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회하는 게 어찌나 어려운지...
눈앞에 탁 트인 글이 크게 하나 뻗어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길 앞에 놓이면 그 길을 따라 걷거나 뛰거나 길이 놓여있는 대로, 길이 제시하고 있는 대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아 왔고, 살아야 한다고 주입받아 왔고,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나의 삶도 그렇다.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고, 10년이 넘게, 이제 몇 년만 지나면 20년이라는 숫자를 앞에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직장 생활 외에는 어떤 경우도 생각할 수도 없이 살아간다. 그러니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이 삶이 가장 좋은, 마음 편한 삶이여."
그런데 문제는, 최근 들어 내 삶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는 거다. 반성...보다는 '회의'라고 해야 할까? 무엇 때문에 20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을 직장인의 삶으로 살아왔을까, 무엇 때문에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길들여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매월 빠져나가는 카드요금과 대출이자를 메우느라 한 달을 일하고 월급이 들어오면 다시 빠져나갈 돈들은 다 빠져나가고 결국 마이너스가 되는 삶이 반복되고 있을 뿐인데, 나는 왜 구태의연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만났다.
"우회할 때 비로소 다른 길을 만나게 됨은 당연하다."
나는 쭉 뻗어있는 대로가 나의 인생을 보장해줄 거라 믿고 있었던 거다, 아니 믿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대로 주변으로 자잘하게 파생되어 있는 작은 길들을 유심히 들여볼 생각조차 못한 채로 20년을 사회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고.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방법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인생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태어나고 죽으면 끝나는 인생은 하나로만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 인생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변수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길을 걷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나 옆에 두고 살아간다. 너무나 익숙해져버런 사회화의 결과로 다른 길을 향할 용기가 생겨나지 않고, 다른 길을 향했을 때의 불안함, 그러나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막연한 불안함,을 핑계로 현재에 머무르고 만다.
다시 한번 나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다른 길로 우회할 용기는 있고?"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소심하다. "아직은..." 머릿속에 생각은 가득한데, 실행할 용기는 없고, 책에서 만난 한 구절에 감동받는 나의 모습, 참 바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