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경영혁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1. 아프리카 사람들은 게으르다. 직접 본 게 아니니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건 확실히 있다.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단다. 실패에 대한 기억도 금세 잊는단다. 낙천적이라는 얘기다. 낙천적이라는 의미인즉슨 적게 갖고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작은 일로도 많이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많이, 오래 일하지 않는다. 욕심 내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어서다. 맞다. 그들은 게으른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낙천적인 거다.
2. 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없다. 압도적이다. 오죽하면 놀 때도 전투적으로 놀까? 해외여행을 가서도 새벽부터 일어나 관광지를 누빈다.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 아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또 다른 전투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도가 떨어지는 이유? 이런 성향 때문이 아닐까?
3. ‘던바의 수(Dunbar's number)’란 게 있다. 개인이 안정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숫자가 150이라는 주장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원시 부족 마을의 구성원 평균 숫자가 150명 안팎이라는 데서 비롯된 얘기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가 밝혀냈기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주변을 살펴보자. 우리는 몇 명을 만나고 있는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 그러니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피곤한 날들이다.
4. 예전에는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적인지 동지인지 구분부터 해야 했다. 언제든 상대가 나를 해칠 수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문명이 지배하는 지금은 다르다. 상대가 느닷없이 나를 해칠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나의 무의식은 새로운 만남에 바짝 긴장한다. 생존을 목표로 했던 그 옛날부터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반사적 작동이다. 의식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만의 노동이자 스트레스다.
5. 아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부모 자식 간에도 말 못할 비밀이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사회가 요구하는 매너와 품격, 예의와 규범을 지킨다는 의미다. 천 근 만 근 몸이 무거워 큰 대자로 누워있고 싶지만, 거래처 사장을 만날 때 그런 자세로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을 만나려면 이래저래 챙길 게 많다. 만남은 그래서 곧 노동이다.
6. 그래서일까? 코로나 이후 비대면은 만남의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필요한 만큼의 익명성에다, 필요한 만큼의 느슨함을 누릴 수 있으니 오호, 이거 나쁘지 않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편하다. 전화로 음식 주문하는 것도 피곤하고 성가셔서 앱을 통해 주문하는 그들 아니던가. 디지털이 가져다 준 비대면 소통의 효율성과 확장성이다.
7. 단적인 사례? ‘타다’이다. 타다 드라이버는 손님이 묻지 않는 한, 먼저 말 걸지 말라고 교육을 받는다. 이름하여 ‘친절한 조용함’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려고 내 돈 내고 차를 탔는데, 그런 나의 프라이비트한 시공간을 침범하는 사람이 반가울 리 없다. 젊은 승객들이 느끼는, 택시에 대한 가장 큰 불만 사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아는 척을 했다고 이제는 다른 카페 가야겠다고 할까? 그만큼 나를 드러낸 만남이란 건 피곤한 행위다.
8. 우버의 성공에도 비대면 소통의 장점이 한몫 했다. 원한다면 이동하는 내내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결제까지 마치고 차에서 내릴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디지털 소통이 빚어낸 게임 요소가 덧붙었다. 앱으로 차를 부르면 그 차가 내게로 오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지도에 찍힌다. 요컨대, 고객 주문에 대한 친절한 피드백이다.
9. 중국집에 음식을 시켰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다시 전화를 건다. 돌아오는 소리는 한결같다. “아, 지금 막 출발했어요.” 그저 기다리란 얘기다. 이제는 아니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실시간 위치 파악이 가능하다. 게임적 요소다. 우버는 현실 세계를 디지털 공간에 거울처럼 옮겨놓은 일종의 게임세계인 셈이다.
10. 실시간 피드백이라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스마트폰 배터리 양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해보자. 갑자기 뚝 전원이 끊기지 않을까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배터리 잔존량을 우리는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그러니 사전 대비가 가능하다. 디지털 소통은 이 부분을 가능케 한다.
11.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적 자아를 나의 정체성과 구분하지 않는다. 단적인 사례가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이라는 엽기적인 표현이다. '나' 이전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관계를 우선시하는 거다. 자기소개서에 '자기'가 없는 이유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이력만 있지, 진정한 나를 보여주는 대목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한 가족이다. 서빙을 하시는 식당 아주머님도 처음 봤음에도 '이모'다. 술집에서 처음 만난 마담도 언제 봤다고 '오빠'란다. 대단한 관계의 확장성이다.
12.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한 마음 한 뜻’을 강조한다. 중국집 가서도 메뉴는 통일이다. 다른 거 시키려면 눈치가 보인다. 튀지 말라는 타박을 들을까봐서다. 그러니 유행도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우리'가 하면 '나'도 해야 해서다. 다들 하는데 나만 안 할 수 없어서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싫어도 해야 하는 거다. 몇 년 전 겨울, 까만색 롱패딩으로 온 몸을 감고 다니며 세상을 '김밥 천국'으로 만들었던 중고등학생들을 떠올려보시라.
13. 그런데 코로나가 닥쳤다. 예전처럼 만날 수가 없다. 비대면으로 소통의 방식이 속속 바뀌고 있다. 늘 만나서 어울려야 했는데, 어라,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억지로 함께 안 어울려도 되는 거다. 그제서야 보인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좋아하는 줄 알고 샀는데, 아니었던 거다. '우리'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샀던 거였다. 인정 욕구. 거기에 매몰되어 정작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거다.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혀있던 나를, 어찌 보면 코로나가 구해줬달까. 비대면이 부상하니 인정 욕구에 묶여있을 이유가 없다. 남의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으니, 나의 기준을 우선한다. 다른 사람이 감탄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감탄하는 내 모습을 찾아 나선다. 자유다. 다양성과 취향 개념이 부상하는 이유다.
14. 느슨한 관계가 주는 행복이 있다. 피곤하게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 개입하지 않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 간단한 격려와 응원, 가벼운 칭찬과 위로만으로도 서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관계다. '메타버스(Metaverse)'라 이야기하는, 현실을 초월한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그래서다. 디지털 시대 비대면 소통의 진화 방향이다.
15. 시각과 청각은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통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상을 구현해가는 중이다. 그럴수록 더 중요해지는 게 있다. 촉각과 후각을 통한 '물리적 실존감'이다. 모든 게 디지털로 바뀔수록 우리는 촉감에 집중한다. 그것만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 가상의 촉감도 만들어낼 수 있겠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나의 제품과 나의 서비스, 나의 브랜드에 어떤 촉감을 입혀야 할까? 코로나가 빚어낸 비대면 소통의 세상, 비즈니스 리더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