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저녁'이라니.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포근해지는 느낌을 전해주는 단어입니다. 본격적인 어둠이 찾아오기 바로 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따뜻하고 화려하면서도 편안한 색감으로 하늘과 땅이 물들어가고 있는 순간에, 하루 종일 앉아있던 사무실에서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도 포근한 색으로 함께 물들일 수 있다는 기대가 가득한 순간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여전히 저녁이 있는 삶이 최고의 지향점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 하루를 나의 의지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조직과 사회의 의지에 맞춰 흔들려야 했지만, 저녁만큼은 나의 의지로 똑바로 세우는 시간. 덕분에 '하루를 잘 살았다'라는 안도감으로 다른 하루를 시작할 용기와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 바로 '저녁이 있는 삶'입니다.
반면 아침엔 오직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조용히 산책을 시작합니다. 평소라면 절대 할 수 없을 아침 산책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더욱 자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수많은 소음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주위의 시선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그날 하루를, 일주일을 준비할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평소 출근할 때 마지하는 똑같은 아침이지만, 아침이 있는 삶의 아침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빠른 걸음으로 수많은 사람을 헤쳐 어제와 똑같은 사무실, 그 책상에 앉아 제시각에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 따위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여유가 차곡차곡 쌓이고,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상쾌한 아침 공기의 흐름이 한 올 한 올 느낄 수 있는 여유가 몸안 가득 차오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이게 바로 아침이 있는 삶이구나."
사람은 결핍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재택근무를 통해 알게 된 아침이 있는 삶도 마찬가지. 하루 3~4시간의 출퇴근을 반복하는 생활 속에서 겨우 하루의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기에 아침이 있는 삶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저녁 대신 '아침'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