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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May 24. 2019

5. '어쩌다 홈카페'다 보니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어쩌다 홈카페 - 유어커피⑤>



많은 사람들이 유어커피 주인장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커피 실력이 어떻게 되냐?'입니다. 커피 실력이라...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커피를 만들 수 알아야 하는 그 실력인지, 상품의 원두를 구분해내는 실력인지,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이끌어내는 로스팅 실력인지, 커피와 관련된 실력은 너무나 다양하고 그중에 제가 잘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대학시절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원두커피를 마시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원두커피라고 하면 연하게 우려낸 커피를 주는 곳, 아니면 짙은 헤이즐넛향이 첨가된 커피를 좋다고 마시는 것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제가 아르바이트 했던 커피숍은 신촌에서 원두커피를 사이폰으로 우려내는 꽤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커피숍이었습니다. 1980년대, 90년대 커피 좀 마신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커피 명소 '미네르바'가 바로 그곳입니다. 그 때는 원두가 뭔지, 브루잉이 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매뉴얼대로 커피를 내렸던 기억이 있는데요. 아무것도 몰랐지만, 사이폰으로 만들어지는 커피는 볼 때마다 신선함과 상쾌함을 전달해줬습니다. 아직도 좁은 계단을 올라 나무문을 열면 칙칙한 공간 안에 커피향이 가득했던 그곳이 생각닙니다. 미네르바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이 지금의 홈카페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을거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발적이며 생각보다 인과관계의 연결고리가 꽤나 취약합니다. 당시엔 커피에 흥미가 그리 많지 않았고, 결혼하기 전까지 커피는 소개팅 자리에서나 마시는, 나와 맞지 않는 음료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꼭 잘해야 하나요?'라고 되묻고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저와 안주인 둘이 즐기기 위해 탄생한 홈카페인데, 둘만 만족하면 되는 것을, 그 목적을 잊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아야 하나 싶은 거죠.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없는 실력 들킬까 봐 미리 선점하려는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쩌다 시작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홈카페를 유지한 지 10년이 되어 가고 있고, 로스팅도 하고 가끔 여러 가지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도 하기 때문에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커피 실력'이라는 게 저에게 있을까 싶습니다. 애초에 커피를 전문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즐기는 정도로 커피 겉핥기식의 알아감이 대부분인지라 쌓일만한 노하우도 없기도 하고요. 나름대로의 커피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지금도 국내외에서 커피 공부를 하고 계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 


여전히 주인장의 커피 실력이 궁금하신가요? 어디 가서 내놓을 실력은 되지 않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커피를 마시는 일반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아주 조금 잘한다 싶은 부분은 있겠다 싶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로스팅을 합니다


사무실 이사 전에는 맞은편 건물 1층에 로스터리 커피숍이 있었습니다. 로스터리 머신이 있는 공간까지 통유리로 된 공간인지라 지나가면서 그렇지 않은 척 힐끔대며 사장님이 뭘 하고 있는지 지켜보곤 했는데요. 유어커피 로스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규모며, 디지털 장치가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로스팅하는 와중에도 온도 체크를 하고, 원두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기록하고, 결과물을 놓고 토론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뭐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빠져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즐기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였을까요? 그 커피숍의 커피는 참 맛있었습니다. 가격이 비싸서 많이 마시지는 못했습니다만.


집에서 로스팅을 해보겠다 다짐하고 냄지부터 통돌이, 지금의 모터 로스터까지 이르렀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홈로스팅 고수들의 정보들을 습득하며, 과연 그들처럼 로스팅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각 단계별로 온도와 원두의 상태를 매번 기록하고, 그 기록에 따라 원두에 적합한 로스팅 포인트를 찾아가는 과정은 너무나 난해해 보였습니다. 왜 커피를 마시는데 수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시작하기도 전에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모터 로스터를 구입하니 전면에 온도계가 부착되어 있더군요. 그전에 사용하던 통돌이나 냄비는 전적으로 감에 의존한 로스팅이었고, 적당한 로스팅 시점은 귀로 들려오는 소리에 의존하고 배출 이후 커피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온도계도 있고 체계적으로 해봐야겠다 다짐한 후 처음 몇 번은 시간별 온도를 정확히 확인하고 불 조절과 시간 조절을 했습니다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온도계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참 신기하죠? 철로 된 온도계가 부러지다니. 이후 다시 귀와 감에 의지해 로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좀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주인장과 안주인의 감에 따라 로스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네요. 이를 보고 '역시 고수는 달라'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지만,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로스팅하기 위해 생두를 정리하면서 오늘은 조금 빨리 배출해볼까? 아니면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해볼까 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수준의 로스팅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저 순수하게

커피를 즐기고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즐기기 위해 로스팅하고 이후 우리가 로스팅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건데, 커피에 너무 주력해 각 포인트 별로 기록하고 그래프를 그리는 일련의 과정을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것보다 불행한 것은 없다'입니다.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지고, 더! 독하게! 다름 사람보다 더! 이런 생각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치열한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치죠. 내가 왜 홈카페를 하는데! 내가 왜 커피숍을 못 차리는데! 네, 못 차리는 겁니다, 안 차리는 게 아니고요.


치열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힘듭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항상 저를 걱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모질지 못해서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마흔이 넘은 아들이지만,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십니다. 커피도 마찬가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습의 과정을 거쳐 실력을 갈고닦은 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회에서 상도 많고,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죠. 


전 '어쩌다 홈카페 - 유어커피' 주인장입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고 싶지도 않고, 베짱이처럼 딩가딩가 하며 커피가 생각날 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걸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어커피 안주인의 커피 실력을 궁금해하는 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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