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주로 산책하는 시간은 주말 오전 7시 전후입니다. 그 시간 즈음 나가서 1시간 여 동안 동네 산길도 걷고, 마을에 새로 들어선 집과 커피숍도 구경하고, 그러다 조용히 땅을 밟아 보기도 하고, 눈에 띄는 벤치에 앉아 새벽 햇살을 맞아보기도 합니다. 참 평화로운 시간이기에 주말 아침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시, 보통의 아침이었으면 출근하는 사람들과 빠르게 지나치는 차량들로 인해 번잡한 시간이었겠지만, 주말 아침의 7시는 무척 고요합니다. 덕분에 현관문도 조용히 눌러야 하고, 엘리베이터도 조용히 타야 하고, 신발 소리도 최대한 죽이려고 노력합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날 때까지는요. 희한하게 주말 아침의 그 시간에는 공기조차 고요합니다. 지금의 정적을 깨뜨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아침의 공기가 머금은 촉촉함과 상쾌함의 커튼을 슬그머니 밀고 나아갈 때 느껴지는 기분은 너무나 좋습니다. 한 주동안 기다렸던 행복의 순간이라고 할까요?
산책로에 접어들면 숨죽였던 몸과 마음을 맘껏 풀어헤쳐 놓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보다 더 멀리 마음을 보내기도 하고, 발길이 닿는 곳으로 몸을 이끌고 가기도 합니다. 사방이 고요한 시간에 나만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눈 앞에 보이는 공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산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입니다. 아직 햇볕에 데워지지 않은 공기 덕분에 신발 끝에서 느껴지는 지면의 아삭한 느낌 또한 설레게 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얀 눈이라도 쌓여 있으면 거침없이 발자국을 낼 수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아슬아슬한 새벽의 기운이 지면 바로 위에 살짝 깔려 있는 탓에 힘껏 걸음을 내딛을 수도 없고, 걸음을 재촉할 수도 없습니다. 서두르지는 못하지만 덕분에 억지로나마 몸과 마음의 속도를 늦출 수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모두가 고요의 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시간, 산책하는 사람을 보며 '고독'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생각을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그러니까 꽤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이야말로 인간만의 행위이며, 사람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이라 주장했습니다. 생각에서 파생된 말과 언어 역시 인간 고유의 행위로써 인식되며, 그렇지 못한 타 개체는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보편의 인식입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인간 외에 다른 생물들 역시 사유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많이 펼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세상, 우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심지어는 신 까지도 사람의 기준으로 바라봅니다.
다시 돌아와서, 고독하지 않겠냐는 것은 신체의 외부로 말을 뱉어내지 않는 그 시간을 전제로 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니 고독하지 않겠냐는 것이며, 말할 상대가 없으니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함을 슬그머니 전달합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니, 그 말이 맞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독하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무인도에 남겨져 오랜 세월을 보내지만, 아무 사람도 없는 공간에서 스스로 대화의 방법을 찾아내고, 고독하지 않는 시간을 개척해 냅니다. 산책하는 과정에서도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바로 외부의 모든 개체와 말이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 공간을 메우고 있는 고요함과, 야외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얼굴로 부딪혀 오는 새벽의 공기와, 너무나 미세하게 아삭함을 신발 끝으로 전달해주는 아침 지면의 느낌, 그리고 눈으로 들어오는 새벽의 미묘한 색감, 모든 것이 대화의 상대입니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마다 이들 대화 상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이들의 모든 대화 요청을 받아들이고자 하면 산책을 더 이어갈 수 없기에, 어느 것은 무시하고, 어느 것은 대화를 이어가며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화는 바로 '나'와의 대화입니다. 정신없이 한 주의 시간을 보내느라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를 깨우고, '나'와의 대화를 산책을 하며 시도합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습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 주 동안 나와이 대화보다는 타인과의 대화에 익숙해져 버린 탓입니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문을 두드리고, 대답을 기다리며 산책을 하다 보면 조금씩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한 주제도 없습니다. 지금 산책을 계속 이어갈까?라는 질문부터, 지난 시간 후회되는 순간들을 함께 이야기해보고, 바보 같았던 순간을 되짚어 보며 함께 웃기도 합니다.
나와 대화를 하면서
발걸음은 더 묵직해지고,
마음은 더 솔직해지고,
사유의 틀 더 확대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책의 순간순간처럼, 산책을 하는 나 역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 변화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