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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진정한 '열림'을 향한 역설적 '닫힘'

[방구석5분혁신.영화읽기]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영화 《콘클라베》는 단순한 정치 스릴러를 넘어선다. 바티칸이라는 세상 가장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인간 본연의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열림을 위한 또 다른 닫힘'이라는 역설적 개념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스포 주의)


닫힌 문: 세상과 단절된 성역의 그림자


교황이 쓰러진다. 바티칸의 문이 닫힌다. 전 세계 추기경들이 모인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콘클라베가 시작된다. 영화 《콘클라베》는 이 비밀스러운 의식을 파고든다. 세상과 완벽히 차단된 공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와 숨겨진 진실을 폭로한다. 영화는 '닫힌 문'이라는 상징을 통해 묻는다. 과연 진실과 정의, 그리고 진보는 누가 결정하는가. 그 기준은 객관적인가, 아니면 자의적인가.


철저한 '닫힘': 그 목적은 '열림'인가


콘클라베 자체가 이 역설의 시작점이다. 외부 세계와 완벽히 단절된다. 추기경들은 모든 통신기기를 빼앗긴다. 라디오, 신문, TV 접근도 차단된다. 물리적, 정보적 '닫힘'의 극치다.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이다. 세속적 간섭을 배제한다. 성령의 인도만을 따른다는 명분이다. 순수한 선택, 진정한 '열림'을 위한 절차적 '닫힘'인 셈이다. 하지만 이 '닫힘'이 또 다른 종류의 문제를 만든다. 정보가 특정 인물에게 집중된다. 폐쇄된 공간에서 권력은 은밀하게 작동한다.


로렌스의 선택: 정보의 수호자이자, 조작자?


그 중심에 로렌스 추기경이 있다. 그는 콘클라베 관리자다. 동시에 유권자다. 정보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다. 그는 닫힌 문 안에서 정보를 선별한다. 외부에 벌어진 폭발 소식을 접한다. 후보들의 비리 의혹도 파악한다. 어떤 정보는 공개한다. 어떤 정보는 묻고 넘어간다. '투명한 공개'라는 '열림'을 희생하는 행위다.


예컨대, 그는 트랑블레 추기경의 부패 증거를 폭로한다. 콘클라베 규율까지 어기며 얻어낸 정보다. 부패한 성직자를 단죄하려는 정의로운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행동 타이밍은 절묘하다.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밀리고 트랑블레가 부상할 때다. 그의 '정의'는 계산된 행동처럼 보인다. 공익과 개인적인 정치적 계산이 뒤섞인 그림이다. 그의 '정의'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판을 만들기 위한 '정의'다.


철학적 딜레마: 진실의 '닫힘' 대 미래의 '열림'


가장 극적인 '닫힘'은 베니테스 추기경의 비밀을 다루는 방식이다. 베니테스는 인터섹스 존재다. 가톨릭 교회의 가장 단단한 '닫힌 문'-남성 중심의 구조와 이분법적 성별 관념-에 도전하는 정체성이다. 로렌스는 이 충격적 진실을 알게 된다. 이 진실을 공개하는 것은 교회에 엄청난 '열림'을 가져올 것이다. 대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는 고민 끝에 이 사실을 '닫기로' 결정한다. 다른 추기경들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 언론에도 알리지 않는다. 완전한 투명성이라는 '열림'을 거부한다.


그는 이 '닫힘'을 통해 베니테스라는 존재 자체가 가져올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열림'을 선택한다. 교회의 포용성 확대다. 다양성 인정이다. 기존 경계를 넘어서는 미래다. 이 더 크고 근본적인 '열림'을 위해 정보 공개라는 당장의 '열림'을 포기한 것이다. 결국, 베니테스라는 교황의 탄생. 겉보기에는 위대한 '진보'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위험한 기준: 그의 '옳음'이 곧 '진실'이 되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이러한 '닫힘'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닫아둘' 이야기인가. 로렌스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의 판단은 순전히 개인적인 신념에 따른다.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그의 믿음이다. 트랑블레의 부패는 반드시 폭로해야 할 '악'이다. 베니테스의 정체성은 덮어두고 나아가야 할 '미래'이다. 이 기준은 객관적인가. 교회의 공식 절차를 따른 것인가. 아니다. 로렌스라는 한 개인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닫힌 문 안에서는 이러한 자의성이 극대화된다. 외부 감시가 사라진다. 정보는 그의 손에 쥐어진다. 그는 스스로 '진실의 수호자'이자 '정의의 심판자'가 된다. 하지만 그의 '정의'는 다른 이들에게 기만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진보'는 특정 진실을 억압한 결과일 수 있다. '열림을 위한 닫힘'이라는 역설은 어쩌면 그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한 위험한 정당화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다. 확신은 화합의 큰적이요, 관용의 치명적인 적이다. 살아 움직이는 믿음은 의심과 함께한다.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믿음도 필요하지 않다.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교황이 오시도록 기도하자." -로렌스 추기경의 연설 중


'닫힘'은 끝나지 않았다: 닫힌 문 속 '진실' 게임의 위험


《콘클라베》는 '닫힌 문'을 통해 '열린 사회'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닫힌 문'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정보와 권력이 집중될 때, 개인의 자의적인 기준이 '진실'과 '정의'를 왜곡시킬 수 있다. 로렌스는 교회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최선이 과연 모두를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닫힌 문 안에서 진실은 휘발되고, 정의는 흐릿해진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정보 독점과 자의적인 권력 행사에 대해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닫힌 문 속 '진실' 게임은 언제나 위험하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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