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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018] 화가는 그렇게 바다가 되었다

[국제신문 연재] 화요경제 칼럼

국제신문 2021년 10월 19일자에 실린 <화요경제 항산항심> 연재칼럼입니다.


조직의 새로운 리더로 발령을 받은 A. 그는 내 능력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다. 급선무는 조직의 환골탈태다. 이것도 고쳐야 하고, 저것도 고쳐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 요지부동이다. 리더인 A가 ‘유위(有爲)’해서다. 유위하는 리더는 군림한다. 명령한다. 지시한다. 간섭한다. 통제한다. 나를 주체로, 너를 객체로 구분하니 나오는 현상이다. 혁신은 강압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절로 넘쳐 흐를 때 혁신은 만들어진다. 


한 알의 소금 알갱이와 한 컵의 물이 있다. 소금은 소금이요, 물은 물이다. 구분이다. 소금 알갱이가 물 속으로 들어간다. 서서히 물에 녹는다. 급기야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나를 비운 거다. 나를 버린 거다. 하지만 소금은 없어진 게 아니다. 소금은 이제 물이다. 물은 이제 소금이다. 물에서 짠 맛이 나서다. 소금은 나를 비우고 덜어내어 물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물이 되었다. 소금으로서 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다. 물로 스며들어 물과 하나가 된 것이다. ‘나의 확장’이다. 이게 ‘무위(無爲)’다.


무위해야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치달린다. 유위한다. 있는 그대로를 가만 두고 보지를 못한다. 의도를 가지고 자꾸 개입한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 때문이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기준 때문이다. 나를 중심에 둔, 너와 나의 구분이고, 이것과 저것의 구분이다. 나를 중심에 둔, 높고 낮음의 구분이고, 많고 적음의 구분이다.


사람의 마음은 수학공식처럼 똑똑 떨어지지 않는다. 명령하는 이에게는 반발해도 부탁하는 이에게는 마음을 여는 법이다. 녹아들어야 한다. 스며들어야 한다. 나의 존재감을 누르는 거다. 비우고, 버리고, 덜어내고, 내려놓는 거다. 그래야 품을 수 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다. 리더는 점령군 사령관이 아니다. 리더와 팔로워는 한 마음이어야 한다. 소금 알갱이가 리더에게 주는 교훈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카리스마로 무장한 리더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던 건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얘기다. 리더는 더 이상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리더라고 모든 걸 다 알 수가 없는 세상이라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과거에 매몰된 ‘꼰대리더’의 이런 생각이 조직을 망친다. 전문적인 역량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올리게 지원하고 도와주는 사람, 그가 바로 리더다.


노자 도덕경도 이를 뒷받침한다. 취천하상이무사(取天下常以無事). 항상 무사(無事)해야 한다. 그래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 ‘무사’는 ‘무위’의 다른 표현이다. 작위적인 나의 의도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얘기다. 자라게만 해주면 되는 건데, 자꾸 키우려 한다. 그래서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 


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어느 바닷가를 찾은 화가. 너무나 아름다운 해변의 풍광에 반한 그는, 생각 끝에 들었던 붓을 내려놓는다. 그저 바다를 보았고, 그저 바다를 들었고, 그저 바다를 느꼈다. 바다의 풍경을 화폭이 아니라 맘 속에 담았다. 화가는 그렇게 바다가 되었고, 바다는 그렇게 화가가 되었다. 


바다를 아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다와 하나가 되는 거다. 세상을 품어안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세상과 하나 되는 거다. 비결은 비움이다. 내 속의 아집을 비워 하늘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거다. 비우고 덜어내어 하늘과 하나가 되는 거다.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인간의 얄팍한 지식 체계로는 세상 만물의 원리를 모두 다 품어안을 수 없어서다. 노자가 ‘구분의 지식’ 대신 ‘포용의 지혜’를 강조했던 이유다. 비움으로써 껴안는 것이고, 껴안음으로써 하나가 되는 거다. 비움은 그래서 ‘하나 됨’이다.


복종의 조직에는 영혼이 없다. 혁신도 없다. 리더라면 나를 비우고, 나를 버리고, 나를 덜어내고,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보이는 것을 그저 보는 거다. 들리는 것을 그저 듣는 거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지우고 오롯이 함께 하는 거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사라지고, 나는 우리가 된다.


성인상무심 이백성심위심(聖人常無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항상 무심하다. 나의 마음을 고집하지 않는다. 백성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는다. 성인이 성인인 건 그래서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무위하면 못할 일이 없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국제신문 2021년 10월 19일자  <화요경제> 연재칼럼 https://bityl.co/9AnA


bit.ly/사장을위한노자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나노 융합소재 기술기업 엔트리움의 최고 혁신리더(CIO)로서 고객행복과 직원행복을 위한 일상 혁신에 한창이다.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도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방구석 5분혁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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