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손이 차가웠으면 좋겠다

by 장아무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1)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남자는 자신의 손이 따뜻하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손이라는 건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을 때,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누를 때, 집에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릴 때와 같이 집거나 잡거나, 그런 용도 외의 용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 않고 수 십 년을 살아왔다. 주변에서도 남자의 따뜻한 손을 발견해준 사람도 없었으며, 따뜻한 손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저 손이 신체의 일부로 무사히 붙어 있고, 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아마 남자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따뜻한, 온기를 품은 손의 '유용'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데 뭘 더 고민해야 할까. 세상은 그런 시답잖은 고민 외에도 고민해야 할 고민들로 가득 차 있기에.


사실 남자는 자신의 투박한 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남자들의 손을 보면서 어떻게 저리 하얗고 가늘게 타고날 수 있는지 수도 없이 생각해봤고, 자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굵은 마디와 거친 털로 덮힌 손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의문을 가졌다. 손을 보여야 하는 자리에서도 남자는 떳떳하게 손을 내밀지 못했고, 악수를 하는 상황에서는 혹여나 남자의 거친 손에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많았다. 남자의 손이 가진 장점이라곤 오직 손의 기능에 충실하게 '잘' 태어난 준 것 외에는 없다고 믿었다. 남자에게 손은 못생긴 콤플렉스였지, 따뜻한 손에 대해서는 일말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너무나 차갑고 겨울만 되면 그 차가움의 정도가 심해져 손을 외투 주머니 밖으로 빼는 상황이 그 무엇보다 싫어했던 그녀였기에, 차가운 손이 얼마나 그녀의 삶을 괴롭히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물론 일상생활의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손이었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 심지어 여름에도 - 시도 때도 없이 차가워진 손 때문에 괴로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여자는 몰랐지만, 점차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여기서는 남자)이 그녀의 이상형으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몰랐다.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의 손을 잡아봐야 한다는 걸.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 차가운 손을 잡아주길 바래거나, 상대방이 그녀의 손을 잡아 따뜻한 온기를 여자의 손에 남겨줘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남녀 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빠르게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손을 잡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손을 잡다는 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길을 걷다 손과 손이, 아니 손을 뒤덮고 있는 피부와 피부가 의미 없이 스치는 것과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혹여나 상대의 손이 상할세라 최대한 부드럽게, 정성스럽게 손을 잡는 건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만큼 차이가 있다.


나는 지금도 처음 너의 손을 잡은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추운 겨울에 만났고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네가 빨깨진 손으로 악수를 청했고(두 번째 만남에서) 그때서야 세상에는 이토록 차가운 손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나와 달리. 두 번째 만남이라 여전히 어색한 사이를 유지하던 너와 나. 같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갑자기 용기를 냈다. 뭐가 그리 급했던 지 옆에서 함께 걷던 너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눈 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따뜻한 커피캔 하나를 샀다. 그리고 그 커피캔을 나의 외투 호주머니에 야심 차게 넣었다.


편의점을 나와 호주머니에 있는 커피캔을 만지작거리며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는지 모른다. 그중 가장 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든 건, '커피가 식기 전에 너에게 이 온기를 전달해줘야 하는데'였고. 옆에서 걷고 있지만, 마치 정면에서 너의 행동,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너에게 나의 온 신경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로지 너의 손을 잡아 나의 호주머니로 이끌어내기 위해. 옆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너의 말소리보다 내 심장의 두근거리는 소리가 더 컸으니까.


사랑은 언제나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때, 내가 너의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너의 손을 나의 외투 호주머니로 끌어와 안쪽의 온기를 서로 나누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참 다행이다. 온기를 나눈 그 온도만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임에도 우리는 손을 꼭 잡은 채 오랜 시간 걸을 수 있었으니까. 그때서야 내가 남들보다 따뜻한 손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고, 차가운 손을 가진 사람에게 온기를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일상의 용도 외에는 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의 손이었는데, 너를 만나 나의 손이 또 다른 용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투박하고 못생긴 나의 손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음을 감사했다.


지금도 차가워진 손을 잡아 나의 외투 호주머니로 슬그머니 가져올 때의 두근거림은 처음과 동일하다. 나로 인해 차가워진 너의 손이 서서히 제 온도를 찾아가고, 굳었던 손마디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을 잡은 손을 통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챌 때의 기분은, 여전히 좋다.


그래서 네가 손이 차가웠으면 좋겠다.

나의 손이 영원히 쓸모 있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오직 너에게만.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2)


이후에 남자는 알게 됐다. 세상에 차가운 손을 가지고 태어나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걸. 그리고 여자도 알게 됐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그녀가 부러워하는 따뜻한 손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손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걸. 그 수많은 사람과 사람 중에서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만나고, 서로의 눈빛과 감정을 교류하고, 손을 잡아 따뜻함과 차가움의 온도를 나눠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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