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관광’이다.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 해당 지역 주민이 피해를 입는 현상을 가리킨다.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한 교통 혼잡과 불법 쓰레기 투기 등이 대표적이다. 호젓한 주택가를 소음으로 채운다. 구경을 한다며 주민들이 사는 집에 불쑥 들어오기도 한다. 관광객 범람에 떠밀려 내려간 주민들의 일상. 국내외를 막론하고 회복을 위한 노력들이 생겨난다. 관광 허용 시간제를 도입하거나 일일 방문객 수를 제한하는 식이다. 일정 금액의 여행세를 부과하기도 한다. 역(逆)마케팅이다.
#2. 현금을 두고 다닌 지 꽤 오래다. 아니, 지갑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스마트폰 하나로 결제에 송금까지 다 되니 지갑이 필요 없다. 캐시리스(cashless). 이른바 ‘현금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현금을 주로 쓰는 디지털 취약 계층은 금융서비스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손님들이 주는 현금 팁으로 살아가던 서비스 노동자들에게도 캐시리스 사회는 날벼락이다. 각국 정부의 통화가치 조정이나 통화량 관리도 고차원의 방정식이 되었다. 부작용이 속출하니 ‘현금 쓰기’ 캠페인이 일어난다. 디지털혁명의 이면이다.
세상은 시소다. 이쪽이 올라가니 저쪽이 내려간다. 올라가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아뿔싸.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상호 대립되는 요소들의 긴장 관계로 구성된 세상. 역설과 모순이 가득하다.
그래서 노자형님도 얘기했나 보다. 도덕경 39장이다. 천무이청 장공렬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곡무이영 장공갈(天無已清 將恐裂 地無已寧 將恐發 神無已靈 將恐歇 谷無已盈 將恐竭). 하늘이 끊임없이 맑으려고만 하면 결국에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땅이 끊임없이 안정되려고만 들면 결국에는 무너져 쪼개질 것이다. 신이 끊임없이 영험하려고만 하면 결국에는 그 신령스러움이 사라질 것이며, 계곡이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들면 결국에는 말라 고갈될 것이다.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세상만사 상대가 있다. 반대편도 두루 살펴야 한다. 그걸 놓치면 결국 공멸이다.
노자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만물무이생 장공멸 후왕무이귀고 장공궐(萬物無已生 將恐滅 侯王無已貴高 將恐蹶). 세상만물이 끊임없이 살려고만 하면 결국에는 모두 사라질 것이며, 리더가 끊임없이 고귀한 대접만 받으려고 들면 결국에는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늘과 땅부터 끌어왔나 보다. 제후와 군왕으로서의 리더십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순신 장군도 비슷한 얘기를 하셨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제왕학으로서의 도덕경, 39장에서는 두 가지 통찰의 시선을 제공한다.
먼저, 뿌리까지 보아내는 입체적 시선이다. 자연만물엔 상대가 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주인이 있으면 손님이 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으며, 이성이 있으면 감성이 있다. 리더가 있으면 팔로워가 있으며, 판매자가 있으면 구매자가 있는 법이다. 받으려면 주어야 하고, 채우려면 비워야 하고, 얻으려면 버려야 하며, 오르기 위해서는 내려가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한 쪽만 본다. 다른 쪽은 무시한다. 애써 외면한다. 아둔한 일이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겨나기에 저것도 생겨나서다(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기에 저것도 사라져서다(此滅故彼滅).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게 원인과 결과라는 '관계'로 엮여 있다. 불이(不二). 둘이 아니다. 결국 하나다. 자연의 섭리다.
군인 하나가 누군가를 향해 장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 그 장면이 인쇄된 포스터를 전봇대에 부착하니 군인의 총부리는 결국 스스로를 향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카피로 유명한 반전평화 캠페인 광고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가해자가 곧 피해자다. 승리자가 곧 패배자다.
‘프레너미(frenemy)’라는 말이 있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이 합쳐진 말이다. 모두가 네트워크로 이어진 초연결 세상. 흑백을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은 시대착오적이다. 융합의 시대라서다. 아군 적군이 따로 없다. 모두가 공존과 상생의 파트너다. 그래서 껴안아야 한다. 반대편까지 헤아려 살펴야 한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구분의 지식을 넘어 포용의 지혜를 노래한 학명스님의 선시다.
두 번째는, 역설에서 비롯되는 창의의 시선이다. “이타적 이기주의자”, 소리 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의 봄”,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앞과 뒤의 의미가 서로 닿지 않는다. 모순이다. 부조리다. 그러나 그 역설에 담긴 시(詩)적 진실이 아름답다. 상식의 전복. 타성으로부터의 일탈. 그래서 눈길을 끄는 역설은 반짝반짝 창의로 이어진다.
콜라가 가득 채워진 유리컵. 카메라 클로즈업. 콜라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마구 튀어 오른다. 톡톡 쏘는 기포들이 까만 화면을 배경으로 무정형의 춤을 춘다. 탄산음료 특유의 시즐감이 싱그럽다. 그런데 웬걸. 영상에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자막 한 줄.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Try not to hear this).” 코카콜라의 방송광고다. 의도적으로 모든 소리를 제거했다. 공기 중으로 튀어오르는 콜라의 기포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리를 듣는다. 아니,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뺐는데 소리가 들리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시리즈 광고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까만 화면은 소리만 토해낸다. 탄산음료 뚜껑을 비틀어 딴다. 까드득, 소리가 정겹다. 이어 토도토독, 기포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꿀꺽꿀꺽, 누군가가 시원하게 콜라를 들이켜는 소리. 캬, 하는 행복한 감탄사로 끝을 맺는 광고. 자막 한 문장이 화면을 채운다. “보려고 하지 마세요(Try not to see this).” 일체의 비주얼 요소가 배제된, 그저 새까만 화면의 광고. 하지만 신기하다. 소리만 들었는데 훤히 다 보인다.
코카콜라의 광고는 노자의 역설적 창의를 오롯이 담아냈다. 화면만 보여주며 들으려 하지 말란다. 소리만 들려주며 보려고 하지 말란다. 하지만 우리는 보고 듣는다. 보이고 들려서다. 뺐더니 더해진다. 목청 높여 고함 칠 일이 아니었다. 나지막이 속삭이면 될 일이었다.
뭐든 해야 해. 완벽해야 돼. 강해져야 해. 모두가 양(陽)의 방향으로 달려갈 때, 노자는 음(陰)의 방향을 가리킨다. 좀 쉬어도 돼. 모자란 게 매력이야. 강하면 부러져.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 관점이다. “Stay hungry. Stay foolish.”를 말한 걸 보면 ‘내 손 안의 인터넷’ 세상을 창조했던 스티브 잡스도 일찍이 노자를 읽었나 보다.
아들이 유도를 배운단다. 이년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단다. 아들이 넘어지는 걸 배우는 동안 아빠는 넘어지지 않으려 기를 쓰고 살았단다. 한번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세상. 잠들어도 눕지를 못했단다. 그래서 아빠는 아들에게 부끄럽단다. 흐르는 물은 벼랑에서도 뛰어내리는데 아빠는 넘어지지 않으려 잘 때도 서서 자는 말이 되어서란다.정규학 시인의 시 <서서 자는 말> 얘기다.
오르려고만 했다. 채우려고만 했다. 가지려고만 했다. 얻으려고만 했다. 어리석었다. 내려갔어야 했다. 비웠어야 했다. 줬어야 했다. 버렸어야 했다. 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노자형님의 제언이다. 고귀함은 미천함으로써 근본을 삼고, 높음은 낮음을 토대로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