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노자경영 28] ‘커피보국’이 업의 목적이에요

안병민의 노자경영-도덕경에서 건져올린 경영의 지혜와 통찰

기업은 사회 공공에 대한 책임이 없다. 주주에 대한 책임만 있을 뿐이다(A company has no ‘social reaponsibility’ to the public or society; its only responsibility is to its shareholders.)”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얘기다.

 

하지만 변화는 상수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기업이 갖는 사회적책임의 중요성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책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뀐 거다. 기업의 이윤과 사회적 책임을 자전거의 두 바퀴, 즉 동반자적 상호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한 거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회사 중 하나인 블랙록의 회장 래리 핑크는 ‘기업 경영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가 중요해지면서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밝혔다. 투자 대상 회사의 경영진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서였다. 미국의 대기업 CEO들도 기업의 목적으로 ‘포용적 성장’을 강조한다. 주주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던 기업들은 이제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 기업 존재이유의 극적인 변화다.

 

도덕경 44장을 통해 이런 변화의 근원적 배경을 미루어 짐작한다. 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깊이 사랑하여 애착이 커지면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많이 쌓아두어 재산이 많아지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달도 차면 기울 듯, 세상만사, 균형이 무너지면 제 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친절도 하신 노자형님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잊지 않고 붙여놓았다.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다.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지나치게 탐하지 말라는 거다. 욕심을 버리라는 거다. 그러면 장구(長久), 즉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탐욕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진 기업들은 차고 넘친다. 먼저, 미국 메이저 은행 중 하나인 웰스파고(Wells Fargo)다. 웰스파고는 단기적 이익에 집착했다. 직원들에게 무리한 영업을 강요했다. 한 고객 당 8개 이상의 상품을 팔라 했다. 2016년, 결국 사달이 났다. 고객 동의를 받지 않은 유령계좌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153만여 개의 예금계좌, 56만여 신용카드 계좌를 포함하여 최소 350만 개의 가짜 계좌들.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에 걸쳐 고객의 동의 없이 개설된 계좌들이었다. 웰스파고 은행은 각종 벌금과 소송 비용으로 27억 달러를 지출했다. 5,300명의 직원을 해고했고, 60개 지점을 폐쇄했다. 주가는 2016년 50달러에서 2020년 30달러로 급전직하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도 원인은 과욕이었다. 2000년대 초반, 경제활성화를 위한 미국 정부의 저금리 정책으로 대출이 늘고 집값이 급격히 올랐다. 부담해야 할 이자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오르니 너도 나도 빚을 내어 집을 샀다. 탐욕에 눈이 먼 은행들은 신용불량에 가까운 비우량 고객에게까지 무차별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그칠 줄 모르던 집값 상승세의 반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갚아야 할 대출금액 이하로 집값이 떨어지자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들이 속속 두 손을 들고 나자빠졌다. 돈을 빌려준 은행 역시 파산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대출자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개요다. 사태 초기, 손실을 입은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앞다투어 투자금을 걷어들였다. 리먼브러더스의 선택은 반대였다.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다. 결과는? 더 큰 손실이었다. 이때만 해도 퇴로가 있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누적 손실을 부정회계로 덮으려 했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리먼브러더스는 2008년 9월 14일, 파산을 신청한다.

 

기업 경영에는 무릇 목적이 있어야 한다. 탐욕적 자본주의에 영혼을 내다 맡긴 기업을 좋아할 고객은 없다. 앞서 살펴본, 웰스파고와 리먼브러더스의 추락 이유다. 경영의 목적이란, 예컨대 ‘수송보국(輸送報國)’ 같은 거다. 내가 하고 있는 수송사업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목적.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의 경영철학이자 일의 목적이었다. 트럭 한 대로 시작한 한진상사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종합수송그룹으로 성장했다. 수송보국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던 기업에서 목적이 사라지면?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 싹튼다. 2014년의 ‘땅콩회항’ 사건이 이를 웅변한다.

 

목적은 방향이다. 의지이며 꿈이다. 신념이며 동기이다. 가치이자 철학이다. ‘매출 1,000억 달성’이나 ‘업계 1위 등극’은, 그래서 기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정당의 목적을 ‘정권 획득’이라 오해한다. 그러니 서로 정권을 잡겠다며 눈뜨고 볼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더 좋은 나라 만들기’가 정당의 목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아군과 적군의 제로섬게임을 넘어 모두를 위한 윈윈게임을 펼칠 수 있다. 기업의 목적 역시 ‘이윤 추구’가 아니다. 돈을 버는 데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서비스를 만드는 게 아니다.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려고 돈을 번다(we don’t build services to make money; we make money to build better services.)”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의 말이다. 기업의 목적은 ‘더 나은 세상 만들기’이다. 목적 없는 기업은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다. 존경받지 못한다. 존속이 불가능하다.

 

스위스 국민기업인 네슬레의 시가총액은 300조가 넘는다. 커피가 한 톨도 나지 않는 나라 스위스지만 네슬레의 전 세계 커피시장 점유율은 20%를 웃돈다. “이 업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하면 내가 하는 업이 국가의 경쟁력이 될까, 무척이나 고민했다. 그랬더니 남들과는 시야가 달라지더라. 내가 하는 업이 일본보다 몇 십년 뒤쳐져 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결국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내 사업의 목적? 고급 식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회사가 되는 거다.” 스페셜티 커피를 표방하는 커피 체인점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의 말이다. 커피 업계의 에르메스가 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말하자면 ‘커피보국(coffee報國)’이다.

 

돈 많이 버는 게 경영의 목표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전략을 넘어 철학의 세상이다.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해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고민해야 한다. ‘가지’가 아니라 ‘뿌리’를 고민해야 한다. 경영은 누가 많이 버냐, 적게 버냐 하는 ‘돈 벌기 경쟁’이 아니라서다.

 

아니나다를까, 노자형님 역시 우리에게 묻는다.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득여망숙병(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예와 내 몸, 둘 중 어느 것이 더 내게 소중한가? 내 몸과 재물, 둘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큰 병인가? 앞의 두 개 질문으로 보자면 세 번째 질문의 답도 그리 어렵지 않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비즈니스의 이유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마케팅과 리더십을 아우르는 다양한 층위의 경영혁신 강의와 글을 통해 변화혁신의 본질과 뿌리를 캐내어 공유한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가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자경영 27]터미네이터 T-1000이 무서웠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