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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19] 동물원이 아니라 정글로!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장군임에도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먹고 입었다. 잠을 잘 때는 자리를 깔지 않았고, 행군을 할 때에는 수레를 타지 않았다.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병사 중에 종기로 고생하는 이가 있었다. 장군은 거리낌없이 병사의 종기 고름을 입으로 직접 빨아 낫게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대성통곡했다. “예전 애 아버지가 종기로 고생할 때 그 장군이 고름을 빨아주었다. 그 은혜에 보답코자 애 아버지는 싸움터를 지키다가 전사했다. 그 장군이 우리 아이의 상처도 빨아주었다 하니 이제 아이마저 잃게 될까 두렵다.” 일흔 여섯 번의 전투에서 예순 네 번을 승리했다 하는, 중국 전국시대 최고의 병법가 오기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리더는 먼저 먹는다. 자신의 지위를 책임이 아니라 권리로 여겨서다. 하지만 진짜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모두가 먹고 난 뒤 자신의 수저를 든다. 그런 리더를 사람들은 진심으로 따른다. 그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어디든 앞장설 각오가 되어 있다. 잘 되는 조직의 모습이다. 그러니 리더라면 내려가야 한다. 리더라면 낮추어야 한다.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밝음을 알면서도 어둠을 감수하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천하의 모범이 되면 덕(德)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계 없는 궁극의 상태로 돌아간다.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영예를 알면서도 치욕을 감내하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영원한 덕이 가득하다. 소박한 바탕으로 돌아간다. 도덕경 28장이다.

 

좋은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모두가 좋은 것을 좇는다. 하지만 반대로 향하는 이가 있다. 모두가 좋고 높고 밝고 귀한 것을 좇을 때 홀로 낮은 데로 임한다. 몰라서가 아니다. 알지만 그리 하는 거다. 노자는 그걸 천하의 모범이라 했고, 모든 걸 품어안는 천하의 골짜기라 했으며, 세상의 덕이라 했다. 오기의 사례가 그러하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언해 서문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가 담겨있다. 요컨대, 우리 말에 부합하는 우리의 문자가 없어 의사소통에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드신 거다.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주는 마음, 긍휼감이다. 시선의 높이를 백성에게 맞추니 그들의 고통이 보인다. 구중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며 나만 챙겼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생각이다.

 

리더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야 한다. 그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려선 안 된다. 내가 먼저 내려가야 한다. 소통과 공감은 리더가 몸을 낮추는 그 지점에서 빚어진다.

 

귀천과 영욕의 구분을 넘어 낮은 데로 임하라는 노자의 얘기는 '리더의 희생과 솔선수범'이란 교훈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각의 고리를 이어가다 보면 위에서 아래로의 이동은 개념에서 실재, 이론에서 현장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으로도 읽힌다. 저기, 허공에 떠 있는 개념과 이론의 성(城)에서 탈출하라는 얘기다. 여기, 발 딛고 선 대지의 실재와 현장을 단단히 거머쥐라는 얘기다.

 

비즈니스 또한 현실이다. 교과서 속 이론이 아니다. 리더의 눈이 실재를 따져야 하는 이유다. 현장을 좇아야 하는 이유다. 번듯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는 고객의 현실을 알 도리가 없다. 야생에서 살아 숨쉬는 동물을 보려면 동물원에 갈 일이 아니다. 정글로 가야 한다. 고객의 일상 역시 보고서 안에 있지 않다. 현장에 있다. 마케팅의 본질은 고객의 고통과 고민, 고충을 해결해줌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거다. 현장에 서서 고객의 눈높이로 바라볼 때 그들의 아픔이 보인다. 수행 기사가 운전하는 대형 고급 세단 뒷자리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고객의 일상이다.

 

선진국에서 히트한 상품을 다운그레이드(downgrade)하여 신흥국에 파는 것. 글로벌 기업들의 일반적인 전략이었다. 100의 성능에 100의 가격을 가진 제품을 70 성능으로 낮추어 70 가격으로 파는 거다. 하지만 이런 전략으로는 번번이 실패다. 신흥국의 부유층에게나 통하는 전략이라서다. 다수를 차지하는 신흥국의 중산층이나 빈곤층에게는 외면받는 전략이라서다. 신흥국 고객의 현실은 선진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이 구매할 수 있는 금액으로 판매해야 한다. 예컨대, 50 성능의 제품을 10 가격으로 파는 거다. 이런 제품은 신흥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고객에게도 매력적이다.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전해지던 혁신의 방향이 그렇게 바뀐다.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 이름하여 역(逆)혁신이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가 제창한 이론이다. 그동안 무시되거나 외면받았던 신흥국의 저소득층 시장이 새로운 혁신의 원천으로 떠오른 셈이다.

 

프리미엄급 초음파 심전도 기기를 앞세워 인도 시장을 공략한 GE헬스케어. 결과는 대실패였다. 넘 비싸서였다. 인도 현지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GE헬스케어는 제품 사양을 최소화했다. 적색과 녹색, 두 개 버튼만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무게도 줄여 휴대가 가능토록 했다. 가격은 대폭 낮추었다. 중저가의 실용적 초음파 진단기기의 탄생이었다. 심전도 진단 비용이 획기적으로 떨어지자 환자들은 기꺼이 병원을 찾았고,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도에서 싹을 틔운 혁신이 인도를 넘어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간, 대표적인 역혁신 사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진출을 시도한 리바이스 사례도 흥미롭다. 선진시장의 경기 부진과 동아시아 신흥시장의 부상에 따른 결정이었다. 고가 제품으로 중국 진출을 시도한 리바이스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구인의 체형을 기준으로 한 리바이스 제품은 상대적으로 엉덩이가 작고 다리가 짧은 아시아인의 체형과 맞지 않았다. 리바이스는 심기일전했다. 디자인과 가격을 완벽하게 현지에 맞춘, 가성비 만점의 새로운 브랜드 데니즌을 런칭했다. 브랜드 본사도 홍콩에 두었다. ‘Made for China.’ 이론이 아니라 현장을 겨냥하니 시장이 반응한다. 데니즌은 중국을 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뻗어나갔다. 금융위기에 내몰린 미국 소비자들도 데니즌에 열광했으니 이 또한 역으로의 혁신이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의 시사점은 딴 거 없다. 상대를 톺아보라는 거다. 내 식에 맞추어 내 맘대로 재단하지 말라는 거다. 신흥국 역시 선진국과 비슷한 패턴으로 발전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경제적 수준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종교, 인구, 언어 등 모든 조건이 다르다. 발전 양상 또한 다르다. 노자 식으로 말하자면, 저 멀리 위에서 내려다보지 말라는 거다. 내려와서 눈높이를 맞추라는 거다. 개념과 이론을 벗어 던지고 실재의 현장으로 몸을 던지라는 거다. 현장을 모르는 리더의 성공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 낮추어야 한다.

 

도덕경에서 경영을 읽는다. 도덕경에서 마케팅과 세일즈를 읽는다. “지상에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더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움직임은 무의미해진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 그도 도덕경을 읽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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