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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Mar 30. 2020

양 어깨의 짐을 내려놓는 시간

지난 주말, 오래간만에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사람의 몸은 참 희한합니다. 한참 산책을 나갈 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리 개운했는데, 한 동안 산책을 안 했더니 몸이 먼저 알고 침대에서 일어나길 거부합니다.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는지, 부쩍 길어진 아침 햇살이 창문과 커튼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의 상쾌함을 마주치지 않는다면 왠지 죄를 짓게 되는 것 같아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온 순간, 참 잘 나왔다, 산책하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게으름으로 가득했다 비워진 틈새를 메우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가 귓가를 아리게 만들지만, 그 또한 상쾌한 기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지금, 산책의 순간입니다.


산책을 한다는 건, 신체의 건강을 위함도 있지만, 정신의 건강을 위함도 그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번잡한 낮시간의 거리와는 다르게 드문드문 지나치는 사람들 덕분에 나의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공간이 온전히 저만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느낍니다. 공간의 여유만큼 생각의 여유가 생깁니다. 거리낌 없는 시선 덕분에 한정된 생활공간 안에서 생활했던 평소의 한계에서 벗어나 시선이 닿는 곳까지 걸어갈 용기가 생깁니다. 번잡했던 마음이 여유와 용기로 채워지며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상쾌함이 나의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짐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아침의 산책은 저에게 그런 의미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양쪽 어깨로 부담이 쌓이게 됩니다. 관계의 부담, 조직의 부담, 사람의 부담, 생각의 부담. 나이 마흔을 넘어가면 이러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또는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뻐근하게 쌓여 있는 부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게감은 무시하기 힘듭니다.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쌓여 있던 부담이 모래주머니에 뚫린 작은 구멍 틈새로 모래가 새어 나오 듯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올 땐 살짝 처졌던 어깨가, 가벼워진 부담 덕분에 조금 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산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실로 산책 중독자의 면모를 온몸에 새겨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산책할 때는 시선을 고정하지 않습니다.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면 전방 15도를 주시하며, 씩씩하게 팔다리를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겠지만, 운동보다는 산책의 시간을 즐기는 게 더 큰 목적인지라, 발 끝부터 하늘 끝까지 모든 공간에 시선을 던지고,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순간의 흔적을 머리와 가슴과 몸에 간직하려고 애씁니다.


양 어깨를 누르고 있는 부담은 지나버린 과거에 대한 집착과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중요함, 아름다움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기에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걱정합니다.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저자는 이러한 순간마저도 자신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행복을 준비하는 시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순간, 현실의 힘든 순간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저자의 마음과 매사 투정으로 가득 차있는 저의 마음을 비교해보게 됩니다. 부끄러움이 얼굴로 피어나 붉게 물들어감을 느낍니다.


산책은 회개의 시간이라고 말씀드렸던가요?

오늘도 역시나 산책을 통해 나와 대화하고 나의 잘못을 되새기고, 그 시간만큼 발걸음을 옮깁니다. 솔직히 산책한 지 1시간이 지나가면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공기를 처음 맞을 땐 그 어떤 순간보다 가벼워짐을 느끼지만, 신체의 부담은 이상적이기보다는 현실적입니다. 조금씩 산책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부담을 덜었으니,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다가오는 한 주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지금을 발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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