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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21] 어벤져스, 그들은 '함께'였다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역대 외국영화 최고 관람객수를 기록한 ‘아바타’를 넘어섰다. 1,400만명이 보았으니 가히 열풍, 아니 태풍이었다. 2019년 개봉했던 수퍼히어로 영화 <어벤져스 : 엔드게임> 얘기다. 어벤져스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 ‘협력’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지금껏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은 하나였다. 슈퍼맨이 그랬고, 배트맨이 그랬고, 원더우먼이 그랬고, 스파이더맨이 그랬다. 지금은 아니다. 하나가 아니라 떼로 몰려나온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웅들이 저마다의 무기와 능력으로 합을 맞춘다. 아이언맨을 비롯하여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호크아이, 블랙위도우 등 주연급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어벤져스는 그 결정판이다.

 

지금껏 역사 발전의 견인차는 ‘경쟁’이었다. 자원은 늘 희소하다. 소수만 누릴 수 있으니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필연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이니 필사적일 수밖에.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경쟁의 DNA다. 그런 경쟁을 통해 세상은 발전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남들을 앞지르겠다는 생각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세상만사 어김없이 작동한다.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경쟁도 일정 수위를 넘어서니 부작용이 생긴다. 첫째가 ‘망각’이다.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 잊어버리는 거다. ‘이기는 것’에만 혈안이 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유를 모른 채, 이기려고만 하니 방향이 흔들린다. 목적지를 잃은 여행과 다를 바 없다. 속도에만 매몰되어 방향을 잃어버린 격이다. 둘째는 ‘상실’이다. 주어진 경쟁환경에 맞추어 살다 보니 내 삶에 내가 없다.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하릴없이 발버둥을 쳐보지만, 늪이다. 내 고유의 색깔과 결은 사라지고 나는 점점 가라앉는다. ‘자기상실’이다. 나를 잃어버린 내 삶이 행복할 리 만무하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정신적 공허함이 빚어내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정답은 ‘협력’이다. 작금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열쇳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말이다.

 

경영자문 건으로 만났던 어느 CEO. 미팅 내내 그는 잘 나가는 경쟁사를 언급했다. 어떻게든 발목을 잡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겠다 언성을 높였다. “그 회사가 안 되는 것과 우리가 잘 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만의 차별적 가치를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 적개심 가득한 그의 눈은 내 말을 애써 외면했다. ‘분노의 경영’이다. 올림픽이 금메달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듯 경영의 목적 또한 경쟁사 타도가 아니다. 내가 가진 자원과 역량으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좋은 곳으로 바꿔 놓겠다는 생각이 경영의 뿌리다. 리더의 그런 철학에 직원은 마음을 열고, 고객은 지갑을 연다. 행복한 직원들과 함께, 행복한 고객을 만들며, 행복한 성공을 빚어내는 방법이다. 핏대 높여 경쟁사 타도만 외치던 그 CEO는 과연 그의 바람대로 경쟁사를 꺾고 분을 풀었을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떠올랐다. ‘상대’만 쳐다본 토끼가 ‘목표’를 바라본 거북이에게 결국 무릎을 꿇었던 얘기 말이다.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듯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경쟁’을 통한 ‘독점’의 메커니즘이 이제는 오답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능력과 다양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빚어내는 ‘협업’과 ‘연결’이 시대적 화두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도우며 함께 달리는 거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던 세상의 종언이다. 플랫폼이 뜨는 이유다.

 

사용자와 공급자가 함께 만나 유휴자원의 활용을 기반으로 시장의 효율화를 이루어내는 장(場). 플랫폼의 정의다. 관련이 있는 여러 그룹을 하나의 장(場)으로 불러모아 관계 형성이나 고객 모집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검색이나 광고 등의 제반 비용을 줄여주어 입소문과 같은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함으로써 참여자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거다. 현금 혹은 수표를 항상 들고 다녀야만 했던 고객의 불만사항과 신규고객 확보와 결제간소화라는 식당의 희망사항을 한 방에 해결한 다이너스클럽의 신용카드 역시 알고 보면 플랫폼이다. 요컨대, 혼자서 북 치며 장구까지 쳐야 했던 게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꽃은 벌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벌은 꽃의 번식을 도와주는 비즈니스 모델, 이게 플랫폼인 거다. 플랫폼 참여자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혜적 파트너인 셈이다.

 

플랫폼시대의 경쟁은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이 아니다. 팀 대 팀의 경쟁이고, 네트워크 대 네트워크의 경쟁이다.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한 애플 생태계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혼자 살겠다는 게 아니라 협력을 통한 상생을 꿈꾸는 제휴의 네트워크다. 항공업계도 이에 발 맞추어 재편 중이다. 싱가포르항공, 루프트한자 등 40개 항공사로 구성된 항공사 동맹 ‘스타얼라이언스’나 영국항공, 핀에어 등 13개 항공사로 구성된 ‘원월드’, 대한항공과 에어프랑스 등 20개 항공사가 멤버인 ‘스카이팀’ 등 개별 항공사들은 저마다의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연대하고 협력한다. 그래서 상생은 곧 연대이고, 연대는 곧 협력이다. 파편화되었던 개인이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니 생겨나는 무게중심의 이동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했다. 독불장군처럼 그저 힘으로만 제압하려 하다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以道佐人主者 不以兵天下 其事好還). 도(道)로써 군자를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을 써서 천하를 강제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사지소처 형자생언 대군지후 필유흉년(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군대가 머무른 곳에는 가시나무가 생겨나고 대규모 군대가 지나간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도덕경 30장이다. 이천 년 전 노자의 통찰이 작금의 비즈니스 현장을 꿰뚫는다. 플랫폼이 딱 그렇다. 강압이나 무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참여자의 성장과 발전이 고루 담보되지 않는 플랫폼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만 누리고, 누군가만 당한다면, 그건 이미 플랫폼이 아니다. 그래서 협의하고 중재하며, 그래서 양보하며 조정하는 거다.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성과를 만들어내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성과를 만들어내고도 뽐내지 않으며, 성과를 만들어내고도 거드름 피우지 않는다. 과이부득이 과이물강 果而不得已 果而勿). 성과를 만들어내고도 모든 걸 취하려 하지 않고 이내 멈춘다. 성과를 만들어내고도 강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상생과 협력의 플랫폼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자가 주는 지혜는 이토록 크고 깊다.

 

경쟁의 영어 단어 ‘competition’의 어원은 라틴어 ‘competere’다. '함께'라는 의미의 ‘com’과 '추구하다'라는 의미인 ‘petere’가 합쳐진 단어다. 그대로 옮기면 ‘함께 노력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이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승부가 망쳐놓은 세상을 치유해주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협력이다. 시나브로 협력의 세상이고, 바야흐로 협력의 시대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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