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자경영 18] 경영? 스스로 그러하게!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인간은 땅으로부터 먹을 것을 얻는다. 곡식을 얻고, 채소를 얻고, 고기를 얻는다. 그러니 사람은 땅을 근거로 산다. 땅은 하늘에 따라 변한다. 하늘의 운행에 따라 사계절이 바뀌며, 하늘의 운행에 따라 지형이 바뀐다. 그러니 땅은 하늘을 근거로 삼는다. 하늘은 우주 존재의 원리이자 법칙인 도(道)를 근거로 삼는다. 그 도는 자연(自然)을 따른다. 그래서 노자형님이 얘기했다.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 즉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도덕경 25장이다.


오해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여기서의 자연은 산, 강, 바다, 동물, 식물, 비, 바람, 구름 등을 가리키는 자연(nature)이 아니다.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현상 또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우주의 질서나 현상을 말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자연 역시 이런 의미다. 인위적인 개입이나 작위적인 조작 없이 존재하는 ‘스스로 그러함’이다.


그저 하늘에 순응하며 천명(天命)을 따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인식에 반기를 들고 ‘하늘로부터의 인간 독립’을 선언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공자와 노자였다. 공자는 천명 대신 ‘인(仁)’을 주장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천명때문이 아니라 했다. 인이 있기에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거라 했다. 인을 잘 유지하고 갈고 닦기 위한 수단과 절차로 공자는 예(禮)를 강조했다. 욕심을 버리고 예로 돌아갈 때 인이 극대화된다는 거다. 극기복례(克己復禮)다.


천명을 대체하는 개념을 ‘인간’에게서 찾은 공자와 달리 노자는 ‘자연(nature)’을 천착했다. 자연은 사람이 정해놓은 규칙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정해놓은 규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때가 되면 해가 떴다 때가 되면 해가 진다. 때가 되면 싹이 났다 때가 되면 잎이 진다. 낮과 밤의 변화가 그러하고, 여름과 겨울의 변화가 그러하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다. 자연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노자가 말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天地不仁)고. 가뭄에 목말라하는 대지를 위해 하늘이 비를 뿌려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저 비 올 때가 되어 비가 내린다는 얘기다. 노자의 시선은 이처럼 인간의 주관을 넘어 자연의 객관을 향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주관적 틀을 뛰어넘기에 자연은 변화무쌍하다. 이럴 때는 이러해야 하고 저럴 때는 저러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규범을 벗어나기에 자연은 자유롭다. 자연은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변한다. 저절로 그러하기에 자연은 투명하고 보편적이다. 자연의 객관성이다. 저절로 그러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경영혁신의 지혜 역시 크고 깊다.


첫째, ‘스스로 그러함’에는 ‘중앙’이 없다. 자연에는 권력을 가진 자가 따로 없고, 권력을 뺏긴 이가 따로 없다. 그러니 중앙도 없고 변방도 없다. 모두가 중앙이고, 모두가 변방이다. 지시와 명령이 없으니 복종과 굴종 또한 없다. 저마다의 속도와 저마다의 방향으로 그저 굴러갈 뿐이다. 모두가 주인인 셈이다.


노자의 ‘자연’ 개념은 작금의 비즈니스 현장과 오롯이 부합한다. 비트코인은 국가권력에서 벗어난 최초의 화폐다.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정하는 게 아니다. 모든 거래 기록을 개인에게 분산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지만 모두가 관리하는 화폐,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여기에 있다. 중앙집권형 시스템의 미래형 대안. 요컨대, 블록체인이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을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다. 불록체인의 철학적 기반은, 그래서 탈(脫)중앙화다. 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에 따라야만 했던 사람들이 직접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키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거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 판단한 각국 정부들은 암호화폐를 제도권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암호화폐의 판정승이다. 중앙에 대한 변방의 판정승이기도 하다. 중앙은 명령하고 변방은 따르던 건 옛날 얘기다. 중앙과 변방의 수직적 개념은 사라졌다. 네트워크로 이어진 수평적 동반자 관계다. 리더와 직원의 관계가 그렇고, 기업과 고객의 관계가 그렇다. 중앙에서 변방으로의 권력 이양이 비즈니스의 성공 관건이다. 직원과 고객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나의 비즈니스 또한 빛을 발한다.


둘째, ‘스스로 그러함’에는 ‘기준’이 없다. 대형마트 주류 코너. 수많은 종류의 맥주가 우릴 반긴다. 대형 브랜드 맥주뿐만 아니다. 작은 양조장이 빚은 수제맥주도 한가득이다. 예전 같으면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을 중소 브랜드들이다. 강서맥주, 전라맥주, 제주맥주 등 톡톡 튀는 지역 맥주도 인기다. 사정이 이러니 대기업 자본도 중소 브랜드로 흘러 든다. 맥주만 그러랴. 독립잡지도 강세다. 사진 잡지, 음악 잡지, 음식 잡지, 도시 잡지 등 주제도 다양하다. 특정 분야 특정 주제만 들입다 판다. 자기만의 확고한 전문성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남들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만의 취향을 고수하는 사람들. 그들이 이들 잡지의 독자다.


“나는 검은 피부색의 여성이 결코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세상에서 자랐다. 오늘로 그런 생각을 끝내야 한다.” 2019년 미스 유니버스에 빛나는 남아공 출신 조지비니툰지의 말이다. 피부색으로 정의하던 미(美)의 기준은 해체되었다. 색깔이 다르다고 구분되어야 할 것은 빨랫감뿐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핀란드 내각은 19명의 인원 중 총리를 비롯해 12명이 여성이다. 정부의 고위공직자가 반드시 남자여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맡을 수 있는 자리다.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중년의 남성들만 전유했던 고위 공직 역시 그 적임의 기준이 무너지고 있다. 젊다고, 여자라고, 장애인이라고 고위공직 못 하란 법 없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르던 기준의 붕괴. 마이너 전성시대다.


셋째, ‘스스로 그러함’에는 ‘구분’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주관적 시선은 대상을 구분하기 바쁘다. 분별의 지혜라며 해와 달을 구분했고, 불과 물을 달리 봤다. 자연은 다르다. 여름에는 물이었다 겨울에는 얼음이 된다. 봄에는 씨앗이었다 가을에는 열매가 된다. 달라 보이지만 뿌리를 캐어보니 다르지 않다.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것이라는 구분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과 저것을 이어 붙이는 상상과 창의가 각광받는 세상이라서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인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변화무쌍한 세상이라서다.


고정좌석을 없애고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의 자리, 너의 자리라는 고리타분한 구분의 틀을 깨니 효율이 올라간다. 상황에 맞추어 적합한 자리를 선택할 수 있으니 효과 만점이다. 이렇게 얽히고 저렇게 섥히니 결국은 하나다. 둘이 아니다(不二). 그러니 다르지 않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연결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는 그렇게 빚어진다. 크로스오버와 하이브리드 개념의 부상이다. 커피맛 콜라와 라면맛 감자칩은 그래서 인기다. 씨줄과 날줄이 서로 엮여야 제대로 된 천이 나온다. 문과와 이과의 칸막이를 허문 것도 그래서다. 새로운 시대에 맞춤하는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산업화 시대의 ‘반쪽 인재’로는 새로운 세상을 리드할 수 없어서다.


‘스스로 그러함’에는 이처럼 ‘중앙’이 없고, ‘기준’이 없고, ‘구분’이 없다.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변화고, '전체'에서 '개별'로의 변화고, '단절'에서 '연결'로의 변화다. ‘애자일 경영’이 화두다. 애자일(agile)은 ‘민첩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다. 재빨라야 급격한 세상 변화에 제 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려면 유연해야 한다. 세상 만물 제 각각의 변화를 품어 안는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기에 유연하다. 노자의 자연에서 경영의 지혜를 찾아 읽는다. 비즈니스 리더라고? 당장 도덕경부터 톺아읽을 일이다. 자연이 스승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자경영 17] 모든 위기는 자초한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