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이 멈춘 뒤에야 들리는 것들: <윗집 사람들>

[방구석5분혁신.영화읽기]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영화 <윗집 사람들>은 블랙 코미디로 위장한 '하이퍼 리얼리즘 부부학 개론'이다. 하정우, 이하늬, 공효진, 김동욱. 네 배우가 좁은 거실에서 펼치는 대사의 향연은 그야말로 '차력쇼'다. 폭소 터지는 티키타카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권태'와 '무관심'이라는 서늘한 현실을 비춘다.


웃음으로 진입해 뭉클함으로 귀결되는 반전의 드라마. 남의 집 불구경하러 갔다가 우리 집 안방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자극적인 소재는 거들 뿐, 결국 사람 사이의 온기와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 웃다가 뼈 맞고, 끝내 사랑하고 위로받고 싶은 모든 부부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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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르의 기만: 블랙 코미디라는 미끼


영화의 도입부는 철저한 소극(Farce)이다. 감독은 위트 있는 대사와 민망한 상황 설정을 통해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한 관음적 재미는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당기는 효과적인 유인책이다. 그러나 이 웃음은 의도된 함정이다. 관객이 가벼운 코미디를 즐기는 사이, 영화는 서서히 장르의 외피를 벗고 3040 부부(아니, 그 이상의 부부까지도)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서늘한 현실, 즉 '하이퍼 리얼리즘'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2. 배우들의 차력쇼: 밀실을 채우는 압도적 티키타카


이 영화는 시각적 볼거리 대신 청각적 리듬감으로 승부하는 실내극이다. 하정우, 이하늬, 공효진, 김동욱 네 배우의 연기는 '차력쇼'에 가깝다. 한정된 공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오직 배우들의 앙상블 덕분이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대사의 티키타카는 그 자체로 강력한 서스펜스이자 엔터테인먼트다(대사도 대사지만 표정 연기들이 압권이다). 특히 찌질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하정우-이하늬의 판타지적 연기와, 지극히 현실적인 권태를 묘사하는 공효진-김동욱의 생활 연기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파열음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네 명의 합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관람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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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계의 시차: 사랑은 어떻게 무관심이 되는가


영화의 중반을 넘어서며 웃음기는 사라지고 페이소스가 짙어진다. 영화가 포착하는 진짜 공포는 윗집의 물리적 소음이 아니다. 아랫집 부부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다. 처음에는 죽고 못 살던 연인이 시간이 흐르며 서로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무관심의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갈등의 원인은 상대가 미워서가 아니다. 더 이상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상대에 대한 결핍에서 기인한다. 감독은 화려한 기교 대신 인물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침묵의 간격을 통해 잔인한 '관계의 시차'를 건조하게 응시한다.


4. 절제의 미학: 사과는 가장 강력한 반전이다


후반부의 감동은 신파적 오열이 아닌, 지극히 논리적이고 차분한 수습에서 온다. 갈등이 임계점을 넘은 직후, 인물들은 억지 화해를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바닥을 인정하고 건네는 '진심 어린 사과'가 등장한다. 이 사과는 패배 선언이 아니다. 다시 서로를 '반려'로 인식하겠다는 관계의 재설정이다. 앞선 코미디가 현실의 비루함을 완벽하게 고증했기에, 가장 우스꽝스러운 순간에 터져 나온 진지한 고백은 개연성을 획득한다. 절제된 사과가 주는 울림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극적인 장치보다 담백하면서도 강렬하다.


5. 쿠키 영상: 엘리베이터라는 또 하나의 무대


엔딩 크레딧 사이 등장하는 쿠키 영상은 이 영화의 백미이자, 감독의 재기발랄함이 응축된 씬이다. 극 중 대사로만 언급된 인물들이 좁은 엘리베이터 안 한 컷에 담긴다. 네 사람의 대사로 충분히 묘사되었던 그들이기에 낯설지 않다. 그래서 웃음이 터진다. 유쾌한 농담처럼 다가오는 장면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의 긴장을 웃음으로 이완시키는, 놓쳐선 안 될 영리한 마무리다.


6. 성찰: 부부라는 이름의 가장 가까운 타인


<윗집 사람들>은 남의 집 구경으로 시작해 우리 집 거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영화다. 자극적인 소재는 거들 뿐,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다. 웃다가 끝내 코끝이 찡해지는 것은 영화가 슬퍼서가 아니다. 스크린 속 그들의 권태와 고독이 현실의 우리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다. 하정우 감독은 배우들의 경이로운 연기 합을 통해, 웃음 뒤에 가장 날카로운 위로를 숨겨 놓았다.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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