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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16] ‘목적’이 빚어내는 ‘30년 열정’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을 배우도록 하겠다. 모두들 팔을 최대한 앞으로 뻗었다가 다시 뒤로 뻗어 보아라. 오늘부터 이 동작을 매일 열 번씩 반복하라. 이것을 자신과의 약속이라 생각하라. 할 수 있겠느냐?” 제자들은 그렇게 간단한 일을 누가 못하겠냐고 반문했다. 1년이 지났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1년 전, 내가 얘기했던 걸 지금도 실천하는 이가 있느냐?” 딱 한 사람만 번쩍, 손을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그대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훗날 대(大)철학자가 된 플라톤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끈기와 인내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만큼은 명징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 끝까지 한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끝까지 했고, 다른 이들은 중간에 포기했다. 과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간단하고 쉬운 과제를 꾸준히 하는 게 힘들어서다. 그러니 방점은 ‘한다’가 아니라 ‘끝까지’에 찍힌다. 끝까지 하는 게 포인트다. 우리는 그걸 ‘꾸준한 열정’이라 부른다.


부모 눈에 아이는 늘 부족하고 모자라기 일쑤다. 뭐가 됐든 꾸준히 좀 하면 좋을텐데, 왜 저럴까 싶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도 항상 얘기한다. "중요한 건 과정이야. 그러니 제대로 한번 물고 늘어져봐. 그래야 후회가 없지." 어느날 문득, 아내가 이야기한다. "당신은 학교 다닐 때 꾸준한 학생이었어요? 아니었잖아요. '잘하는' 건 운 좋게 재능을 타고나면 오히려 쉬워요. 그런데 '꾸준히 하는' 건 진짜 힘들어요. 당신도 그렇게 못해 놓고 왜 애들한테는 그걸 바래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 그랬다. 잘하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잘했으니 게으름 좀 피워도 됐지'가 아니었다. 꾸준히 하기 힘들었던 거다. 그래서 회피하고 도망쳤던 거다. 그럼에도 알량한 재주 좀 타고 났다고 그나마 곧잘은 했던 거다. 정작 힘들고 어려운 건 '꾸준히 하는' 거였다.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숙위차자 천지(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為此者 天地). 회오리 치듯 부는 질풍은 아침 한나절을 불지 못하고, 별안간 쏟아지는 폭우도 온종일 내리지 않는다. 이 모든 게 하늘과 땅, 자연의 섭리다.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天地尚不能久 而況於人乎). 천지 자연도 이처럼 오래 가기 힘들거늘,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도덕경 23장이다.


“누구나 때로는 열정에 휩싸인다. 그 열정이 누군가에게는 30분간 지속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30일간 지속된다. 결국 성공하는 사람은 30년간 열정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버틀러 브라더스 백화점을 설립한 미국 사업가 에드워드 버틀러의 말이다. 잠깐이야 누구든 할 수 있다. 문제는 꾸준함이다. 참아내는 인내다. 버텨내는 끈기다. 한결같은 열정이다. 하지만 노자마저 이렇게 ‘지속(持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니 나 같은 범인은 앞이 캄캄하다. 그래서 찾아낸 게 있다. ‘목적(目的)’이다. 어떤 일을 지속하려면 동력이 있어야 한다. 일의 목적이 그 동력으로 작동한다.


금연 11년차. 성공의 이면에는 수 십 차례의 실패가 있었다. 실패의 이유? 돌이켜 보면, 금연의 이유를 몰랐다. 그저 주변에서 끊으라니 끊어볼까 하는 정도? 어영부영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흔 인생을 살았으니 삶의 반환점을 돈 거라 생각했다. 남아있는 인생 후반전은 어떻게 살 것인가, 깊이 고민했다. 의미와 재미로 가득한 삶을 살겠다 작정했다. 그러다 보니 우선은 건강해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날 부로 담배를 끊었다. 뿌리 깊은 목적이 있으니 지속성이 확보된다. 그래서 가능했던 금연이다.


두 마리의 말이 있었다. 한 마리는 혜초스님을 태우고 머나먼 인도를 다녀왔다. 고대 인도의 다섯 국가를 돌아보고 썼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이 그렇게 세상 빛을 보았다. 또 다른 말 하나는 매일매일 방아를 돌렸다. 주인이 돌리라 하니 목적도 없이 그저 돌렸던 시간들. 두 말 모두 걸은 거리는 별 차이 없었다. 하지만 목적이 있었던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 목적이 없는 일에 열정이 생길 리 없다. 내 일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그 목적이 끈기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끈기의 필수요소? 그래서 목적이다. 목적이 뿌리다.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도(道)와 같아지면 도 역시 기꺼이 그를 받아들이고, 덕(德)에 동화되면 덕 역시 흔쾌히 그를 받아들인다. 도와 덕을 따르면 순리대로 되어질 거란 노자의 얘기다. 이 대목에서의 도와 덕이 경영이란 관점에서는 목적이 될 수 있겠다. 목적이 있는 일, 목적을 아는 일은 포기하기 쉽지 않다. 어떻게든 어려움을 이겨낸다. 목적이 곧 나의 사명이 되기 때문이다. 무얼 하든 이유를 알아야 하는 건 그래서다. 이유가 없는 일에, 이유를 모르는 일에 열정을 쏟을 이는 없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경영이란 그저 돈 버는 일로 전락한다. 돈은 내 일의 목적이 잘 수행되었을 때 따라오는, 선물 같은 결과다. 내 일의 목적을 실재화(實在化)하는 도전의 과정이 경영이다. 도와 덕을 따르듯 목적을 따르면 경영 역시 순리대로 되어진다.


세상을 호령하던 세계 챔피언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무명의 권투선수. 스파링 파트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불쏘시개 삼아 챔피언의 훈련에 봉사하는 일이라서다. 하지만 그는 참아냈다. 오랜 시간 챔피언의 연습상대가 되어주던 무명선수는 부지불식 간에 챔피언의 자세와 기술, 전술들을 터득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무명선수는 마침내 프로에 데뷔했고, 눈 부신 선전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맞붙은 챔피언과의 시합. 결과는 무명선수의 KO승이었다. 링 바닥에 쓰러진 챔피언에게 그가 말한다. “당신은 내게 최고의 스파링 상대였소.” 내 일의 목적이 명확하니 힘든 스파링의 과정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상대를 위한 스파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스파링이었기 때문이다. 일의 목적이 잉태한 끈기와 인내, 그리고 열정이다.


“가장 신경쓰인 경쟁사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거나, 저가 공세를 펼치는 회사들이 아니었어요. 무리한 경쟁은 지속할 수 없잖아요. 얼마 못 가 포기할 걸 알았거든요. 진짜 신경 쓰인 회사는 A사였는데 무리하지 않고 꾸준한 시도를 하더라고요. 자금도 많지 않으니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은 도전들을 계속 하더군요. 포기도 않고요. 가설이 맞으면 그런 꾸준한 시도가 시장을 크게 뒤집는 일이 생기거든요.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앞뒤 재지 말고 제발 좀 확 덤벼라’ 속으로 바랐지만 그러지 않더라구요.” 어느 CEO의 말이다.


분명한 가설과 목표를 가지고 일관되게 꾸준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A사의 리더도 도덕경을 읽었나 보다. 표풍(飄風)이 몰아치고 취우(驟雨)가 쏟아지는 ‘반짝 경영’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적에 맞춤하는 꾸준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목적’을 지향하는 ‘꾸준함’이 유효기간 30년의 열정을 빚어낸다. 이게 언젠가 일 낸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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