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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Apr 10. 2021

"할부만 끝나봐라"

평범한 지방대 선배의세상 이야기 #17

최신형 휴대폰으로

무제한 요금제 24개월 할부.


때로는

멋진 신형 SUV를 위해서,

할부 60개월.



기다렸다는 듯이,

예전 휴대폰이나 자동차의 할부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할부의 시작.


하지만 새로운 휴대폰이나 자동차를 살 때에는

늘 다짐하는,


"깨끗이 오래 써야지"

하지만 그 결심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지.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 때론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바라고 새로움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변화에 소극적인 경우가 있는데

그것들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업무들,

그리고 단순히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인가 노력을 필요로 하는 변화"였지.



적어도 주어진 업무들은,

또 다른 팀에서의 적응이나 처음 접하는 업무를 배우는 과정 없이.

항상 지금 그대로였으면 좋겠고.


또 여러 자격이나 능력들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위해서 다시 취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그대로의 것들만으로도 충분하기를 바라지.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7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어쩌면 그 7년의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질 만큼,

여러 번 업무를 바꾸게 되었어.

팀도 옮기게 되었고,

또 그 팀 안에서의 업무도 4번 정도는 바뀌었으니,

대충 어림잡아도 1년 반에는 한 번씩 새로운 적응이 필요했던 거지.


참 감사하게도,

주어진 일이 업무에 맞지 않았거나, 억지로 옮기게 되는 일들은 아니었고,

또 새로운 일들은 또 다른 열정을 만들어 주었지만,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어.



물론 멀지 않은, 바로 한 책상 건너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그동안 듣고 어느 정도는 익숙했던 용어와 방식들이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비슷할 것이라,

또 아주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아주 가까울 것 같은 분위기,

별반 차이 없을 것 같은 업무들은 매번 나의 생각을 빗나갔어.


새로운 팀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좋은 직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뭐 저런 사람이 우리 팀에 들어왔느냐"는 듣지 않아야 한다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 같은 시간들.    

당연한 것일까?

새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팀.

점점 파고들어 갈수록 전문성을 더해가는 각자의 업무들.



지금까지의 방식과 생각을 조금은 바꿔야 할,

그렇기에 당연히 따라오는 "또 다른 시작"


그 새로운 시작은 "변화"라는 가치를 불러오게 했지.


적는 것부터 시작했어,

아니 조금은 다른 게 자신만의 기록을 만들어 나가는것 부터.


업무별로 듣고, 알게 되고, 또 공부하게 된 내용들.

만약 다시 그 업무를 하게 되더라도


"이게 무슨 말이지?"라고 기억이 더듬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놓은 그대로 하다 보면

해낼 수 있는 자신만의 설명서.



새로운 팀원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감에 있어서는


조금은 적극적으로,

하지만 존중을 담아서, 이런 적극성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어떻게 보면 "굴러들어 온 돌"일 수도 있는 자신이니까,

그 굴러들어 온 돌이 너무 동글동글해서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섞여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그렇게.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또 다른 업무 그리고 또 다른 팀에서,


마치 처음부터 여기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적응을 하고 주어진 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지.



그렇게 여러 번 팀과, 업무의 변화를 겪어나갈 때마다

이런 "변화의 과정"을 다시금 만들어 나갔고

참 감사하게도 매번 그 업무와 팀에 스며들 수 있었지.


신기한 변화가 생겼어.


"어 이건 무슨팀에 과장님이 잘 아시는 일인데?"

"아 일은 해봤던 거니까, 이렇게 요청을 드려야겠다."


변화의 과정을 겪을 때마다,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이해는 조금씩 넓어졌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방법들은 그 업무의 범위를 차츰 넓혀 주었지.


그렇게 만들어 나간 또 다른 의미들.

그 변화의 시간이 가져다준 가치들은

늘 업무를 진행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어.


"할부".


새로운 팀과 업무 앞에서

적응을 위해 했었던 걱정과 노력들로 갚을 수 있는.


우리가 흔히 아는 할부와는 다르게,

지금 가진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사는

그런 할부가 아닌,


"지금 가지고 것에 새로운 관계 그리고 경험"을 더할 수 있는

갚으면 갚을수록 새롭게 더해져 더 많이 남아있는 것들.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거나,

첫 사회의 발걸음 속에서, 스스로의 바람과는 다르게

변화나 또 다른 시작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몰라.


"아 또다시 해야 돼?"

"저기 가서 또 어떻게 시작하지?"라는 걱정과 짜증이 밀려온다면

잠시 조금은 다른 의미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아 할부를 갚아야 되는 시간이 왔구나"



변화를 위한 할부.

하지만 지금의 스스로가 버려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닌,


지금 그대로에 또 다른 "더함"을 가져다주는 시간.


그런 더함은 변화를 겪을 때마다 결국 천천히 쌓여 나갈 테고,

스스로가 자각할 수 없을 만큼의 단단함, 그리고 충분한 시간의 굳음이 있은 뒤에.


알 수 없었던, 어쩌면 상상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 한아름 가득 쌓여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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