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글쓰기 end.
일반적으로 뭔가 다짐을 할 때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이언맨1에서 토니 스타크가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는 테러리스트에서 잡혀 목숨이 1주일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잉센은 그의 인생에 남을 명언을 건넵니다.
"그럼 그 일주일을 알차게 보내면 되겠군요."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요."
토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잉센을 보던 토니의 슬픈 눈망울이 떠오릅니다.
'계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에도 '계기'가 빠지지 않고요. 그만큼 계기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보통의 글쓰기'라는 매거진을 만들고 한 달 글쓰기를 해보겠다 다짐했을 땐, 뚜렷한 계기가 없었습니다. 아니, 다시 말해야겠습니다. 계기가 없었다기보다는 제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비어 있는 지갑, 월급날이 되어도 남아 있지 않은 통장의 잔고, 여전히 마이너스인 가계, 늘어나는 교육비, 가장에 대한 부담, 10여 년을 이어온 결혼 생활에 대한 일말의 회의, 불투명한 내 삶의 방향, 회사에서 위치에 대한 불확실성, 회사 비전과 나의 비전의 어긋남, 오랜 출퇴근 시간, 허약해진 체력, 정신적 불안 등, 가정, 회사, 개인의 신체와 마음 등 모든 부분이 불안한 상황을 보여주었던 시기였습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감성적이 된다고 했던가요? 저 역시 쓸데없이 눈시울이 붉어지고, 괜히 우울감에 빠져 무력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버거웠습니다. 지금 적고 보니 한 없이 우울한 상황이었네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마흔셋이라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부족하고, 모자라고, 어려움 앞에 좌절부터 떠올리는 약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럴 때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이게 결정적 계기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뭔가를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해 준 건 분명합니다. 바로 60초 소설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직장에 잘 다니던 한 사람이 갑지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60초 만에 짧은 소설을 써주는 작가가 되어 보겠다 도전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빠짐없이 60초 소설을 써오고 있죠. 그걸 보고 나도 뭔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생각하고 있는 걸 글로 잘 풀어낼 줄을 알기에, 작가처럼 화려하고 깊은 글을 쓰기는 힘들지만, 지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토로하는 글을 작성하면, 그래서 감정을 해소하면 우울감이 많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한 달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6월 21일이었고요.
한 달, 30일이라는 기간 동안 글을 쓴다는 게 보통의 사람에게는 힘들 일임을 이제 와서 깨닫게 됩니다. 글을 좀 써봤다고 너무 무턱대고 덤빈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종종 했고요. 글의 소재는 많았습니다. 지금도 작가의 서랍에는 10여 개의 소재가 글을 써달라고 대기하고 있고요. 묵힌 감정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거였고, 그동안 묵힌 감정이 많았던지 소재는 줄줄줄 작가의 서랍에 비공개로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풀어내면서 한계에 많이 부딪혔습니다. 풀어내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적어 놓게 되고, 때로는 이게 아닌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격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써놓은 글을 읽고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꼰대 마인드가 저도 모르는 새에 장착이 되었던지, 몇몇 글은 저보다 어린 사람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미 마음이 그렇게 흘러버려서인지, 고치려고 했는데도 제대로 고쳐진 것 같지 않아 지금도 애매하긴 합니다.
30일 동안 글을 쓰면서 브런치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조회수가 생각지도 못한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포털에 노출이 되었는지 한 글은 1만 조회수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브런치를 개설하고 제대로 운영을 안 했던지라 조회가 많이 없었는데, 보통의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너무나 급증한 일조회수 덕분에 통계를 볼 때마다 스스로 만족의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럼 안되는데.. ^^; 다른 분들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 정도의 관심을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여러모로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보통의 글쓰기 매거진은 이것으로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한 달 글쓰기를 목표로 했고, 저에겐 감정을 해소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들이기에, 더 이어간다면 스스로에게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앞으로 매일은 아니겠지만, 종종 글을 쓰려고 합니다. 보통의 글쓰기와 비슷한 느낌의 글들이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바람이 하나 있다면, 보통의 글쓰기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두운 글들이 많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행복이 추가된 느낌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불만 섞인 글을 쓰지 않을 순 없겠지만요.
한 달 글쓰기를 하면서 좋았습니다. 어설프지만 에세이 작가의 흉내도 내보고, 대놓고 못했던 불만도 토로하고, 댓글로 공감과 위로도 받고. 참 좋은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더 글을 쓰고 싶게 만들어 주었던 한 달이지 않았나 합니다.
이것으로 거창하지도 않지만, 거창한 것처럼 에필로그 끼지 작성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보통의 글쓰기의 마지막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