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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23] 안 사는 고객과 안 하는 직원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악여이 과객지(樂與餌 過客止). 아름다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도지출구 담호기무미(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도(道)는 다르다. 굳이 표현하자면 심심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 도덕경 35장이다.


평소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건강식이라며 차려나오는 무슴슴한 음식들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큰 병을 앓은 적이 있기에 걱정 어린 아내의 타박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끊기가 쉽지 않다. 혀를 사로잡는 탐미적 자극에 늘 백기를 든다. 머리로는 알지만 손발이 따르질 않는다. 답답한 노릇이다. 노자형님이 말하는 ‘담담한 도’의 세계는 작위적 쾌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를 내리치는 죽비다.


돌아보니 세상만사가 그러하다. 행복은 자극적인 쾌락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일상의 평화가 행복을 만든다. 둘째 아이가 아파 며칠 입원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이었기에 아내와 내가 돌아가며 병실을 지켰다. 일상 평화를 깨부순 날벼락. 당연하고 자연스럽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다 어그러졌다. 좋은 일이 있어 행복한 게 아니었다. 나쁜 일이 없어 행복한 거였다. “평화를 빕니다”라는 성당의 인사말이 새삼 와 닿았던 시간이었다.


조미료로 맛을 낸 맵고 짠 음식은 쉽게 물린다. 건강마저 해친다. 별 맛 나지 않는 심심한 쌀밥이 우리의 주식인 이유다. 작위적으로 빚어낸 인위적 풍미는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엔 기본이고, 결국엔 바탕이다. 도덕경 35장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화려한 삶이 우리를 유혹한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다. 아차, 하는 순간 바닷물에 빠진다. 파멸이다. 그래서 노자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슴슴하기 짝이 없는 도를 역설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존재의 삶’과 ‘소유의 삶’이다. 소유의 삶은 ‘얼마나 가지느냐’로 승패가 갈린다. 방법이나 과정은 중요치 않다. 결과가 모든 걸 말해 줄 뿐이다. 말초적 향락과 감각적 쾌락이 눈 앞에서 춤을 춘다. 뜨거운 유혹이다.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러니 기를 쓰고 가지려 한다. 하지만 왜 가져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저 가지기 위해 가지는 거다. 가진들 헛헛한 이유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귀가 따로 없다. 노자가 말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맛난 음식”은 소유의 삶에 대한 비판적 은유로도 읽힌다.


존재의 삶은 다르다. 내 삶의 이유를 증명하는 삶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감으로써 세상이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보여주는 삶이다. ‘세상에 무엇으로 존재하느냐’가 핵심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연결되는 화두다. 방법론적 전략을 넘어 존재론적 철학의 차원으로 상승하는 이슈다. 어렵다. 그래서 외면한다. 인생, 그렇게 골치 아프게 살 필요 있어? 그저 보란 듯이 폼 나게 살면 되는 거잖아. 천만의 말씀이다. 목적이 없는 삶은 위험하다. 바람에 낙엽이 날리듯 내 삶 또한 세파에 밀려 여기저기 떠다닐 뿐이라서다.


소유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 옆에 친구가 있을 리 없다. 모두를 배려하는 나눔의 존재에게 사람이 끓는다.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 하지 않았던가.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밑에 절로 길이 생겨난다. 아름다운 향기 덕분이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절로 드러나는 존재감.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鄰)이라는 공자의 말은 그래서 힘이 있다. 덕이 있으면 외로울 수 없다. 사람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게 삶의 이치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이토록 담담하다. 단번에 사람을 홀리는 짜릿한 자극은 없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우러나오는 진한 향이 웅숭깊다. 노자의 도가 그러하다.


“이 사업, 왜 하시는 건가요?” 별 이상한 질문 다 보았다 싶은 표정이다. “돈 벌려고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용수철처럼 대답이 튀어나온다. 기업의 존재이유? 예전에는 주주이익 극대화라 배웠다. 돈 버는 게 목적이란 얘기. 하지만 궁금하다. 그 시절 그 얘기가 지금도 유효할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기업은 왜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 돈만 벌면 다 되는 걸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최근 부상하고 있는 ‘ESG경영’도 소유에서 존재로의 무게중심 이동을 보여준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적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표현이다. 기업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고(Environment), 사회적책임(Social)을 다하며, 건강한 지배구조(Governance)를 만듦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재무적 성과만 따지던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 더 크고 더 넓은 시각으로 환경문제, 사회문제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철학이 녹아있다. 주주이익 극대화에서 모두의 행복 극대화로, 기업의 목적이 바뀐 셈이다. “절대 잊지 말라. 약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이익을 위한 게 아니다(Never forget, medicine is for the people, not for the profits.)” 글로벌 제약회사인 머크사 회장 조지 머크의 이 말은 달라진 기업의 존재이유를 웅변한다.


도덕경 37장에서 노자는 도를 이렇게 풀이한다. 도상무위 이무불위(道常無爲 而無不爲). 도는 항상 무위한다. 즉, 억지로 행함이 없다. 그럼에도 못할 일이 없다. 모든 일이 절로 되어진다.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군주제후, 즉 리더가 이러한 이치를 잘 알고 지킨다면 세상만물은 저절로 생장하고 교화될 것이다.


“식당 성공 비결? 별 것 없어요. 딱 세 가지만 잘 지키면 됩니다. 맛있게, 푸짐하게, 깨끗하게.” 행복한 성장을 이어가는 어느 식당 사장님의 말이다. 식당의 존재이유, 그 기본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받으려면 주어야 한다.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 그게 도다. 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비즈니스의 성공 요건은 단순하다. 존재이유에 부합하는 고객가치 창출이다. 문제는 다들 이러한 도의 원리를 외면한다는 거다. 싸구려 재료에다 조미료 듬뿍 쳐서 알량한 맛을 내고는 화려한 사진을 찍어 소셜에다 광고하는 식이다. 뿌리는 썩어가는데 가지만 치장해본들 물거품이다. 손님은 귀신이다. 어찌 알까 싶지만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무언가를 구매하는 이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고객도 마찬가지다. 얘긴즉슨, 고객행복을 위한 차별적 가치를 제공하면 매출과 수익은 따라온다는 것. 하지만 고객가치에 대한 고민이 없다. 고객을 유혹하고 현혹하기 위한 꼼수만 난무한다. 직원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직원을 장기판의 졸로 여긴다.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거다. 그런데 어떡하나? 도구에는 창의가 없다. 열정이 없다. 집에 있는 망치를 떠올리면 쉽다. 그런데 주인의식을 가지라 닦달하니 주인의식을 연기한다. 서로에게 진실해야 할 일터가 가면을 뒤집어쓴 위선의 연극무대로 변하는 이유다.


고객에게 ‘사라’ 한다고 사는 게 아니다. 스스로 사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직원에게 ‘하라’ 한다고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안 사는 고객’과 ‘안 하는 직원’을 탓할 일이 아니다. 안 사게 만들고, 안 하게 만드는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이들을 한 방에 바꿀 인위적인 비기나 묘책? 단언컨대 없다. 볼트와 너트가 서로 맞아야 돌아가듯 세상만사 이가 맞아야 돌아가는 법. 맞지도 않는 자리에 맞지도 않는 무언가를 힘으로 욱여넣어본들 헛일이다.


화려한 음악과 진기한 음식은 인위적인 욕망으로 덧칠한 허상이다. 스스로 자(自)에 그럴 연(然).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것. 그게 도이고 그게 세상의 섭리다. 물은 아래로 흘러간다. 그런데 물길을 자꾸 높은 곳으로 돌리려 한다. 자연 운행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래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마케팅과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자극적인 솔루션이 일을 망친다. 담담하게, 스스로 그러할 방법을 찾을 일이다. 무위하면 못할 일이 없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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