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자경영 17] 모든 위기는 자초한 위기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노자는 도덕경 전편을 아울러 비움과 내려놓음, 버림과 물러섬을 갈파한다. 세상을 등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내려놓아야 올라설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버려야 얻을 수 있고, 물러서야 나아갈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쪽 면만 봐서는 보이지 않는 천지 운행의 섭리다. 양쪽 면을 고루 봐야 보이는 우주 존재의 진리다. 그래서 도덕경은 역설적이고, 전복적이며, 입체적이다.


도덕경 24장의 메시지도 궤를 같이 한다.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 기자(企者)는 높이 발돋움하는 사람이다. 과자(跨者)는 멀리 타넘는 사람이다. 높이 발돋움하는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멀리 타넘는 사람은 제대로 갈 수 없다. 자견자불명 자시자불창(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자기의 관점을 고집하는 이는 현명할 수 없고, 자기만 옳다 고집하는 이를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자벌자무공 자긍자부장(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스스로 자랑하는 이는 오히려 공이 없고, 스스로 뽐내는 이는 오래 갈 수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나아가라는 얘기다. 공명과 자만에 사로잡혀 욕심내지 말라는 얘기다. 수 천년 전 노자가 남긴 이 문장은 오늘날의 경영 리더에게도 유용한 길라잡이다.


1962년, 허츠(Hertz)는 미국 렌터가 업계 압도적인 1위였다. 반면 에이비스(Avis)는 수 년 연속 적자 상태의 작은 업체. 광고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에이비스의 ‘넘버2’ 캠페인은 이때 시작되었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합니다(Avis is only No.2 in rent a cars. So we try harder).”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던 허츠의 위상을 깨끗이 인정하고 2등을 자처했다. 이 광고로 에이비스의 매출은 수직상승한다. 1등을 지렛대 삼아 2등 자리를 확실한 내 것으로 만든 영리한 전략이었다. 허츠와 함께 미국 렌터카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로 올라선 에이비스는,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어디 그런가. 에이비스는 2등에 만족할 수 없었다.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런칭한다. “에이비스는 1위가 되려고 합니다(Avis is going to be No.1).” 결과? ‘확고한 2위’라는 고객인식을 얻었던 에이비스는 순식간에 ‘허풍쟁이’’로 전락했다. 성공에 취해 ‘2등’이라는, 우리의 성공 이유를 잊어버린(Forget what made them successful) 거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언콜라(Uncola)’ 캠페인으로 광고업계 또 다른 레전드로 회자되는 세븐업(7up)이다. 잘 나가는 콜라를 지렛대 삼아 ‘콜라 아닌 콜라’로 성공적으로 고객의 머릿속에 안착한 세븐업 역시 욕심을 부린다. 그래서 나온 다음 광고가 이거다. “미국은 이제 세븐업을 향한다(America’s turning 7up).” 세븐업의 공허한 희망사항이었다. 노자가 경계했던 ‘기자(企者)’와 ‘과자(跨者)’의 어리석음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저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강한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5단계로 설명한다. 먼저 1단계다.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다. 성공에 도취되어 성공의 이유를 잊어버린다. 운과 실력을 구분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자만에 빠진다.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낸다면 2단계다. 자기통제와 규율이 사라진다. 적절한 인재를 핵심 자리에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지나친 욕심으로 선을 넘는다.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방치한다. 성장이 어려운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한다. 3단계는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다. 외부 성과가 아직은 그다지 나쁘지 않기에 내부의 경고 신호는 무시된다. 위기는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치부된다. 부정적 데이터는 축소되고 긍정적 데이터는 과장된다. 사실에 근거한 투명하고 활발한 소통은 사라진다. 4단계는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다. 가파른 하락세가 뚜렷하다. 사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책을 찾느라 마음이 급해진다. 카리스마로 무장한 구원투수가 등장한다.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다.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단계가 5단계다. 거듭된 실책으로 모든 희망은 사라진다. 경영진이 퇴출되고 조직은 쪼그라든다. 최악의 경우, 회사는 문을 닫는다. 짐 콜린스가 말하는 기업 몰락의 5단계다.


모토로라는 1990년대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스타텍’이라는 불세출의 모델이 공전절후의 히트를 기록했다. 경영진은 기고만장했다. 하지만 영원한 강자는 없다. 세상 변화는 상수다. 디지털로의 무게중심 이동.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한 모토로라는 디지털의 위협을 무시했다. 4,300만 명의 아날로그 고객이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가? 모토로라는 자만했다. 경쟁사들은 야금야금 시장을 잠식했다. 급기야 노키아가 휴대전화 부문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은 1999년 17퍼센트로 급락했다. 2001년 모토로라의 직원은 14만 7천명. 2003년 말 그 수는 8만 8천명으로 줄었다. 그토록 흥성했던 모토로라의 망쇠 원인은 명확하다. 환경독해력의 부재.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니 세상 변화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크고 작은 전투의 승패를 가른 것도 결국은 오만과 과욕이었다. 상대를 얕보다 패퇴했다. 스스로를 과신하다 몰락했다. 멈추어야 할 때를 알고 멈추어야 했거늘 그러지 못해 대사를 그르쳤다. 지금껏 성공가도를 달려온 내 앞길에 실패가 있으랴? 성찰의 부재가 빚어낸 착각이었다. 조조와 유비도 이런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


천하의 인재를 끌어모으며 차근차근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던 조조. 원소를 상대로 한 관도대전의 승리로 북방을 평정한다. 내친 김에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욕망으로 강동 정벌에 나섰다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궤멸적 타격을 입는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20년이 넘도록 숱한 전쟁을 치뤄왔지만 이렇게 굴욕적인 패배는 처음이다.” 조조 스스로 인정한 참패 중 참패였다. 초극강의 압도적 세력이었던 조조의 적벽대전 패배는 위, 촉, 오 천하삼분지계의 서막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관도대전, 적벽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전투 중 하나인 이릉대전은 촉한의 황제에 오른 유비의 과욕이 불러일으킨 패전이다. 오나라의 공격으로 관우가 전사하고 형주마저 잃은 유비. 제갈량을 비롯한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일으켜 오로 진군한다. 초기 유비의 군세는 굳건했다. 오의 군사 육손은 지구전을 펼치며 촉군의 기세가 지치길 기다린다. 그러던 중 촉군의 허를 찌른 오군의 대대적인 공세. 결과는 유비의 대패였다. “내가 육손에게 좌절과 모욕을 당했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닌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유비의 한탄.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후였다.


천하를 집어삼킬 기세의 조조가 패배했던 적벽대전과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일격을 맞은 유비의 이릉대전에는 공통점이 있다. 조조와 유비 공히 일생을 통틀어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보유했을 때라는 점이다. 생의 정점에서 승리를 당연하다 여기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전투에서 그들은 대패했던 거다. 성공에 취하니 물불을 가리지 못한다. 성공의 이유를 잊어버린다. 성공의 덫이다.


환경 탓 할 것 없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는 결국 나 하기에 달려 있다. 절제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자기성찰이 관건이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했다. 소는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고 우직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다. 그렇게 천 리를 간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자경영 16] ‘목적’이 빚어내는 ‘30년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