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홈카페 - 유어커피②>
"주인장과 안주인의 커피가 나란이 놓여있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난 커피만 마시면 배가 살살 아파, 그래서 싫어."
'커피'라고는 연애시절 신촌거리 지하에 있었던 '여우사이'(여기서 우리 사랑을 하자)의 후식 커피밖에 모르던 유어커피 주인장. 고급스러운 양식 그릇에 김치볶음밥이 멋지게 나오던 그곳. 삐삐 필수 시대인 그때 테이블마다 수신전용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데이트를 목적으로 자주 찾던 그곳. 지금도 있으려나...(잠시 추억에 잠긴 주인장이었습니다.) 여우사이에도 커피가 있었습니다. 헤이즐넛 향을 진하게 입혀서 커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었던 그 커피를 진짜 커피라 생각했었죠. (심지어 그 후식커피는 물을 더 타서 보리차 맛도 났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출세했다고 말하고 싶어 집니다. 너무 연했기에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팠던 제가 마음껏 마셔도 아무 탈 없었던 커피여서, 즐겨 마시던 커피 이기도 했죠. 여우사이에 길들여진 저의 입맛은 다른 커피숍에 가서도 계속되어, 미팅을 하거나 소개팅을 할 때 앞의 여성을 두고 아주 당당하게 '헤이즐넛 커피'를 시켰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한동안 헤이즐넛 커피를 즐겨했던 제가 헤이즐넛 커피가 사실은 질이 좋지 않은 커피에 헤이즐넛 향을 입힌 커피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 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진짜 커피를 만난 건, 결혼하고 3년이 지나 자리 잡은 화곡동 오래된 빌라 근처의 커피숍이었습니다. 거무튀튀한 빌라들 사이에 하얀색 벽과 통유리, 그리고 그 유리를 통해 비쳐오던 할로겐램프 색깔의 누런 불빛은 퇴근하여 집으로 가던 저에게 생소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몇 번을 머뭇거리다 용기 내어 들어가 주문한 아메리카노는 사실 그리 좋은 커피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 속에서 풍겨 나는 커피의 향과 입안을 감도는 커피의 맛은 '커피란 참 좋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충분했죠.
결혼 -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
결혼을 하면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자의 시간을 영위하던 둘이 하나의 시간으로 한 방향을 보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죠. 물론 좋은 의미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어커피 주인장과 안주인 모두 뚜렷한 공통의 관심사가 없고, 그렇다고 각자 눈에 띄는 취미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보낼 시간은 많은데, 누구나 똑같이 영화 보고 커피숍 가는 그런 데이트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통했나 봅니다.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집 주변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만나게 되고, 이후 우연히 방문한 헤이리의 로스터리 카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상당히 큰 3층짜리 건물을 지어 헤이리의 명소가 되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첫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은 그때의 커피공장은 2층 다락이 있는 작은 커피숍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커피공장103에서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을 한 진짜 커피를 만났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커피를 공통의 관심사로 갖는데에 대한 거부감이 둘 다 없었습니다. 커피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마실 뿐이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커피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커피를 함께 마시며 서로를 향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대와 만족이 우리 둘에게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시작과 과정은 서로 달랐지만, 커피라는 결론을 함께 하게 된 것이죠.
나무로 만든 원목가구는 세상에 오직 하나만 존재합니다. 형태는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나무의 결은 하나하나가 다 다릅니다. 작은 목재소품부터 큰 가구까지, 오직 나만의 것이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커피가 그렇습니다. 참 희함한게 커피를 마시는 시기에 따라, 장소에 따라, 함께 마시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입니다. 이는 영화를 골라 보는 재미보다 더 쏠쏠합니다. 지난 주에 들렸던 커피숍에 다시 들려 그때 마셨던 커피의 맛과 향을 다시 기억해내고,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의 향과 맛을 음미한 후 서로 비교합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둘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같은 시간을 공유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의 의미를 이어갑니다. 유어커피 주인장과 안주인이 지금까지 커피를 선택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커피도
결국 사람의 일입니다.
솔직히 커피공장103을 처음 방문했을 때 두 가지가 없었다면 어쩌다 홈카페-유어커피는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커피공장103의 2층 다락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커피공장 매너저님이었습니다.
온돌이 깔린 다락은, 커피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마셔야 한다는 당시의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커피를 마셔도 되고, 벽에 기대어 커피를 호로록거려도 되고, 안주인과 창밖으로 비춰오는 햇살을 함께 바라보며 커피를 마셔도 되는 시간을 선사해줬습니다. 아, 갓 태어난 첫째 아이가 맘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기도 했네요. 편안한 장소와 시간은 커피에 다가가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온돌이 깔린 다락이 있는 커피숍은 찾기 힘들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어커피 탄생의 가장 큰 역할을 한 분이 바로 커피공장 매니저님입니다. 사실은 그분의 성함도 모르고, 어떤 분인지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커피를 잘 모르는 저의 가족이 커피공장103을 방문했을 때 언제나 웃는 얼굴로 맞아주시고, 커피에 대해 설명도 해주시며, 원두를 구입할 때 친절한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커피로스팅을 하는 시간에 방문하면 커다란 로스터의 열기를 맞아가며 커피를 일일이 체크하고, 드립커피를 한 방울 한 방울 내리시던 장인의 모습도 잊지 못합니다. (아, 이렇게 보니 커피공장103이 없었더라면 유어커피는 탄생할 수 없었겠네요.)
커피공장103의 매니저님 말고도 유어커피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동네에 새로 생긴 커피숍에 우연히 들렸다가 마음이 맞아 단골이 되어버린 커피발전소 사장님 부부. 특히 커피공장103의 단골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너무 즐거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있죠. 커피가 아무리 맛있더라도, 아무리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한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으면 커피는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결국 주인장과 안주인은
돈 내고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를 구입해 집에서 즐기고
이제는 커피를 만드는
'어쩌다 홈카페-유어커피'를 열고 있습니다.
'어쩌다 홈카페-유어커피'의 시작은 함께하고 싶은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고 싶었던 주인장과 안주인의 고민과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던 공간과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