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나와 유사한 인간을 많이 만나왔다. 깊은 만남을 유지하지 않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면서, 짧은 만남을 중요시하는 것도 아닌 사람에 대해. '나'의 인생이라는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오는 동안 만난 나와 유사한 사람들, 과연 무슨 유형의 인간이라고 불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소위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러니까 좋기든 나쁘게든 변화시키는 사람은 분명 특별한 구석이 있다. 천재적으로 머리가 좋거니, 아니면 악독하거나. 아이폰이라는 희대의 아이템으로 세상의 변화를 급가속시킨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 삶 언저리에는 이렇게 세상을 크든 적든 변화시키는 아주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뭐랄까… 나라는 인간은.
우선 특별하게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쁜 편도 아니다. 오히려 좋은 편에 속하려나? 아이큐 검사를 한 번 했었는데 학교에서 상위에 들 정도. 하지만 특출 나게 좋은 건 아니었고. 성적도 그렇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못한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딱히 애매한 구석이 있는 그런 성적을 유지해 온 삶. 하도 특출 난 게 없어서 고3 때 진로 상담까지 했던 담임 선생님이 졸업 후 1년이 되지 않아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이름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던 그런 학생이었던 삶.
사는 것도 그렇게.
소위 보통의 가정...이라고 하기에는 부유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힘든 것도 아니었고, 물론 어렵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반지하에 살다가 장마철에는 집에 물이 차서 바가지로 퍼내보기도 했으니... 큰 어려움 없이 살다 보니 무탈하게 학교를 다니다 졸업하고, 그러다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아온 삶. TV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되는 어려운 가정을 보면 짠함이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내가 참 행복하게 살아왔구나, 다행이구나 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는 그런 인간으로서의 삶.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 역시 마찬가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겨하지만 깊게 만들지 않고, 그렇다고 깊지 않은 관계가 없느냐...생각해보면 또 그런 건 아니니, 참으로 애매하다. 만나면 만나는 거지, 그러다 잊혀지면 잊혀지는 거지, 그렇게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어느덧 입 안에서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머금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듯이, 만남을 즐겨하지도 않거니와 흐지부지 관계가 흐트러지는 것 역시 크게 연연하지 않는 그런 삶.
누구나 무용담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만, 소위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하나쯤은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을 경험했을 것 같으면서도, 생각해 보면 특출 나게 떠오르는 추억이 없는 것 같은. 하지만 억지로 떠올려 보면 경찰서에도 가보고 데모도 하도 술도 웬만큼 마시며 사고도 친 기억이 있으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삶.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무엇인가?
왜 나는 이런 고민을 하는 건가?
별일 없이 사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인간. ‘보통’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보통이라 정의 내리고 싶지 않은 고집도 한 움큼.
그래서 나는 나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적당한 인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