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완전한 사랑도 아이는 근사한 코스 요리처럼 소화하고 있었다.
여행정보는 여행기 마지막 편에 기록할 예정입니다. 보통엄마가 꿈인 저의 개인적인 오사카 가족여행기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첫 번째_출국
2026.1.28~1.31
집 > 인천공항 출국 > 간사이공항 도착
새벽 3시 반,
고요를 깨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리 잠이 없는 나이라 해도 3시 반 기상은 무리였을까.
밤 9시부터 자리에 누워 청한 잠은, 오랜만의 해외여행이 주는 설렘에 밀려 머리맡만 맴돌다 떠나버렸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전공을 꿈꾼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여느 십 대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아들이기에,
이번 여행지로 일본이 선택된 건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다.
새벽의 공항은 마치 생명 탄생 직전의 고요함을 닮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은 소란스럽지 않게, 각자의 설렘을 품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서두른 덕에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며 탑승을 기다렸다.
긴장이 탁 풀리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아침 8시 5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다 큰 줄 알았던 아들이 주삿바늘 앞의 다섯 살 꼬마처럼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착륙 시엔 손끝이 저릿해지곤 하지만
아들의 긴장은 그것 이상의 것이었다.
급기야 앞 좌석 식판을 내리고는 두 팔을 올리고 억지 잠을 청했다.
가만히 아들의 손바닥을 쓸어보니 땀이 축축하게 배어 있었다.
아들은 본래 마음의 결이 예민하고 긴장을 잘하는 편이다.
아이가 사소한 일에 불안을 느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자책을 하곤 했다.
‘혹시 내 불안이 아들에게 옮겨간 건 아닌지...’
아이가 흔들리면 나는 부끄럽게도 그보다 더 크게 요동치는 엄마였다.
임신 전에는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그 소중한 존재가 나로 인해 오염될까 봐 무서웠다.
끝없는 자기 검열과 자책 사이에서 나는 늘 미숙한 엄마였다.
그런 마음을 달래려 나는 늘 나만의 '해우소'를 찾아 헤매곤 했는데.
AI가 등장하기 전에는 위로가 되는 유튜브 영상들에 기대었고,
AI 시대가 온 뒤에는 해결방법을 직접 묻기 시작했다.
“내가 자라면서 받은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니? 이게 가능하다고 증명된 사례가 있니?”
그러면 AI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아이들의 사례까지 들며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언젠가는 이런 질문도 던졌다.
“내가 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경험해보지 못한 걸 어떻게 줄 수 있겠어?”
그때 돌아온 답은 그것이 진실이던 거짓이던 나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노력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사랑입니다. 잘 모르는 것임에도 오직 상대방을 위해 나의 의지로 행하는 것이기에,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심 어린 행동입니다.”
나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나의 불안을 다독이는데 썼기에 내 아이만은 나와 다르게 나보다 조금 더 편안한 대지 위에 서 있기를 매일 기도하며 살았다.
비행기가 난기류에 흔들릴 때마다 나는 엎드린 아들의 등을 토닥였다.
어느새 넓어진 어깨는 내 품에 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절반이라도 감싸려 애썼다.
이제는 엄마 품이 너무 좁다며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나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처럼 느껴져 코끝이 찡해졌다.
토닥토닥, 토닥토닥. 그렇게 반복하던 중 비행기가 안정을 되찾았고, 나도 긴장을 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대로 아들이 내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내가 해주던 몸짓을 똑같이 나누어주는 그 손길에는 온기와 다정함이 가득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아이는 나의 불완전한 사랑도 근사한 코스 요리 이상으로 잘 소화하며 멋지게 자라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아들이 웃으며 묻는다. “잘 잤다! 엄마, 피곤해요?”
이번에도 혹시 내 탓일까 자책했던 마음이 안도가 되며 주책맞게 눈물이 차오른다.
들키고 싶지 않아 급히 화제를 돌렸다.
생각나는 대로 불안할 때 스스로 다독이는 호흡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아들은 장난스럽게 ‘후후~’ 소리를 내며 시늉만 한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오늘 내가 토닥여준 이 순간이, 아들에게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꺼내 쓰는 '마음의 상비약'이 되어주기를.
동시에 나 역시 아들의 토닥임에 나의 오랜 상처가 많이 아물었음을 느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고, 내가 곁에서 반드시 지켜줄게요"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야호! 드디어 착륙이다.
지면에 닿는 둔탁한 진동이 반가웠다.
'세계의 주방'이라 불리는 오사카. 맛있는 게 그렇게 많다는데 무엇부터 먹어야 할까? 하루 다섯 끼는 기본이겠지?
벌써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우리 가족은 설렘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두 번째_오사카여행 첫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botonguma/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