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실전MBA] 연재칼럼
*조선일보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실전MBA> 칼럼입니다.
작년 겨울, 경기도 안산에 있는 영어마을이 누적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해 개원 8년 만에 문을 닫았다. 한때 열풍처럼 몰아친 영어마을 사업 붐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전국 30여 영어마을. 그러나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달리 속을 열면 대부분 적자투성이다. 규모가 가장 크다는 파주 영어마을도 개원 이후 6년간의 누적 적자가 410억원이라니 다른 영어마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또 다른 민폐성 사업은 지역 축제다. 함평 나비축제나 화천 산천어축제 등 나름대로 특색을 가지고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 성공적인 축제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 축제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올여름에만 전국에서 개최된 연꽃축제가 12개란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특색은 온데간데없다. 남는 건 상술이다. 서로 경쟁이 붙다 보니 중요한 건 '건수 채우기'다. 다른 데서 한다면 우리도 질 수 없다. 마술이나 노래자랑 등 축제의 주제와는 상관없는 뜬금없는 공연들이 행사를 채운다. 지역의 특징을 살린 내실 있는 축제가 나오기 힘든 이유다. 이런 축제가 1년에 2500여개다.
◇차별화는 독특하고 고객에게 가치 주는 것
'차별화'. 다른 브랜드와 구별될 만큼 독특하면서, 동시에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 것. 마케팅에서 이야기하는 '차별화'의 의미다. 위에서 언급한 영어마을과 지역 축제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차별화 포인트의 부재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던 시절, 제조는 바로 판매로 이어졌다. 고객이 원하는 기능만 갖추면 고객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수많은 브랜드와 경쟁해 살아남아야 하는 공급 초과의 시장에서 '차별화'는 이제 핵심적인 생존 요건이다. '남들이 하니 나도 어찌 되겠지' 하는 베끼기 일변도의 순진한 생각으로는 결코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옆집의 제품, 서비스와 다른 게 없다면 고객이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차별화'는 그래서, 고객으로 하여금 우리를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신성한 작업이다.
◇아파트도 한옥 느낌 살린 차별화 열풍
대한민국 주거 형태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아파트에도 '차별화'의 바람은 거세다. 회사별로 품질 차이를 체감하기 힘든 데다 경기도 좋지 않으니 자칫하다간 미분양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아파트.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한 차별화 경쟁이 그 어느 분야보다도 치열한 배경이다. 요즘 이런 아파트 차별화의 중심에 '한옥'이 있다. 목포의 한 아파트는 최상층 일부 가구에 한옥 처마를 형상화한 천장 디자인을 적용했다. 경기도 의왕의 한 아파트는 현관 앞에 한옥 모양의 중문을 설치하고 한지 느낌의 벽지와 흙을 마감재로 썼다. 벽 중간에는 나무 기둥을 넣어 한옥 느낌을 살렸다. 인테리어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한옥을 집 안에 들인 아파트도 나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사랑방, 한실, 안마당 등 한옥의 전통 개념을 도입한 '한국형 LH주택'을 개발했다. 어디 그뿐인가? '사고 싶은' 아파트가 아니라 '살고 싶은' 아파트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나타난 새로운 콘셉트의 아파트, '힐링 아파트'다. 단지 내 텃밭을 가꾸며 마음의 여유와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한 '애그리테인먼트(Agritainment) 아파트', 그리고 마인드 힐링 센터와 전문 상담사를 통해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마인드 힐링 아파트'가 그것이다. 아파트 차별화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의료·전문직도 차별화해야 고객 몰려
'의료 쇼핑'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이제 의료 분야도 차별화하지 않으면 고객의 외면은 정해진 절차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명지병원 건강검진센터에 들어서면 마치 숲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단순히 인테리어 때문만은 아니다. 환자들에게 치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차별화된 배려다. 검진센터 이름도 '숲마루'. 유성에 있는 선병원의 국제검진센터는 천장을 유리로 만들어 검진받는 환자들이 병실에 누우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했다. 특급 호텔에서도 좀처럼 누리기 힘든 호사다. 별이 보이는 병실, 숲 속 분위기의 검진실 등 환자의 정신적 안정까지 고려한 병원들의 최근 디자인 콘셉트는 '그린&에코'다. 차별화 바람은 병원의 모습도 바꾸고 있다.
단지 건물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 한의사, 변호사 등 고급 자격증 분야의 전문가 시장도 마찬가지다. 실력이건, 시설이건, 고객 응대건, 나만의 필살기를 기반으로 차별화된 무장을 하지 않으면 고객의 낙점을 받을 수 없다. 업종이나 직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마케팅을 공부하고 차별화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 게 마케팅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호텔'이라는 모토로 작년 겨울 새롭게 단장한 서울 충무로의 세종호텔은 아무런 특색도 스토리도 없던 숙박 공간을, 미술 작품 350여점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핀란드 항공사인 핀에어의 CEO는 규모나 고급 서비스로 승부하는 5성급 항공사가 아니라 다른 항공사에서는 볼 수 없는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개성 있는 4성급 부티크 항공사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든 게 '차별화' 전략이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눈에 띈다'는 뜻이고, 그건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눈에 띄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르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브랜드는 죽은 브랜드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차별화'와 관련하여 몇 번이고 곱씹어봐야 할 프랑스의 세계적 생활용품 회사 '렉슨디자인'의 CEO 르네 아다의 말이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fb.com/minoppa)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