름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가는 제품과 한 자리에 서서 그 나사만 조이는 노동자. 화장실 갈 새도 없이 온종일 나사만 조이던 그는 급기야 동그란 것만 보면 나사로 착각한다. 나사를 조이듯 뭐든 조이려는 강박적인 편집증마저 앓게 된다. 영화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다. 대공황 시대, 온전한 인격체가 아니라 한낱 생산수단 취급을 받았던 노동자의 슬픈 일상이다. 위 갑질 사례는 1936년 미국 대공황 시대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

 

직원을 도구로 여기기에 일어나는 비극이다. 내가 월급을 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천박한 사고의 결과다. 돈을 받는 사람은 돈을 주는 사람에게 간과 쓸개까지 빼주어야 한다는 천민자본주의적 인식이다. 그러니 직원을 때리고는 맷값이라며 돈을 뿌리고, 까라면 까라며 비행기를 돌린다. 오죽하면 직장인 퇴사 사유 중 1위가 ‘상사 갑질’일까. 미국 심리학자 미셸 매퀘이드가 직장인 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연봉 인상’보다 ‘상사 해고’를 원하는 직장인이 무려 65%에 달한다는 결과다. 내 연봉은 안 올려줘도 좋으니 저 ‘웬수’ 같은 상사 좀 처리해달라는 ‘을(乙)’들의 피 맺힌 절규인 셈이다.

 

많은 리더들이 직원을 길들이려 한다. 나에게 맞추라며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그들을 찍어 누른다. 직원을 도구로 바라보는 ‘도구적 직원관(觀)’ 탓이다. 도구는 생각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생각은 사람인 내가 하는 거다. 도구의 생각? 어불성설이다. 시키면 군말없이 하는 게 도구다. 오늘도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직장 내 리더의 포악무도한 갑질은 이래서 생겨난다.

 

지시를 내리는 보스에게 질문을 하는 부하. “언제부터 궁금한 게 이렇게 많아졌지?” 보스의 싸늘한 한 마디에 움찔하는 부하. 보스에게 질문은 금기다. 하라면 하는 거다. 도구가 감히 토를 달아? 폭력배 조직에서 구성원의 의미란 소모품에 불과하다. 대체품은 널려 있다. 얘가 다치면 쟤를 쓰면 되고, 쟤가 상하면 또 다른 애를 끌어들이면 그뿐이다. 그러니 배신이 횡행한다. 어차피 나도 쓰이다가 버려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삼국지’ 조조가 그랬다.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릴 수는 없다고. 조폭들도 삼국지를 열심히 읽었나 보다. 배신당하기 전에 먼저 배신한다. 갑질을 일삼는 ‘조폭 리더’에게 돌아오는 건 결국 배신의 칼날뿐이다.

 

초연결사회다. 모든 것이 연결된다. 적군과 아군의 경계도 사라진다. 애플이 망한다고 삼성이 잘되지 않는다. 구글이 잘된다고 애플이 망하는 게 아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 보면 모두가 얽혀있고 모두가 이어져있다. 초연결의 플랫폼 시대, 우리는 서로에게 파트너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수직적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던 직원 구조가 수평적 파트너 관계로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리더는 위에서 명령하고 팔로워는 밑에서 따르고. 이런 도식적 리더십을 고수하는 리더가 알아야 할 개념이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승객이 열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다. 출발하는 사람과 도착하는 사람이 교차하는 접점의 공간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모여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공간. 비즈니스에서의 플랫폼 개념이다. 쉬운 예로 시장이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한데 모여 서로의 이익을 위해 사고, 팔고, 흥정하고, 교환한다. 시장이 없었더라면 판매자는 판매자대로, 구매자는 구매자대로 힘들 수 밖에.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니 플랫폼은 이제 시공을 초월한다. 시야를 확장하면 구글도 플랫폼이고, 애플도 플랫폼이며, 아마존도 플랫폼이고, 페이스북도 플랫폼이다. 가까이는 네이버도 있고 카카오도 있다. ‘플랫폼 기업’ 전성시대다.

 

하지만 플랫폼에 대한 오해는 아직 많다. 단순히 검색엔진을 개발하거나 SNS 기능만 추가하면 플랫폼이 된다 착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플랫폼을 만든다는 건 조직의 비전과 비즈니스 구조를 새롭게 세팅하는 거다. 우리의 역량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고, 새로운 파트너와 상호윈윈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하는 거다. 플랫폼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이해를 중재하고 조정하는 ‘플랫폼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다.

 

바야흐로 플랫폼 세상. 직장도 플랫폼이다. ‘고객행복’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모인 참가자들이 목적 달성의 과정을 통해 각자의 성장과 발전을 빚어내는 플랫폼이 직장이다. 플랫폼은 지시와 명령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플랫폼의 존재이유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돌아간다. 직장이란 플랫폼에서도 이런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직원의 성장을 리더가 도와줄 때, 직원들의 자발적 헌신이 생겨난다. 월급 주고 일을 시켜 성과를 낸다는 건, 그래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갑질이 난무하는 권위주의적 조직문화는, 그래서 반(反)플랫폼적이다.

 

불자현 고명(不自見 故明) 불자시 고창(不自是 故彰).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니 오히려 빛나고, 스스로의 옳음을 고집하지 않으니 오히려 빛이 난다. 불자벌 고유공 (不自伐 故有功) 불자긍 고장(不自矜 故長).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니 오히려 공이 생겨나고, 스스로를 뽐내지 않으니 오히려 오래 간다. 도덕경 22장이다. 스스로를 고집하지 말라는 거다. 비우고 내려놓으라는 거다. 노자가 강조하는 역설의 리더십이다. ‘플랫폼 리더’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럼 조직의 성과는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고?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목적, 그 접점을 극대화하는 거다. 직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조직은 밀어주고, 조직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직원은 헌신하고. 조직의 비전과 존재이유를 토대로 한 공통의 이해관계 영역을 최대한의 크기로 키워내는 거다. 전제조건은 직원을 파트너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도구가 아니라 파트너로 대할 때 그들의 열정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플랫폼의 성공 메커니즘이다.


전망 좋은 임원실 방을 빼고 그 자리에 직원들의 휴게공간을 만드는 기업들이 생겨난다.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기업들도 많다. 개방형 공간과 폐쇄형 공간을 다양하게 구비하여 직원들이 선택하게 한다. 사무 공간 혁신이다. 조직 내 상명하복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간다. ‘플랫폼 조직’으로의 진화다. ‘플랫폼 리더’의 비움과 내려놓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자는 이어 말한다.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오직 다투지 않으니 세상도 그와 다툴 일이 없다. 다툼으로써 자신의 서열을 확인하려는 리더는 폭력 조직에나 어울릴 법한, 하수 중 하수다. ‘플랫폼 리더’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해야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함께 보면 좋을 영상 :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고객을 만든다 (안병민유튜브)

https://youtu.be/8TQRPbp1fQ8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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