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햇빛을 기다리느라"

<나> 죽음을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by 장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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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할 때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만난 건 아니니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육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사유를 만나는 것까지도 사람과의 만남으로 친다면, 사람을 만난 것이 분명합니다. '그분을 만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라는 건 이상적인 바람일 뿐, 실제로 변한 건 많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려는 나를 단속하는 데에는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스스로 큰 성과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 그분이 누구냐고요?


바로 '신영복 선생님'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저는 '담론'으로 처음 신영복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담론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사유의 정신, 이해의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충격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강의'를 읽었고, 그다음에서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보여준 사유의 힘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성공회대의 강의를 한 번쯤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수의 선생님의 책에서는 감옥생활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 이야기 하지만, 저게 볼 때는 넘을 수 없는 경지에 이미 다달았음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수두룩 합니다. 감옥 생활을 이야기 한 문장 중에 '손잡고 더불어'를 보면 다음의 문장이 나옵니다. (손잡고 더불어는 출소 이후 여러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내일 햇빛을 기다리느라 안 죽었어요"


손바닥만 한 창으로 하루 몇 시간만 들어오는 햇빛은 선생님에게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위로였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형수의 신분으로 내일의 햇빛을 기다리는 그 마음은, 하늘이 무너져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 그것보다 더 강력한 의지와 포용이 느껴집니다.


전, 이 문장을 만났을 때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한계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순수한 마음, 내일은 반드시 올 거라는 의지, 그리고 순박한 웃음. 살아가는 동안, 사회가 각박해졌다는 핑계로 잊고 지냈던 마음의 조각들이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불평만 하던 저를 조용히 타이르는 듯했습니다.


선생님은 죽음조차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삶과 죽음의 경지에 다달으셨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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