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호르몬

단돈 4천 원으로 열아홉의 기분을 살 수 있다면

by 보통엄마

여고 동창을 만나는 날이었다.

고등학생 때 꽤 친했던 친구였는데, 결혼하고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야 다시 만남이 이어졌다.


6개월 전에는 내가 친구 회사 근처로 가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고, 이번에는 친구가 휴가를 내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다.

미리 알아둔 맛집에 가서 옥수수 피자와 아보카도 김치볶음밥을 시키고 수다를 떨었다. 레드와인이 곁들여지자 약간의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학창 시절 친구는 무척 외향적인 아이였다. 늘 친구들 속에 있었고 인간관계도 나보다 훨씬 넓었다. 지금도 여전히 옛 동창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듯 보였다.

직장 생활도 만족스러워 보였고, 무엇보다 4백만 원에 육박하는 명품 패딩과 롱부츠로 한껏 멋을 내고 나왔다.


그 모습이 나는 진심으로 좋았다.

치열하게 워킹맘으로 살아온 친구가 이제는 자기 자신도 꾸밀 줄 안다는 게 좋아 보였다.


우리는 둘 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장녀였고,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맏딸들이었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삶의 많은 부분에 공통점이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친구의 많은 선택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나 역시 그 친구 앞에서는 내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게 덜 부끄러웠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옛 교정을 거닐었다.

생각보다 작아진 운동장, 매일 오르내리던 언덕길에서 사진을 찍고, 옛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입에 올리며 추억했다.


나는 원치 않았던 고등학교를 부모님의 등살에 떠밀려 다녔고, 학교생활 내내 불만이 많았다. 고1 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후 고등학생 시절부터 20대까지는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그런데도 지나고 보니, 그 시절 역시 친구가 있어서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요즘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대방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다고 했다.

최근 나 또한 성당에 관심을 갖게 된 터라 친구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 꽤 오랜 입문 수업과 신부님의 테스트를 거쳐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데, 성미가 급한 나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남편과 함께하지 않으면 갈등의 씨앗이 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은근히 떠보니 남편은 성당에 다니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건 막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말이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에 성당에 다닐 계기가 생긴다면, 남편과 함께 하게 해 주세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종교보다 우리 부부의 평안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언론사에서 오랫동안 편집기자로 일해왔다. 그래서인지 책 이야기도 풍성했다.

스토너라는 책과 또 한 권을 추천받았는데 제목이 길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스토너는 ‘남자 책’이라고 한마디로 소개 했지만 왠지 호기심이 생겼다. 스타필드 서점에 가면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답정너’에 관한 책도 추천받았다.

스웨덴 스님이 쓴 나도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책이라 했던가? 내게 답정너 기질이 있다고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친구에게 제목부터 찔려 싫다고 했더니,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카페를 나와, 친구가 처음 도착했던 기차역으로 향했다.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오늘이 참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와 20대에는 그렇게 많이도 싸웠는데, 나이가 드니 싸울 일이 없구나 싶었다. 그만큼 성숙해진 것 같기도, 내가 변한 것 같기도 했다.


다음에는 성심당에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친구를 위해 성심당 데이트를 계획해 봐야겠다.

우리는 인생의 무게에 비해, 곱게 잘 늙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만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수능 이후 백수 생활 중인 아들은 친구들과 놀러 나갔고, 고요만이 나를 맞아주었다. 다시 현실의 외로움과 마주했다. 애써 감정을 외면한 채 저녁을 준비하고 어지러운 집을 정리했다.


열아홉의 내가 마흔아홉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쓸쓸했지만, 친구와 함께 찍은 네 컷 포토 사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사진 속 우리는 여전히 열아홉이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어색한 몸짓이었지만, 마음만큼은 분명 열아홉이었다. 친구는 이런 사진을 처음 찍어본다고 했다.


오늘의 만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그 네 컷 사진을 찍던 시간이었다.

잠깐이었지만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4천 원으로 열아홉의 기분을 살 수 있었다. 단 몇 초에 불과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순간이었다.


몸에서 ‘열아홉 호르몬’이 마구 나오는 것 같았다.

갱년기에 웬 열아홉 호르몬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실제로 존재하는 호르몬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이를 잊었다. 남편도, 아들도 잠시 잊고 오롯이 그 기분에만 집중했다.


오랜만에 기억에 남을 만한, 참 괜찮은 하루였다.

마음이 없으면 먼 길일 텐데, 흔쾌히 달려와 준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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