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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22]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승자의 뇌-나도 혹시 권력중독? (안병민TV) https://youtu.be/xP6Klr0RtAQ


다들 자기 잘 난 맛에 산다. 자기는 잘 한단다. 문제는 남들이란다. 고액의 복권에 당첨되어도 나는 잘 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인생이 엉킬 거라 믿는다. 나는 깨어 있고 열려 있어 아무 문제 없지만, 다른 사람은 꽉꽉 막혀 있어 사달이 날 거라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호랑이라 착각하는 고양이가 따로 없다.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 待人春風)이라 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날 바람처럼 하고, 나를 지킴에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뜻. 요컨대, 남에겐 관대하고 스스로에겐 엄격하란 얘기다. 채근담이 원전이다.

내가 병에 걸려있다는 걸 깨닫는 것을 ‘병식(病識)’이라 한다. 병식이 있어야 병을 고칠 수 있다. 스스로 건강한 줄 아는데 무슨 병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어디를 가나 또라이 하나씩 있다는데 우리 부서는 그런 게 없네.” 해맑게 웃으며 직원들에게 말을 건네는 김 부장. 말로 뱉어내진 못해도 눈으로는 ‘그게 너’라며 다들 김 부장을 쏘아보지만 김 부장은 눈치 채지 못한다. 병식이 없어서다. 그래서 나온 유명한 경구가 이거다. “꼰대가 꼰대인 줄 알면 꼰대겠니?”

노키아 케이스도 맥이 같다. 당대 휴대폰 시장을 좌지우지했던 글로벌 최강의 기업이었다. 2007년만 해도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1%가 노키아의 것이었다. 세상이 내 발 아래 있으니 보이는 게 없다. 시장의 경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우리 노키아가 실패할 리 없다. 성공에 취한 노키아는 위기를 위기라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위기가 아니니 위기에 대한 대응책 또한 나올 리 만무했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에 코웃음을 쳤던 노키아는 점점 헤어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해야만 했던 노키아는 절치부심, 초심으로 돌아갔다. 현실 인정! 노키아 재건의 출발점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거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약점과 단점이 빚어낸 부진한 실적을 인정하는 솔직함은 그래서 용기다. 아프면 아프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병을 고칠 수 있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리더십은 결국 자기인식의 이슈다. 내가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잘 모른다. 객관적이지 못해서다. 주관적이라서다. 남들이 다 아는 나를, 그래서 나만 모른다. 노자는 자기인식의 중요성을 이렇게 갈파한다. 도덕경 33장에서다.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하지만 더 강한 이가 있다.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다. 자기를 아는 이가 진짜 현명한 사람이다. 승인자유력 자승자강(勝人者有力 自勝者強).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다. 하지만 더 강한 이가 있다.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이다. 자기를 이기는 이가 진짜 강한 사람이다. 우리는 반대다. 남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모르는 게 없다. 이 친구는 이래서 문제고, 저 친구는 저래서 안 된다. 나는 어떠냐고? 나야 뭐 항상 최고지. 오해이고 착각이다. 나를 잘 모르니 하는 소리다.

무능하고 무지할수록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다. 코넬대학교 데이비드 더닝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가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한 이론이다. 무능한 사람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유능한 사람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는 게 골자다. 경험이 없을 때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경험이 쌓이면서 하락하던 자신감이 일정 수준 이상의 경험치를 갖게 되면 다시 상승한다. 우리 속담에도 있듯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어느 분야든 진정한 고수라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알면 알수록 어렵고 힘들어요.”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기업 다음(Daum)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할 때 얘기다. 일반적인 대기업에선 층층시하 대면보고 결재를 받아야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음에서는 아니었다. 담당자로서 기획한 내용을 팀장에게 메일로 알리고 의견을 구한다. 그걸로 끝.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담당자의 기획안은 그대로 진행된다. 처음엔 무척이나 신이 났다. 현장감 떨어지는 상사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금쪽같은 내 기획안을 누더기로 만드는 일이 없으니, 다음은 천국이었다. 아, 이 맛에 벤처기업 다니는구나. 그런데 웬걸,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담당자인 내가 기획하고 결정하면 회사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다. 일반 대기업이라면 대리급 연차였던 시절. 나의 이 판단이 정말 최선일까? 무림의 쟁쟁한 고수들이 보면 비웃지 않을까? 모를 땐 몰랐지만, 알고 나니 덜컥 겁이 난 거다. 하늘을 찔렀던 자신감은 이내 사라졌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은 건 더 많은 경험이 쌓이고나서였다.

하얀 종이에 커다란 원과 작은 원이 그려져 있다. 원의 영역을 '앎(knowledge)'이라 한다면, 원의 크기는 곧 앎의 크기다. 큰 원의 원둘레는 작은 원의 그것보다 더 크다. 다시 말해 원의 외부인 미지의 영역과 더 크고 더 많은 면을 접해 있는 거다. 그러니 많이 아는 사람은 모르는 것도 많다는 걸 안다. 적게 아는 사람은 모르는 게 별로 없다 생각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무지하면 용감한 거다.

운과 실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태어날 때 입에 금수저를 물려줬더니 스스로가 힘들게 금광을 캔 줄 착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3루타를 쳐서 3루에 있는 줄 알지만, 운 좋게 3루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자기는 실력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왔단다. 거짓말이 아니다. 스스로는 진짜 그렇게 믿는다. 자기가 구축한 ‘대안적 사실’의 견고한 성에 갇힌 꼴이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능력이 없으니 생겨나는 비극이다.

훌륭한 리더는 다르게 말한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감이 부족하니 겸손하다고? 편견이다. 겸손을 토대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 노력하는 리더, 겸양을 기반으로 타인에게 공정하려 노력하는 리더. 이들이 조직을 행복한 성장으로 이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도 '자기낮춤'을 강조했다. 조용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조심스러운, 수줍어하는, 정중한, 부드러운, 나서기 싫어하는, 말수가 적은, 자신에 관한 기사를 믿지 않는. 위대한 조직을 일구어 낸 리더들을 인터뷰한 콜린스가 그들의 모습에서 찾아낸 공통점들이다.

드러내지 않지만 드러나는 존재감. 노자가 말하는 ‘찐리더’의 모습이다. 그런 리더가 되려면? 남을 살필 게 아니라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남을 이길 게 아니라 스스로를 이겨야 한다. 남을 향한 비판과 경계의 시선을 내게로 돌려야 한다. 나를 향한 자애와 긍휼의 마음을 남에게 돌려야 한다. “과인은 고결하지도 않고 다스리는 데 능숙하지도 않소이다. 하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할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오. 그러니 공들은 과인의 결점을 열심히 찾아 과인이 그 질책에 응답하게 하시오.” 세종의 말씀이다. 노자가 설파한 ‘찐리더’의 모습을 세종대왕에게서 본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테스 형’의 그 말을 오늘도 잘근잘근 곱씹는 이유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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