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안병민] ‘기후 이상’을 넘어 ‘기후 위기’의 시대이다. ‘위기’를 넘어 ‘재난’이란 표현도 등장한다. 상상도 못했던 기후라는 변수가 대한민국의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 맞춤하는 생존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대학교 홍종호 교수가 짚어주는 대한민국의 기후 위기 생존 전략을 스케치했다.
1. 전 세계 태양광과 풍력의 누적 발전 설비량이 1테라와트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태양광과 풍력을 다 합쳐서 25기가와트 수준이다. 문제는 올해 태양광 발전 설비량이 작년 대비 30% 정도 줄어든다는 전망이다.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를 화두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가 ‘환경’의 문제를 넘어 ‘산업’과 ‘경제’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현재의 지구촌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있어서 글로벌 흐름에 너무 뒤처지는 건 아닐까?
2. 화면에 이미지 하나를 띄우는 홍교수. 해골 모양의 사람이 작은 나룻배에 앉아 강을 건너가는 모습이다. ‘THE SILENT HIGHWAY MAN’이라는 캡션이 붙어있다. 직역하자면 ‘침묵의 노상강도’다. 그 아래에는 ‘Your Money or your life’라고 씌어 있다. 돈과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다.
1858년에 영국 모 잡지에 실린 만평이다. 템즈강이 이처럼 망가지고 오염됐다는 메시지다. 19세기 초 본격화된 산업혁명의 안타까운 그림자다. 경제는 성장하고,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일자리는 늘어났지만, 런던의 젖줄 템즈강의 오염은 심각해졌다.
오염의 심각성은 생태계 훼손을 넘어 그 피해가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거다. 실제 당시의 기록을 보면, 템즈강의 오염으로 인해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했다. 대표적인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는 런던 시민 32만 명을 20여 년에 걸쳐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부유해졌지만 정작 중요한 우리의 생명은, 또 생태계의 생명은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거다. 실제로 템즈강이 복원되는 데에 140년 이상이 걸렸다. 비용도 엄청나게 소요됐다. 그러니 돈과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돈도 중요하고, 동시에 생명도 중요하다. 둘 다 잡아야 한다.
3. 기후 위기 문제는 특정 지역의 수질오염이나 대기오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지역의 환경 문제는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정부 정책이나 규제도 강화되고, 관련 정화 기술도 나오면서 상당 정도 해소가 된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수질오염, 대기오염은 과거에 비해서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기후 변화는 다르다. 글로벌한 환경 문제다. 특정 지역을 넘어 지구적 차원의 문제다. ‘어느 나라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되는지’와 무관하다. 전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돌파했다. 80억 인구 전체가 기후 변화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셈이다. 그만큼 우리가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단 얘기다.
그래서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이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걸. 생명을 희생하는 돈의 추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명심해야 될 참의 명제다.
4. 위대한 경제학자 중 두 사람. 맬서스와 케인즈가 있다. 한 사람은 19세기, 또 한 사람은 20세기 초의 경제학자다. 두 사람이 보는 세계는 무척이나 달랐다. 맬서스는 ‘인구론’이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 기근, 질병, 전쟁 등의 인구 문제가 만연할 거라는 우울한 얘기였다. 하지만 맬서스가 놓친 게 있었다. 농업 생산의 기술 혁신이었다.
반면, 케인즈가 바라본 세상은 장밋빛이었다. 1928년도에 발표한 짧은 글에서 그는 ‘100년 후 전 세계의 절대 빈곤은 없어진다’고 얘기했다. 현실은 다르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일부에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전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십억 명에 달한다. 더구나 기후 변화 문제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저소득층은 더 큰 피해에 노출돼 있다.
맬서스와 케인즈 얘기를 꺼낸 건 다른 것 없다. 너무 비관적이어도, 너무 낙관적이어도 안 된다는 거다. 냉철하게 전후좌우를 살펴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정책을 펼치고, 그에 맞춤하는 산업 활동과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5. 울산에 가면 ‘공업탑’이라는 게 있다. 1960년대 중공업 육성을 위해 울산을 특정공업도시로 지정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62년에 세운 기념탑이다. 여기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있다. “…제 2차 산업의 우렁찬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산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이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중략)”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흩뿌려지던 게 감동이고, 자랑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최빈국이었던 조국의 근대화 시기였다.
지금의 검은 연기는 미세먼지,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눈총 받는다. 영국처럼 200년에 걸친 산업혁명의 변화가 아니다. 공업탑은 대한민국의 지난 60년간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 당시 ‘환경’이라는 개념은 누구의 머릿속에도 없었다. 오로지 경제 성장만이 목표였다. 1991년까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이어졌다. ‘검은 연기의 시대’였다.
6.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민의식이 높아졌다. 의사결정의 관심사도 바뀌었다. 새로운 시대를 연 결정적인 사건은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었다. 1991년도에 있었던 역사상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환경오염 사건. 돈만 좇던 대한민국이 생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이른바 ‘흰 연기의 시대’의 시작이었다. ‘흰 연기 시대’는 대략 2011년까지 20년정도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국민적 갈등도 많았다. 과거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수많은 국책사업들에 브레이크가 걸려서다. 갈등과 함께 정책적인 성취도 컸다. 대표적인 게 쓰레기 종량제다.
전 세계적으로 나라 전체가 한날 한시에 종량제를 시행한 나라?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1995년 제도 정착 이후 쓰레기 분리 수거와 쓰레기 종량제는 우리 삶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쓰레기 배출량은 자연스레 줄었다. 의미 있는 성취다.
7. 기후 위기 시대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과 기업이다. 개인의 생활과 소비 방식, 기업의 경영 방식, 금융의 투자 방식이 근원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그런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 여부다. 누가 그런 유인을 제공해 줄 것인가? 종량제는 정부 정책이 동인이 되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 주체들의 행동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시장의 적절한 요인 또한 필요하고 중요하다.
8. 세상은 늘 그랬듯 지금도 변한다. ‘흰 연기의 시대’를 넘어서 ‘연기 없는 시대’로 세상은 급격히 옮아가고 있다. 바로 ‘기후 변화 시대’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RE100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어다. 2050년까지 기업이 필요한 전력 전량을 재생에너지(석유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태양열, 태양광, 바이오, 풍력, 수력, 지열 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전력으로 구매 또는 자가생산으로 조달하겠다는 자발적 캠페인이다. RE100은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과 ‘CDP’에서 발족되었다.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 차원의 RE100을 넘어 도시 차원의 RE100도 필요하다. 도시 전체의 필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거다. 국가 차원의 RE100을 목표로 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9. 순환경제는 유럽 경제 정책의 주요 비전이자 전략이다. 단순히 폐기물을 재활용하겠다는 게 아니다. 원료의 채취 시점부터 모든 환경적인 문제,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겠다는 거다. 이를테면 플라스틱 산업의 경우, 지금은 석유 기반의 플라스틱이지만 앞으로는 원료 자체를 바이오 기반으로 바꾸겠다는 거다.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을 높인다거나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생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강하게 매기는 식의 정책을 넘어서는 변화다.
10. 그렇다면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한국은 과연 ‘연기 없는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가? ‘검은 연기’와 ‘흰 연기’ 시대의 대한민국은 합격점이었다. 비교적 잘 적응했다.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문제는 ‘기후 변화’ 시대에 대한 적응과 대응을 위한 국민적 동의다. 정치권 생각이 다르고, 행정부 관료들의 생각이 다르다. 언론의 목소리도 각양각색이다. 일관된 목표와 정책 없이 이렇게 간다면 에너지 정책이건 산업 정책이건 환경 정책이건 재정 정책이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11. 1930년대 우리나라 산은 황폐했다. 지금은 아니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아름다운 산이다.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삼십 년에 걸쳐서 만들어낸 기적이다. 국가 차원의 조림 프로젝트였다. UN에서 ‘2차 대전 이후에 조림에 가장 성공한 나라’로 한국을 꼽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기후 위기 시대도 온 국민이 마음을 모은다면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외려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12. 순천만을 아시는지. 1990년대 순천만을 찾는 연간 관광객 수는 10만이었다. 2019년 기준 순천만 관광객은 500만 명을 넘어섰다. 잘 보존된 자연 생태계가 이유다. 순천시는 호남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가 됐다.
순천만, 순천시의 효자다.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거 순천만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유? 강 바닥에 있는 골재를 캐내어 공사 현장에 팔겠다는 거였다. 만약 그때 그 결정을 순천시가 했다면 지금의 순천만은 없다. 순천만은 현재의 지혜로운 의사결정이 후대의 성장과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대로 현재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후대에 엄청난 비용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라는 중차대한 이슈 앞에서 우리의 의사결정은 과연 현명한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
13. ‘기후 위기’ 시대다. 과거에는 ‘지구 온난화’라 불렀다. 이후 ‘기후 변화’라는 말을 썼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후 변화의 피해가 커져서 ‘기후 위기’가 공식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는 ‘기후 재앙’이란 표현도 심심찮게 들린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 중 하나가 에너지 전환이다. 그것 말고는 사실 방법이 없다.
14. 여기, 에너지 전환 시대의 네 가지 명제를 갖고 왔다. 첫째, 기후 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다. 경제 문제다. 둘째, 뉴노멀로서의 탈탄소 무역규범이 현실화하고 있다. 셋째,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은 상수다. 에너지 공급망 교란과 에너지 전쟁은 변수다. 넷째,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화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세계 각국의 흐름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당장 100% 재생에너지로 모든 에너지 수요를 맞출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천연가스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거다. 전쟁이라는 돌발 변수 외 코로나도 에너지 공급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 통과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재생에너지 확대다. 전력 인프라 구축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15. 대한민국에서 재생에너지는 가능할까? 재생에너지에 대한 오해도 많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다, 햇볕이 약하다, 바람이 없다, 재생에너지는 원가가 비싸다 등의 얘기를 많이 한다. 실상은 다르다. 원가만 해도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생산원가가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말할 것도 없고 원전보다도 싸다. 전 세계 평균을 보면 그렇다.
우리는 여러 가지 정책적인 혼선과 정치적인 이유, 주민 수용성의 문제, 지자체의 방관 등으로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확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빨리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재생에너지 전환 여부는 앞으로 기업 경영의 커다란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다.
16. 재생에너지 전환과 관련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 개념이 있다. RE100과 ESG, CBAM이다.
17. RE100은 앞에서 언급했다. 100%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쓰겠다는 얘기다. 노파심에 얘기하지만 RE100은 규제가 아니다. 자발적인 캠페인이다. 협상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규정이나 규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전 세계 38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들이 2014년 이후 다 가입을 했다. 대한민국 기업들은 참여가 늦었다. 2020년부터 시작해서 이제 25개 정도 기업이 가입을 했다. 앞으로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가입 이유? 캠페인에 동참하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물건을 팔 수가 없어서다. RE100에 참여한 기업들이 밸류체인 상 엮여 있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압박해서다. 이게 정부의 규제보다 더 무섭다. 글로벌 기업들에 원자재와 제품을 팔아야 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RE100에 가입하는 배경이다. 이러한 시장의 목소리에 정부와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18. ESG는 설명이 필요없는 개념으로 부상했다. 투자사나 자산운용사들이 ESG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럽에서는 2024년도부터는 기업들의 ESG경영을 의무화하는 제도들을 만드는 중이다. 유탄을 맞은 곳이 우리나라 한국전력이다. 한국전력에 투자하고 있던 네덜란드 연기금이 투자 철회를 선언하고 800억원 규모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한전의 석탄발전소 추가 건립이 이유였다. 2021년의 일이다. 한전 발 신용경색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 추세라면 30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 전력 시장의 왜곡 때문이다.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체계다. ESG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인 셈이다.
19. 마지막으로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약자다. EU는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55% 수준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의 실현을 위해 제시한 게 CBAM 도입이다. 탄소 누출 문제 해결을 위해 EU 수입품에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수입 제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을 다루는 인증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세금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통상 마찰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라서다. 2027년도부터 시행 예정되어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각종 산업에도 상당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20. 유럽에서 탄소 배출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데, 다른 나라들이 그러지 않는다면 이는 국가간 불공정 요소다. 탄소 배출의 총량이 줄어드는 효과도 없다. 결국 전 세계 모든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새로운 요소가 될 것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생산품을 EU에 수출하려면 더 큰 세금 부담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탄소배출 거래제도(ETS)를 유럽에서 시행한 게 2005년부터다. 과거에는 유럽 각국 정부가 기업에 공짜로 탄소배출권을 나눠줬다. 이를 2032년까지 100퍼센트 유상으로 돌리겠다는 거다. 탄소배출권 가격도 시장 압박 방식을 통해서 올릴 전망이다. 그 가격 그대로 국제 기준에도 적용할 거다. 유럽이 이러니 미국도 따라간다. 캐나다나 일본도 정부 차원에서 찬성의 목소리를 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역시 이런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21. RE100과 ESG는 시장 내에서의 자발적인 변화다. CBAM은 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무역 규제다. 2020년대는 탈탄소 무역 규범이 시장 내에 완전히 정착되는 시기가 될 거다.
미국은 적극적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이를 웅변한다. 에너지와 의약품의 물가를 잡겠다는 게 이 법안의 목적이다. 실제 총 투자액의 84%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에 들어간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10년 내에 하겠다는 거다. 기후변화를 위해서.
22. ESG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의 경제 경영활동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게 커질 거다. 핵심은 탄소 배출이다. 이걸 줄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탄소세 도입이 필수적이며, 톤당 가격은 $200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마크 카니 전 영란은행 총재도 말한다. 금융기관은 기후 변화를 투자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23. 요컨대, 지난 2천년간의 글로벌 GDP를 보면 앞선 1800년은 맬서스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이후 200년 동안의 경제 규모는 100배가 늘었다. 수명 연장에, 자본 축적에, 기술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난 게 지난 200년이었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물적 토대는 화석 연료였다. 석탄, 석유, 가스가 만들어낸 전기 덕분이었다.
이후 새로운 에너지원이 나타난다.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다.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근본적인 변화.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주장이다.
24. 세계 탄소 배출량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초기 수평으로 가다가 기울기가 급격하게 커지는, 이른바 하키 스틱 모양의 J커브를 보인다.
이러한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적응 아니면 감축이다. 기후 변화에 맞추어 살아가거나 아니면 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둘 중 하나다. 기후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법? 쉽지 않다. 엄청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겪는 각종 기후 재해들을 보라. Natural Hazards Review(Vol.18 2017)에 따르면, 앞으로 자연재해로 인한 대한민국의 경제적인 피해는 연간 25-26조원에 달할 거라는 전망이다. 기후 변화에의 적응이란 선택지는 현실성이 없다. 남는 건 탄소 배출량 감축이다. RE100이나 ESG나 다 그런 맥락에서 진행되는 거다.
25. 유럽에서 강조하는 건 ‘트윈 트랜지션’이다. 쌍둥이 전환. 하나는 ‘그린’으로의 전환, 또 하나는 ‘디지털’로의 전환이다. 지난 20년간 경제 답보 상태인 유럽 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기제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기후 위기가 촉발한 세계 무역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탄소 경쟁력은 곧 기후 경쟁력이고, 이는 곧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역시 에너지 분야의 혁신적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산업 공동화의 위험 아니면 국가 경쟁력 제고,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관건은 탄소 경쟁력 확보다. 에너지 요금 정상화가 전제다.
26. ‘디지털 전환’은 한국의 강점이다. 반면 ‘녹색 전환’은 한국의 도전이다. 콜롬비아 대학교 제프리 삭스 교수의 말이다. 말이 좋아 도전이지, 약점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스스로가 보다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이 사안을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 상황은 열악하다. 1차 에너지 소비는 세계 10위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며, 미세먼지 농도는 OECD 국가 중 1위다. 다가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기준 세계 7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에너지 수급 위기 상황에 대한 불감증이 심하다는 데 있다.
이유? 왜곡된 에너지 가격 체계때문이다. 이런 위기 상황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되고 있어서다. 전기요금이 싸니 문제의식이 없다. 에너지 효율에 투자하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독립을 제고하고. 이걸 못하는 거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대전환이 꼭 필요한 이유다.
27. 1980년도부터 2018년까지, 1인당 소득 증가에 따라 1인당 탄소배출량이 일관되게 늘어나는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미국, 독일, 일본은 다른 그래프를 보인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탄소배출량이 줄어든다.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탄소배출량의 40%를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상태다. 과연 가능할까? 다른 나라들에 비해 탄소의 절대 배출량 자체는 적다. 하지만 기울기가 다르다. 12년 만에 40%를 줄여야 한다.
28. 분모에 GDP를 넣고, 분자에 전력 소비량을 넣으니까 주요 국가들은 수치가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지속적인 오름세다. 전력 효율성이 계속해서 악화돼 온 거다. 전문가들은 일관되게 말한다.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탄소 배출 감축 정책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거라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출발점이 에너지 가격 정상화라고.
우리나라는 OECD 38개국 중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꼴찌인 나라다. 압도적인 꼴찌다. 10%가 안 되는 유일한 나라다. OECD 38개국의 평균은 30%를 넘어섰다. 어떤 국가들은 80%까지 간다.
올 초에 나온 매킨지 보고서다. 시나리오에 따라 조금 다른데, 최소 2050년이 되면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의 80-90%를 공급할 거란다. 매킨지 컨설턴트들이 환경론자라서 나온 리포트가 아니다. 시장에 대한 건조한 예측일 뿐이다. 참고로, 지난 2020년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82%였다. 작년엔 84%였다.
29. 해상풍력 단지에 드론이 날아가서 모니터링을 한다. 독일 모 에너지 기업의 현재 모습이다. 그린과 디지털의 결합이다. 한국에 있는 해상풍력 발전기는 장난감 수준이다. 유럽에 설치되고 있는 풍력 발전기들은 블레이드 지름이 220m다. 건설 기간도 짧다. 1년 정도면 풍력발전 단지 하나를 만든다. 이미 대만이 해상풍력 강국을 선언했다. 거기에 이미 투자하고, 계약을 따내는 기업들이 꽤 있다. 이런 시장을 대한민국에도 만들어야 한다.
30. 기후 위기는 환경의 문제를 넘어섰다. 산업과 경제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곧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기후 위기 이슈를 바라보는 우리 시각의 재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기 없는 시대'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어느 정도인지 꼼꼼하게 짚어보어야 한다.
기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에너지 전환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길이라서다.
한국 경제의 도전과 기회가 기후 위기 시대에 있다. 물론 낙관적인 요소도 있다. 하지만 가치의 충돌과 시장의 왜곡 또한 현실이다. 극복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기후 위기는 우리 경제의 도약대가 될 거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도 해야 하고, 해내야 하는 일이다. 기후 위기, 우리에겐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기회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기적을 꿈꾼다. ⓒ혁신가이드안병민
*질문 하나.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태양광과 풍력, 둘 중 어떤 분야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아져야 할까?
홍교수 답변. "태양광과 풍력의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이 현재 25기가와트 정도 된다. 500기가와트는 되어야 국제사회에 공언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 20배 이상을 늘려야 하는 수치다. 비중으로 따지자면 500기가 와트 중 태양광이 350-400, 풍력이 100-150 정도 되면 이상적일 듯 하다.
풍력 발전의 문제는 땅 부족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풍력으로 350기가와트 수준의 발전량을 만들려면 서울시 면적의 5-6배 정도의 땅이 필요하단다. 적지 않다. 농업의 경우, 국토의 18%를 활용하여 19%의 곡물 자급률을 보인다. 서울시 면적의 5-6배 정도면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4% 수준이다. 이 정도 땅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산업 인프라로서 충분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가치가 있지 않을까?
좋은 소식은, 태양광의 에너지 효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거다. 그만큼 풍력 발전을 위해 필요한 토지 면적은 줄어들 거다. 그러니 한국도 그리 불리한 조건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다. 한국은 8%가 안 된다. 갈 길이 멀다. 땅이 좁다, 바람이 없다는 건 핑계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질문 둘. 현재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충분치 않다면 대안이 있을까?
홍교수 답변. "맞다, 어렵다.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는 이유다. 직접적으로 탄소 배출 자체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다. 탄소 배출을 그만큼 많이 한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의 실효성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 배출권 거래제 시장 가격이 3만원대다. 유럽은 11만원대다. 빠른 시간 내에 유상 할당 비율도 높이고, 전체 총 배출량도 줄여야 한다. 채찍만 가해선 안 된다. 당근도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산업 분야가 철강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철기 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앞으로도 철강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을 거다.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업들로 하여금 그린테크놀로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질문 셋. 원전 에너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합리적 대안은?
홍교수 답변. "경제학자로서 원전에 대해 특별한 편견을 갖고 있진 않다. 원전은 우리나라 고도성장기에 주요 전력 공급원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원전의 발전 설비 용량이 국토 면적 대비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많다는 거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위험 가능성이 제로일 순 없다. 핵폐기물 처리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원전을 계속 늘려간다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국민들 간 갈등 문제도 크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라는 대안이 있다. 전 세계가 이쪽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한국도 원전을 더 늘리기보다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싶다. 물론 지금 있는 건 써야지. 지금 우리나라 원전발전소는 24기가 있다. 앞으로 28기까지 갈 거다. 있는 것은 쓰되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만큼 거기에 맞추어 조정해나가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