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러게요, 전 왜 이러고 있을까요? //
윤대녕 작가의 산문집, <칼과 입술>에 나오는 구절이다. 위 문장을 보면 나처럼 삶에 찌들어 있는 사람을 비판하는 글 같지만, 사실 책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작가의 추억에 담긴 음식이 주된 내용이고, 그 음식의 재료에 대한 예찬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책이다. '날기를 영원히 포기했는가?'라는 묻는 대목은 철학적 사색의 느낌이 매우 강하긴 하지만,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 식재료로 사용되는 '닭'을 향한 작가의 질문이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닭을 향한 애처로움이 담긴 글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순간 책을 놓고 멍하니 나의 삶을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질문에 이어 나의 질문도 계속된다. 우리는 왜 날개가 없는 것일까? 애초에 날기를 포기했기에 날개가 자리 잡을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나는 왜 날기를 포기하고 있는가? 우리 인생에서 '난다는 것'을 꼭 1차원적인 비행으로 한계를 긋지 말고, 저 자유로운 삶,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까지 확장한다면, 나는 왜 날지 못하고 현실에 주저하고 있는가? 바로 눈 앞의 빵부스러기를 쫓는 삶에 왜 익숙해져 버렸는가? 나는 방법 조차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이 땅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 짊어져야 하는 삶이라는 무게를 피할 수는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나는 방법은 물론 날아가야 하는 방향 조차 잊어버린다면, 내 삶은 과연 무엇이 되어 버릴까? 콘돌의 거대한 날갯짓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퇴화된 날개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기억해내고 움직여보려 발버둥 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소설가 이상은 <날개>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한다. "다시 한번 날아보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