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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Feb 24. 2020

짖지 못하는 개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도 산책 이야기입니다.


산책을 하면 참 많은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순간을 살아가는 평일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풍경, 새벽의 장막을 뚫고 하늘에서 찬란하게 내리기 시작한 아침 햇살에도,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태양의 빛을 받아 나름의 빛을 만들어내는 달처럼, 아침 햇살을 받은 들풀, 나뭇잎, 심지어 공기 하나하나에도 각각의 빛이 담기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뭐랄까, 고요함 속에 전파되는 경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인근 동산의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고요함과 경이로움이 품고 있는 에너지를 양껏 받아들일 수 있기에 산책을 포기하지 못하나 봅니다.


아침의 산책은 공원 산책로에서 동산의 숲길로 이어졌다 전원주택 단지로 접어들면 전체 경로의 절반 정도를 걷게 됩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이 눈 앞에 들어오면 아쉬움과 반가움, 두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아쉬움은 숲길이 가진 에너지를 더 이상 향유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고, 반가움은 모두가 똑같이 네모난 상자에 살아야 하는 아파트의 삶에서 벗어나 각각의 개성을 가진 주택들을 보며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언제쯤 저런 주택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라는 자조도 있지만, 사람이 희망을 가지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지금 지나는 순간에 그 정도의 포부(?)는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원주택에는 그 집주인이 기르는 개가 참 많습니다. 대부분 산책하는 저를 보고 맹렬하게 짖어대곤 하죠.


숲길이 끝나고 전원주택 단지로 접어드는 첫 번째 집에는 백구가 살고 있습니다. 주택 뒤편에 자리 잡은 이 백구와 처음 만났을 땐 태어나 사람을 처음 본 것처럼 짖어대는 통해 급히 걸음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아직 잠에서 깬 사람보다 휴일의 늦잠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죠. 대부분의 개들은 사람이 시선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짖어댑니다. 처음에는 놀람에 발걸음을 서두르게 되면서도, 점점 거리가 벌어지면서 울음도 잦아들면 왠지 모를 섭섭함, 미련이 남습니다. 사실 그 개는 나를 경계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너무 반가워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너무나 조용한 사위와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빠르게 거리를 벌렸던 일에 반성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백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몇 번의 산책에서 그 주택을 지날 때마다 혈기 넘치게 짖어댄 백구, 덕분에 제 기억에도 강렬히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요.


'이 숲길이 끝나는 저 지점을 돌아 계단을 내려가면 백구를 만나겠지, 너무 짖어대니 걸음을 서둘러야겠다.' 분명 생각을 비우려 했던 산책인데 벌써부터 생각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저의 발걸음도 빨라집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백구가 내심 그리웠나 봅니다. 


그런 백구가 짖지를 않았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불과 몇 주 지나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경계의 행동이었는지, 반가움의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짖어 대던 백구를 마주쳤음에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백구가 드디어 주말 아침에는 사람들이 쉬는 시간이니 짖지 말아야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요? 지난번에는 너무 짖는 통에 몰랐다면, 이번에는 너무 짖지 않아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백구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게 됐습니다. 


동그랗게 처진 검은 눈망울을 봤습니다. 유난히 힘이 없고 처진 어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해진 백구를 보며 얌전해졌다, 훈련이 됐다 라고 좋아하겠지만, 백구의 눈을 본 순간, 사회의 규격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삶의 무게 속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본래의 야성은 눈동자 깊은 곳에 감추고, 사람에게 길들여서 아침 시간의 고요함을 지키려는 백구의 모습은, 미래에 닥쳐올 변화 - 하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심지어 발행하지도 않은 - 를 두려워해 마음 깊은 곳에 본성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보통의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사람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어찌 하얀색 털이 아름다운 백구도 그 모습을 따가라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이어가기 위해 짖지 못하는 백구를 뒤로 하고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머릿속에 '나는 어떤 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으로 가득할 시간이었건만, 짖지 못하는 백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짖지 못하는 개에게서 저의 현실적인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일까요? 자꾸만 입을 다문 백구와 사람 많은 출근 지하철에 끼어 있는 저의 모습이 교차됩니다. 지하철 차창에 비친 흐린 저의 모습과 짖지 못하는 개의 어깨가 함께 지나갑니다.


저의 눈동자에서 백구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백구는 짖지 못한 것일까요, 짖지 않았던 것일까요?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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