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약매 진도약퇴 이도약뢰(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밝은 길은 어두워 보인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평평한 길은 마디가 있는 것처럼 울퉁불퉁해 보인다. 상덕약곡 태백약욕 광덕약부족(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진정 높은 덕은 계곡처럼 텅 비어 있는 듯하다. 진정 깨끗한 순백은 오히려 더러워 보인다. 진정 넓은 덕은 오히려 부족해 보인다. 도덕경 41장이다. 도(道)에 대한 역설적 풀이다. 요컨대, 좋은 게 오히려 나빠 보인다는 얘기. 착각하면 안 된다. ‘나쁘다’가 아니라 ‘나빠 보인다’는 거다. 문제는 도가 아니다. 좋은 걸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다. 미약한 내공 탓이다.
“27년 전 아마존은 그저 아이디어였다. 지금 아마존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 중 하나가 됐다. 우리는 함께 미친 짓을 했고, 그 미친 짓은 정상(normal)이 됐다.” 아마존닷컴의 설립자이자 CEO로서 아마존을 세계 최고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제프 베이조스가 물러나며 남긴 말이다. 세상을 뒤집어 놓을 아이디어도 처음에는 온통 허황되어 보인다. 개인이 집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1977년 세계 미래회의 컨벤션에서 나온 얘기다. 발언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당시 컴퓨터 산업을 주도했던 디지털이큅먼트사의 창업자 켄 올젠 사장. 비디오는 출시 6개월이 지나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것이라 큰소리 쳤던 20세기폭스사의 대릴 자눅 회장도 있다. ‘영화가 있는데 어디 감히 비디오 따위가?!’라는 의미였으리라. 전 세계 컴퓨터 시장 규모는 기껏해야 5대 정도에 불과할 거라 장담했던 토마스 왓슨 IBM 이사회 의장은 또 어떤가. 1895년 영국 왕립학회 로드 캘빈 회장의 발언도 빼놓을 수 없다. 공기보다 더 무거우면서 날아다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했으니 말이다.
전문가들마저 이처럼 혁신의 씨앗을 폄하하고 조롱한다. 뻣뻣해서다. 유연하지 못해서다. 차가운 광장에 나와 미래를 껴안아야 하는데 뜨듯한 과거의 골방에 틀어박혀 있으니 생겨나는, 웃지 못할 소극이다.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 혁신의 정의다. 안주하는 이들에게 혁신은 성가신 일이다. 지금도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데 뭔가를 바꾸어야 한다 하니 그게 외려 불편한 거다. ‘네모난 바퀴’를 단 수레를 땀 뻘뻘 흘리며 끌고 미는 사람에게 ‘동그란 바퀴’를 알려줬더니 “노 땡큐(No, thank you)”라며, 신경 꺼달라는 식이다. 혁신을 알아볼 안목이 없는 거다. 내공이 부족해서다.
일찍이 노자형님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도 짚었다. 상사문도 근이행지(上士聞道 勤而行之) 중사문도 약존약망(中士聞道 若存若亡) 하사문도 대소지(下士聞道 大笑之) 불소부족이위도(不笑不足以爲道). 최고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성실히 실천한다. 중간 수준의 선비는 긴가민가한다. 낮은 수준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어 넘기니, 이런 이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오히려 도라 하기에 부족하다. 핵소름이다. 이천여 년이 지난 지금에 갖다 놓아도 이질감이 전혀 없는 얘기다. 고전의 힘이다. 이래서 고전, 고전, 하나보다.
우리 뇌는 한없이 게으르다. 습관에 의존한다. 새로운 시도를 위험으로 간주한다. 답습이 반복되는 이유다. 혁신하려면? 생각이 열쇠다. 생각이란 통념과 관습에의 도전이다. 어제의 나로부터의 탈피다. 새로운 경험을 위한 용기다. 막연한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질문해야 한다. 의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쓴 것을 믿지 않고 내 머리로 생각해서 납득될 때까지 연구한다. 내 손으로 검증하지 않은 연구는 내 것이 아니다.” 201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 의학자 혼조 다스쿠 박사의 말이다.
대방무우 대기면성 대음희성 대상무형(大方無隅 大器免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사각형은 모서리가 있지만, 정말 커다란 사각형은 모서리를 찾을 수 없다. 그릇은 완성된 형태가 있지만, 정말 커다란 그릇은 아직도 만들어지는 중이니 완성이 없다. 음은 소리가 나게 마련인데, 정말 큰 음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형상은 모습이 있게 마련이나,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무한대(無限大)'의 개념이다. 우물 안에 갇혀 '손바닥 하늘'만 쳐다보는 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다. 모서리가 없다며 사각형이 아니라 하고, 완성된 모양이 없으니 그릇이 아니라 한다. 들리지 않는다며 소리가 아니라 하고, 보이지 않는다며 형상이 아니라 한다. 부처님 손바닥 안 범부와 속인의 모습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알지를 못하니 볼 수가 없다. 청맹과니가 따로 없다.
주어진 시험문제를 잘 푼다고 새로운 이론을 펼쳐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갇혀서는 미래의 변화를 포용할 수 없다. 홀로 서야 한다. 상식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끊어 내야 한다. 과거와의 단절이다. 독립불구 둔세무민(獨立不懼 遁世無悶)이라 했다. 홀로 서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과 떨어져 있어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독립해야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단절해야 안 들리던 게 들린다. 시선의 높이가 올라가야 생각의 깊이가 더해진다. 혁신은 그렇게 잉태된다.
189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에 출전한 선수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다들 덩그러니 서서 달리기 출발을 하던 시절, 토마스 버크는 두 손을 땅에 대고 웅크리고 앉았다. 무게중심을 낮추어 순간속도를 최고치로 높일 수 있는 자세였다. 힘차게 박차고 나갈 수 있어 추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세였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손가락질했다. 토마스 버크는 100미터와 400미터,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웅크린 자세로 출발하는 ‘크라우칭 스타트(crouching start)’는 이후 육상 단거리 출발의 표준이 되었다.
왜 손으로 벽을 짚고 턴(turn)을 해야 하지? 기존의 관습에 반기를 든 소년은 발로 턴을 했다. 오던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추가적인 힘을 받으니 속도가 더 붙었다. 수영에서의 ‘플립 턴(flip turn)’ 이야기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열 일곱 살의 소년 아돌프 키에프는 그렇게 배영 금메달을 땄다. 이후 누구도 손으로 턴하지 않는다. 모두가 발로 턴한다. 수영 역사상 커다란 혁신이었다.
스포츠 분야에서의 또 다른 혁신 사례는 높이뛰기에서의 ‘포스베리 플랍(Fosbury flop)’이다. ‘가슴뛰기’와 ‘가위뛰기’ 자세로 바를 넘는 게 상식이던 시절이었다. 포스베리는 생각했다. “이게 최선인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뒤로 눕는 듯, 가슴이 아닌 등으로 바를 넘었다. ‘배면뛰기’였다. 포스베리는 배면뛰기로 세계 최초로 2미터의 벽을 훌쩍 넘어버렸다. 모두가 이상하다 여겼던 배면뛰기는 높이뛰기의 오늘날 표준이다.
‘새로운 다름’을 위한 최초의 생각과 실천. 그게 혁신이다. 관행적 시선은 혁신의 목을 조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시선이라야 혁신을 보아낼 수 있다. 세상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옛날 방식을 고집하다 스러져 간 수많은 기업들의 사례는 손으로 꼽기도 벅차다. 주류였던 과거의 혁신은 새로운 혁신으로 무장한 비주류에 의해 밀려난다. 상시적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만약 당신이 다수에 속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 변화할 때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 마크 트웨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다.
도덕경 41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다. 그럼에도 오직 도만이 만물을 도와 일이 이루어지게 한다. 자연의 존재와 운행에 도가 있다면 내 일과 삶의 경영에는 혁신이 있다. 혁신은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직 혁신만이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준다. 혁신 또 혁신할 일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