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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 은혜 받았어요^^

아침 8시반에 도착해서 밤 10시반에 나왔으니 총 14시간을 함께 했네요. 대전에 있는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로뎀’ 이야기입니다. 로뎀 유미영 원장님과는 지난 여름 ‘대전사회복지사협회’와 진행했던 <창의혁신리더스쿨>로 인연이 시작되었는데요. 제게 기관의 비전메이킹 워크숍을 의뢰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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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의 몸을 전혀 가눌 수 없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로뎀 선생님들은 단순히 케어만 하시는 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경험을 한 자락이라도 더 하게 해주시려고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도 함께 타시고, 특장차를 동원해서 제주도 여행도 가시며, 아이들 삶의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워주고 계셨습니다. 말이야 쉽지,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일이 아니라 전쟁입니다. 혼자서는 목도 가누기 힘든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의 외출이니 육체적으로 힘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편견과도 싸워내야 가능한 일이라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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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들을 로뎀 선생님들은 엄마처럼, 아빠처럼 살뜰히도 챙기십니다. 단지 일이라서 하시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낳은 내 아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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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교육 참석하는 선생님이 한분이라도 더 들으시라고 저랑 국장님이 나이트 근무합니다. 저희가 내일 좀 졸더라도 이해 부탁드릴게요. 바쁘신 와중에 로뎀 위해 먼 길 와주셔서 진심 감사드려요.” 교육 하루 전날 제게 보내주신 원장님의 메시지.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기에 하루 3교대로 직원 근무가 돌아갑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전 직원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이는 것도 1년에 딱 두 번. 그 중 하루를 제게 기꺼이 내어주신 겁니다. 하지만 이 날 역시 누군가는 야간 근무를 서야 하기에 원장님과 국장님, 리더 두 분이 워크숍 전날, 특별히 야간 근무를 서신다는 말씀. 일반적인 조직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다행히 두 분은 전혀 졸지 않으셨고, 든든한 존재감으로 워크숍 전체 프로그램을 빛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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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세 시간은 ‘내 삶의 이유’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내 일의 목적을 찾아가는 나침반이어서입니다. 맛난 점심을 먹고는 노자 도덕경 ‘거피취차’의 철학을 기반으로 ‘허상’과 ‘실재’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손에 잡히는 생생한 현실의 차원으로 시선을 돌리자는 얘기입니다. 이어서 다룬 주제가 ‘캐주얼’입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기에 나로 살아야 창의적일 수 있고, 나로 살아야 행복할 수 있어서입니다. 요컨대, 내 삶에서 출발하여 우리 기관의 존재이유를 다같이 짚어보고, 그걸 우리 로뎀의 언어로 표현해 내기 위한 '혁신'의 담론들입니다. 한 분 한 분 모든 선생님들의 이야기들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홉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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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서는 로뎀 선생님들과 우리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꽃을 흐드러지게 피웠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말씀들을 듣다 보니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건 참 많습니다. 어떤 강의나 교육을 가든 뭔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아올 때 보면, 참 많은 걸 배우고 와서입니다. 어제도 묵직하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배움의 가방을 한가득 채워 왔네요. 어느 자리에서든 겸손 또 겸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들 아쉬운 마음 한가득 안고 자리를 파하는데, 시계를 보니 허걱, 밤 10시반이네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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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세상에는 밝고, 기쁜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습니다. 자기의 자리에서 그런 일을 묵묵히 해주시는 분들 덕에 세상은 이만큼이나마 탈 없이 돌아갑니다. 저 역시 잘 모르고 살았던 중증 장애인 복지 영역. 하지만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니 조금씩 눈이 틔고, 귀가 틔고, 머리가 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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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롭고 소중하다. ‘귀하다’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을 줄 만큼 예쁘고 곱다. ‘아름답다’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로뎀 모든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 참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시는 로뎀 선생님들 모두가 참 귀하고 아름다우셨습니다. 로뎀 선생님들 품 속에서 아이들의 얼굴은 귀하고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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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밑에 약졸 없다 그러더니 딱 맞는 말입니다. '진정성'을 토대로 '직원자율'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주시는 유미영 원장님이 중심을 딱 잡아주시니 로뎀 모든 선생님들 또한 옆에 있는 동료 선생님들을 아끼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헌신합니다. 이 분들께 하루종일 참 많이도 배웠습니다. 대전시 사회복지기관 평가에서도 1등을 하셨다는데, 와서 보니 당연한 일입니다. 제 눈에는 '리더십'과 '조직문화' 차원에서도 앞서가는 '혁신조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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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받은 것 같아요.” 지난 대전에서의 창의혁신리더스쿨을 마치며 유미영 원장님이 제게 해주신 후기 말씀이셨는데요. 어제는 제가 진짜 은혜 받았습니다. 로뎀과 로뎀 모든 선생님들과의 보석 같은 주말을 이렇게나마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고맙습니다.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나노 융합소재 기술기업 엔트리움의 최고 혁신리더(CIO)로서 고객행복과 직원행복을 위한 일상 혁신에 한창이다.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도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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