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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Oct 20. 2021

아무도 마시지 않는 커피를 내립니다

아직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든,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든 머리 속에 아니 가슴 속에 '내가 원하는 회사의 모습' 하나 정도는 품고 살아갑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멋진 회사의 모습을 담을 수도 있고, 선배 또는 지인이 이야기하는 실제 회사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겠죠.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직장인이 되었을 때 회사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결정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

회사의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요? 아니, 누가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회사라는 조직 안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고 있음에도 '조직'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할 때가 많습니다. 생명이라는 건 참으로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기 마련, 회사도 마찬가지로 꽤 많은 변수를 품고 살아갑니다. 변화해갑니다. 이런 '회사'라는 놈을 어르고 달래서 내가 원하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 쉽게 말하면 이것이야 말로 회사의 분위기, 어려운 말로 '조직문화'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회사의 분위기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보다 '대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죠. 대표가 회사를 어떻게 만들어가겠느냐라는 의지에 따라 회사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겉으로, 억지로 끌고 표현하지 않아도, 은연 중에 의지가 회사 곳곳에 반영되어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회사라는 생명체는 단순히 대표 한 명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원들의 공감, 생각, 행동 또한 반영이 되어야 비로소 조직문화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거창한 조직문화 이야기는 이게 그만하고,

(회사 대표도 아니면서) 제가 만들고 싶었던 회사의 분위기, 모습은 '아침에 출근해 문을 열었을 때 사무실에 커피향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커피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커피향'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죠. 더군다나 빡빡한 출근길을 뚫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아침부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역할에 '커피향'만큼 적합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라는 공간이 마음만큼 편안한 곳이 될 수 없는 건 알지만, 우리가 커피숍을 찾는 이유처럼,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회사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그래서 커피를 내립니다. 아침에 출근해 제일먼저 컴퓨터를 켜고, 그 다음엔 바로 회사 한 켠에 있는 커피머신으로 향합니다. 필터를 교체하고 물을 붓고 전원을 켭니다. 지지직 물 끓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한 두 방울로 시작하던 커피는 탄력을 받아 힘차게 아래에 있는 서버로 비로소 그 모습을 들어냅니다. 조만간 출근 시간이 되면 하나 둘 사람들이 자리잡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 그 텅빈 공간의 공허함을 커피향이 메워가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좋은 커피에서 좋은 커피향이 피어납니다. 회사 근처의 로스터리 커피숍을 돌아다니며 하나 둘 구입한 다음 맛을 보고 최종 가장 맛과 향이 좋다고 생각하는 커피숍에서 원두를 사옵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희한한 건,

커피를 그토록 좋아하고 밥값보다 커피값을 더 많이 쓰는 직원들이 정작 회사에서 내린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커피가 입에 맛지 않나? 라는 생각도 잠시, 근처 커피를 거의 다 마셔 본 사람으로서, 분명 회사의 커피가 절대 꿇리지 않음을 자부합니다만, 그래도 아침에 내린 커피의 절반 이상이 남은 상태로 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오늘도, 커피를 내립니다.

조금이나마 회사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려고 하는 저의 마음이 키보드 소리만 맴도는 사무실의 남은 공간에 자리잡기를 희망하면서. 아마 끝까지 저의 이런 마음을 모르고 떠나는 직원들도 많을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이러이런... 써놓고 다시 보니 왜이리 처량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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