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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복순'에게서 '메타버스'를 읽다

[방구석5분혁신.디지털]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업계 모든 킬러들이 그녀를 우러러본다. 존경과 선망의 눈빛이다. 화려한 데뷔를 꿈꾸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연습생 킬러들에게는 내 마음 속 BTS나 다름없다. 소속사 대표도 그녀를 맘대로 못하니 가히 킬러 업계 끝판왕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열다섯 살 딸이 있다. 살인이야 ‘누워서 떡 먹기’인 그녀지만, 사춘기 딸과의 대화는 '산 넘어 산'의 난제다. 영화 ‘길복순’ 이야기다. ‘길복순’은 집에서는 자상한 ‘엄마’로, 직장에서는 유능한 ‘킬러’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일과 삶에 대한 잔혹드라마다.

(▲사진=netflix)


엄마와 킬러. 영화적 장치로 내세운 두 개 정체성의 간극은 크고 깊다. 모순과 역설이 가득한 이중적 삶이다. 간극의 차이만 있을 뿐, 일상 우리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의 내 모습이 집에서의 그것과 같을 리 만무하다. 가정은 사적인 울타리 안에 있고, 일터는 공적인 테두리 안에 있어서다. 그렇게 우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며 매일을 산다. 사적인 삶을 살아가는 ‘1번 나’와 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2번 나’, 두 개의 나를 가지고 사는 거다. 아니, 상황과 입장에 맞추어 훨씬 더 잘게 쪼개진 여러 개의 나로 산다. 이름하여 ‘멀티 페르소나’. ‘길복순’에게서 메타버스 개념이 겹쳐 보였던 건 그래서다.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통해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이다. 마우스와 키보드, 2차원의 평면 모니터를 통해 소통하던 웹과 달리, 메타버스는 3차원이다. 공간화(化)된 웹이다. 메타버스로 풍덩 뛰어든 우리는, 나의 세계관에 맞추어 시대를 설정하고, 공간을 창조한다. 조물주가 따로 없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가짜인 듯, 가짜 아닌, 가짜 같은 현실 세계다. 


메타버스 속 ‘나’와 물리적 현실의 ‘나’가 똑같을 수 없다. 물리적 현실은 ‘주어진’ 현실이지만, 디지털 현실은 내가 ‘만들고 편집하는’ 현실이라서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시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걸 만들어, 사람들과 교류하고, 거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거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암호화폐와 NFT 기술을 통해서다. 


“개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진정한 나,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대인 관계에 따라 드러나는 다양한 자아가 모두 나 자신이며, 한 명의 인간이란 여러 자아의 합이다.”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문장이다. ‘십인십색’을 넘어 ‘십인백색’의 세상이다. 아침 기분 다르고, 저녁 생각 다르다. ‘나다움’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진 게 나다. 요컨대, 모든 인간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이며, 다중적이다. 


획일화의 효율은 과거의 이야기다. 창의적 다양성이 각광받는 세상이다. ‘부캐’가 부상한 배경이다. 유재석의 ‘유산슬’과 김신영의 ‘다비이모’가 화제를 모았다. 카페 사장 ‘최준’과 힙합가수 ‘마미손’이 이목을 끌었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서준맘’은 또 어떻고. 현실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고유의 세계관과 함께, 부캐를 통해 구현된다. 크고 작은 메타버스 공간 속에서다. 


메타버스는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실에서 가질 수 없었던 새로운 기회를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란 존재의 다채로운 매력과 가치가 메타버스를 통해 극대화된다. 그러니 '부캐의 발견'은 기 못 펴고 숨 죽이고 있던 ‘또 다른 진짜 나’를 찾아가는, 정체성 회복의 여정이다. 현실이란 감옥에 갇혀있던 내가, 메타버스라는 날개를 달고 감행하는 행복한 탈주극이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그렇게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우리는 본캐와 부캐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지개빛 나를 빚어내며 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속성이라서다. 메타버스는 그 팔색조 변주의 음악당이다. 챗GPT를 필두로 혁신적인 인공지능 서비스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메타버스의 사용자경험 개선으로 이어질 요소들이다. 메타버스로의 인류 대이동도 시간 문제다 싶다. 


장자의 ‘호접지몽’을 곱씹어본다. 디지털 현실 속 아바타가 진짜 나인지, 물리적 현실 속 내가 아바타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도.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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