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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영 27]터미네이터 T-1000이 무서웠던 이유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폴 매카트니 경의 전속사진사 K. 폴 경의 전세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그의 공연 사진을 찍은 지 3년째. K도 사람인지라 반복된 익숙함이 그의 초심을 갉아먹는다. 그깟 공연 사진이야 찍던 대로 찍으면 그뿐. 열정이 사라지니 일의 진행과 처리도 기계적일 수 밖에.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전날 찍은 공연 사진을 함께 리뷰하던 폴 경이 K에게 얘기한다. “네가 찍은 사진이 더 이상 날 흥분시키지 않아.” K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말이라고 했다.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작가 알아봐.” 매니저에게 한 마디 던지면 끝날 일이었다. 전 세계 날고 기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줄을 설 터였다. 하지만 폴 경은 K를 비난하지도, 닦달하지도 않았다. 나즈막한 어조로 자신의 느낌을 전했을 뿐이다. 무보정 상태의 사진들 중 폴 경이 선택한 사진만 보정하던 방식의 작업. 이 날 이후 K는 촬영한 모든 사진을 선보정한 뒤 폴 경에게 보여주었다. TV에서 보았던 K의 인터뷰 내용이다. 폴 매카트니, 역시 고수다. 

 

도덕경 43장이다.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말 달리듯 부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폴 매카트니 경의 위 사례가 증거다. 리더의 눈에 차지 않는 직원. 고함부터 치는 리더가 태반이다. 고함을 쳐서 효과가 있다면 못 칠 것도 없다. 하지만 리더의 그런 모습을 본 직원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반발하거나 주눅들거나. 성과 향상에 도움이 안 되긴 둘 다 마찬가지다. 

 

카리스마 리더가 조직을 호령하던 시대는 끝났다. 찍어 눌러서 될 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젓는 줄 모르듯 마음의 문을 두드려 시나브로 열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기, 도덕경에 답이 있다. 무유입무간(無有入無間)이다. ‘무유(無有)’는 ‘형태가 없음’을 의미한다. ‘무간(無間)’은 사이가 없음이니 아주 작은 틈을 가리킨다. 일정한 크기를 가진 일정한 부피의 물체는 동일한 모양과 동일한 사이즈의 공간이 나오지 않으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나를 고집하니 생기는 일이다. 고정된 형식이 없어야 한다. 유연해야 한다. 그래야 바늘 만한 틈으로도 스며들어갈 수 있다. 나를 비워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터미네이터2’의 빌런 ‘T-1000’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인류의 지도자로 자라날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미래로부터 파견된 로봇 T-1000은 주인공 터미네이터 T-800보다 진일보한 모델이다. 특징은 전신이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다른 사물이나 다른 사람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이유다. 뿐만 아니다. 작은 틈이나 막힌 공간도 물 흐르듯 드나든다. 온 몸이 완전 분쇄될 정도의 외부 충격을 받아도 산개한 부위들이 재조합되어 원상 복구가 되니 준(準) 불사신 급이다. 상황에 맞추어 몸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의 힘이다.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무유가 곧 경쟁력인 셈이다. 무유의 능력을 발판 삼아 T-1000은 영화 내내 가공할 위력을 선보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 영화 같은 가상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무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형태와 크기와 부피를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경청이다. 대부분의 리더는 듣지 않는다. 말하기 바쁘다. 귀가 아닌 입으로 나를 내세우니 조직에 스며들지 못한다. “직원들이 말을 안 합니다.” 수많은 리더들이 내뱉는 하소연이다. 답답해 죽겠단다. 직원들이 리더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 말하지 않는 거다. 말을 하면 더 많은 말이 되돌아오니 말하지 않는 거다. 무늬만 경청이다. 그걸 아는 직원들은, 그래서 말하지 않는다. 정성껏 들어야 한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다. 들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얻는 거다. 조직에 스며드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직급 간 심리적 거리가 멀고 먼 우리 사회다. 직급이 한 단계 멀어질 때마다 심리적 거리는 제곱으로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를 보면 대리에서 부장까지의 3단계간 직급 거리는 3이 아니라 9인 셈이다. 

 

팀별 에베레스트산 등정 시뮬레이션. 권력의지가 강한 리더가 이끄는 팀의 성과는 목표 대비 59%였던 반면, 권력의지가 약한 리더가 이끄는 팀은 76%를 달성했다. 권력의지가 강한 리더일수록 더 많이 말했고, 팀원들의 얘기에는 귀를 닫았다. 리더의 개방성이 떨어지니 팀 소통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성과가 제대로 나오면 이상한 일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2014년 3월호에 게재된 아티클 ‘Powerful Leaders, Lower Results’에 소개된 내용이다. 제목 그대로, 지배욕이 강한 리더일수록 성과가 나빠진다는 게 골자다. 권력이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는 얘기다. 협업의 시대다. 리더가 더욱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우리 모두 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지만 아무도 말을 못한다. 바보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이라 하는데, 서슬 퍼런 임금 앞에서 어느 신하가 직언을 할 것인가? 벌거벗은 채 시가행진을 벌여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임금은 신하들 탓할 것 없다. 신하들에게 어떤 말을 하든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일이다.

 

어떤 아이디어이든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내 실수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거리낌없이 요청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리더의 의견에도 부담 없이 반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말하는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이란 그런 거다. 관건은 리더의 소통 의지다. 말하는 게 소통이 아니다. 들어야 소통이다. 어떤 얘기를 하든 무시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신뢰 구축이 전제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작은 틈으로도 스며들어 직원과의 진솔한 소통을 빚어내려면? 단언컨대, 해답은 경청이다.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 박사는 경청을 이렇게 풀이한다. “상대의 마음이나 느낌, 감정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할 때 속옷까지 벗기고 심장 정중앙에 정확하게 힘을 가해 마사지를 해야 심박동이 돌아오듯 상대의 느낌, 감정에 정확하게 공감해야 한다.”

 

불언지교(不言之教). 불언(不言)은 무위(無爲)의 또 다른 표현이다. 억지로 행하지 않아 절로 그러하게 해야 한다. 그게 고수다. 결국 리더가 몸소 보여주는 거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했다. 직원들도 그러하다. 리더의 뒷모습이 직원들에겐 따라야 할 모범이자 표준이 된다. 그러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다그칠 게 아니다. 앞장서서 직접 보여주는 거다. 솔선수범이다.


폴 매카트니 얘기로 시작한 이번 글은 비틀즈 얘기로 맺는다.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노래 ‘렛잇비(let it be)’에 나오는 ‘지혜의 단어(words of wisdom)’는 다름 아닌 ‘렛잇비(let it be)’이다. 저절로 그러할 테니 그대로 두라는 ‘렛잇비’는 노자형님의 무위, 무유, 불언과 꼭 닮았다. 지식은 입을 열지만 지혜는 귀를 연다. ⓒ혁신가이드안병민


*함께 보면 좋을 영상 :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고객을 만든다 (안병민유튜브)

https://youtu.be/8TQRPbp1fQ8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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