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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20] 프로크루스테스는 꼰대였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그러니까, 그날 아침이 문제였다. 김 대리가 지각을 했던 그 날 말이다. 평소 주어진 업무는 곧잘 처리하는 친구였다. 물론 살다 보면 지각을 할 수도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기분 탓이었을까. 표정에 미안함이 보이지 않았다. 외려 당당한 느낌이었다. 다소 황당한 마음이었지만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는 업무에서 사달이 났다. 거래처로부터 걸려온 전화. 담당자인 김 대리가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단다. 거래처의 오해일까? 그래도 할 수 없다. 부서장으로서 강조했던 이슈였다. 삐죽이 튀어나온 입을 보니 김 대리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눈치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업무 태도 또한 불성실해 보였다. 김 대리를 불러 두 번이나 면담을 했다. 그런데 웬걸, 김 대리는 부서장인 내 기대와는 달리 점점 더 삐뚤어졌다. 지각 횟수도 늘어났고, 회의시간에는 내 의견에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업무에 대한 열정도 식은 지 오래였다. 아무리 봐도 작년의 호실적은 우연이거나 요행이었다. 우연이나 요행은 반복되지 않는 법. 매처럼 정확한 나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다. 올해의 김 대리 평가점수? 저 정도라면 C도 아깝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 부장은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작년 우수사원 표창까지 받았던 김 대리에 대한 이 부장의 평가는 싸늘하기 짝이 없다. 급전직하다. 인시아드의 장 프랑수아 만조니 교수는 ‘필패신드롬(set-up-to-fail syndrome)’으로 김 대리의 추락을 설명한다. 리더의 시각에 따라 유능한 직원도 순식간에 무능한 직원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거다. 리더의 의심이 멀쩡한 직원을 문제직원으로 만든다는 거다. 확증편향 탓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인지적 편향 말이다. 

 

직원의 문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리더의 개입은 상사의 감시와 통제를 강화시킨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는다 생각한 직원은 주체성을 잃어버린다. 영혼 없는 직원의 반응은 리더의 기대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직원이 문제라는 리더의 판단은 확신으로 바뀌고, 직원은 결국 악순환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한번 찍히면 끝인 거다.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많은 이들이 겪었을, 익숙한 광경일 터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리더의 ‘답정너’ 사고방식은 애꿎은 김 대리만 코너로 몬다. 열정 넘치던 인재 김 대리가 문제직원으로 추락한 이유다. 명장 밑에 약졸 없듯 문제직원 뒤에는 문제리더가 있다. 

 

‘아시인구(我矢人鉤)’라는 말이 있다. 나는 화살처럼 곧은데, 남은 갈고리같이 굽었다는 뜻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너가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맞고 틀림’의 기준. 알량하기 짝이 없는 그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고 세상을 재단한다. 노자는 이를 ‘유위(有爲)’라 했다. ‘무위(無爲)’를 강조한 건 그래서다.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천하는 신령스러워 의도적으로 뭔가를 하려 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억지로 해보려 하다가는 오히려 실패하게 되고, 억지로 잡으려 하다가는 오히려 놓치게 된다. 도덕경 29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유위’의 한계다. 세상만사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없다.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를 우격다짐으로 끌어오니 여기저기 삐걱대며 균열이 생길 수밖에. 내가 가진 마음 속 틀(Frame) 때문이다. 아집으로 지어 올린 경험의 감옥이다. 과거의 부산물로 채워 만든 지식의 감옥이다. 무위는 이 감옥을 깨부수는 거다. 여기서 탈출하는 거다. 비우라는 얘기다. 놓으라는 얘기다. 버리라는 얘기다. 확증편향에서 시작된 조직 내 필패신드롬을 극복하는 길이다. 

 

‘애자일경영’이 대세다. ‘애자일(Agile)’은 민첩하다는 말이다. 짧은 주기의 다양한 실행을 통해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애자일경영의 골자다. 고객의 요구를 반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거다. 핵심은 어제의 정답에 집착하지 않는 거다.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경영문법에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어제와 단절하고 새로운 오늘에 접속해야 한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으로부터 탈출하라는 노자의 '무위'와 21세기의 화두 '혁신'은 이렇게 연결된다.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과거라는 고루한 성에 갇혀있는 꼰대적 사고방식은 혁신의 걸림돌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역량파괴적 환경변화의 시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얘기는 혁신의 발목을 잡는 저주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게 리더다. 

 

“저는 두 가지 경우일 때 타격폼을 바꿨어요. 실패했을 때와 최고일 때였습니다. 안주하고 싶지 않았고, 최고였을 때 더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이승엽 선수의 말이다. '어제의 나'를 버려야 '오늘의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셀프 업데이트(Self Update)’를 위한 자기와의 단절이다. 버려야 할 자기는 아집으로 똘똘 뭉친 자기다. 자기확신에 가득 찬 자기다. 아집과 확신은 딱딱하다. 유연할 수 없다. 유연해야 생명이다. 혁신의 출발점은 유연함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도적이다. 길 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여 유혹한다. 누구에게나 맞는 침대가 있다며 손님을 눕힌다.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잘라 죽였다.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늘려 죽였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답정너’의 은유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다. 내 기준만 고집했던 꼰대의 말로다. 

 

변동성(V)과 불확실성(U), 복잡성(C)과 모호성(A)이 가득한 '뷰카(VUCA)' 세상이다. 리더의 역할이 실험이어야 하는 이유다. 실패하더라도 감수할 수 있을 만한 작은 실험들. 해보고 되면? 한 발 더 나아가는 거다. 해보고 안 되면? 물러서서 방향을 돌리는 거다. 시시각각 과녁은 움직인다. 옛날처럼 조준하고 발사하면 안 맞는다. 발사하고 조준해야 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영점을 맞추는 거다. 한 방에 시장을 놀라게 할 완벽한 제품은 없다. 무수히 작은 실험들의 연속이 혁신으로 이어진다. 애자일경영이란 그런 거다. 

 

변화의 속도가 느리던 시절에는 과거의 방식이 유효했다. 지금은 아니다. 오전의 정답도 오후엔 오답이 된다. 경쟁력이었던 경험은, 그래서 이젠 감옥이고 족쇄다. ‘나’라는 족쇄를 끊고, ‘나’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 그게 무위다. 이천 년 전 노자가 얘기했던 무위는 그래서 창의요 혁신이다. 확신만큼 위험한 게 없다. 비우고 버려야 진실이 보인다. 리더라고? 나부터 내려놓을 일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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