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 목욕하는 KTX 포착

사진기자 초청 취재지원

by 문좀열어주세요

때로는 수천 자의 기사보다 사진 한 장이 더 효과적이다. 벌거벗고 뛰어오는 어린이의 절규로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 전쟁 한복판에서 애인과 조우하는 병사, 쏟아지는 폭우에 밧줄 하나에 의지해 계곡을 건너는 사람... 사진의 깊은 인상이 기사보다 오래 남는다.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적 보도 사진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장면도 사진기사가 된다. 봄을 알리는 꽃망울, 소나기 피하는 시민, 그해 첫 번째 서리와 첫눈 등등 계절의 풍경은 항상 신문 지면을 꾸민다.

사진 지면을 활용하는 것도 홍보 업무의 하나. 인천국제공항이나 도로공사 등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공기업에서 활발하게 진행한다. 시설인프라가 공적이어서 모두의 자산처럼 느껴진다. 거부감이 적다. 비행기가 보이는 공항 대형 유리창 물청소, 강변북로 교통관리시스템 전광판 세척, 방음벽과 공원 정비 사진 등이 봄철 신문을 장식하곤 한다.


좋은 콘텐츠만 있다면 별도 행사나 이벤트 없이 사진 촬영만을 위해 기자를 초대할 수 있다. 주로 해당 계절이나 최근 이슈인 콘텐츠를 선정하면 된다. 사진으로 표현하기 효과적이어야 한다. 코로나19 당시 KTX 열차 내 방역 같은 이례적인 상황도 있고, 국가적 회의와 스포츠 행사에 대한 기관별 준비 상황 등은 단골 메뉴이다.


2022년 봄 코로나19로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못할 때였다. 긴 터널과도 같았던 사회적 거리두기의 끝이 찾아왔다. 방역에 대한 염려도 덜어질 때였다. 열차 이용객은 점차 회복되는 추세였다. 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하는 이미지를 노출하고 싶었다. 봄과 함께 새롭게 움트는 철도를 보여주려 했다.


그전부터 아껴두었던 콘텐츠가 있었다. 봄을 맞아 목욕하는 KTX 사진을 기사화하고 싶었다. 이름하여 ‘봄맞이 KTX 세척’ 운행을 마치고 기지로 들어온 KTX 차량은 자동으로 세척한다. 고양과 부산, 광주 전국 3곳에 KTX를 정비하는 기지와 세척고가 있다. 통상 하루 반 동안 5,000km 정도 운행을 마친 KTX는 기지로 입고되고 그때마다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검수작업 전에 세척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세척고의 상황에 따라 작업자가 수작업으로 세척하는 경우가 더 많다)


388m의 차체가 긴 세척고를 통과하며 물보라 속에서 깨끗해진다. 20칸 차량이 약 15분 동안, 곤충제거 → 예열(예냉) → 세척액 분사과 브러시 작업(Brushing) → 세척 → 헹굼 → 송풍을 거쳐 목욕을 마친다.

자료를 모으고 친분이 있는 사진기자 두 분께 아이템이 어떤지 물었다. 신선하다는 의견이었다. 현장 섭외에 들어갔다. 기자들을 초대하기 쉬운 고양 KTX 차량기지(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로 정했으나 난색을 표했다. 일정을 맞추기도 까다로웠고 작업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취재를 위해서는 오전이 적당했으나 그 시간에는 들어오는 차량도 별로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신문 지면에 게재되기 위해서는 오전 중에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기자들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최대한 일정을 조율해 10시 30분으로 시간을 정하고 9시 40분까지 집결이라고 요청했다. 9시 30분에 모두 도착했다. 사진기자들은 보통 일찍 온다. 중요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이 습관이다.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사진기자들

처음 계획은 2개 조로 나눠서 1조는 세척고 밖에서 촬영을 하고 나머지는 세척되는 KTX 운전실 내부에서 촬영하는 것을 고려했다. 기자들은 의견이 달랐다. 차량 내부에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일말의 관심도 없이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였다.


결국 모두 밖에 자리 잡았다. KTX가 나오는 바로 정면에서 촬영하면 가장 사진이 잘 나오겠지만 안전상 문제가 있었다. 세척고를 통과하는 열차는 평균 4.5km/h의 속도로 움직인다. 걸음과 비슷한 속도여서 10m 앞에서도 8초 가량 피할 여유 시간이 있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 했다.


열차가 지나는 선로 양쪽으로 흩어지고 선로에서 충분히 떨어져 촬영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의욕이 앞서 기자가 움직이면 위험할 수 있으니 자리 잡은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수 차례 강조했다.

작업 시작 전 세척고를 촬영 중인 기자들, 촬영 이후 선로 옆으로 이동

별도의 무전기를 챙겼다. 기관사와 세척기 조작 담당자와 교신을 했다. KTX를 출발시킨다는 기관사 무전이 울리자 700톤 무게의 육중한 KTX가 움직이며 “끼익~끼익~” 마찰음이 들렸다. 함선의 뱃고동 같았다. 열차 바퀴와 선로가 맞물려 퍼지는 소리였다. 기자들의 시선이 세척고 터널 끝을 향했다.

KTX는 서서히 어둠 속을 통과했다. 300m가 넘는 거리에서 KTX가 가까워질수록 사진기자들도, 카메라도 바빠졌다. 망원렌즈가 끼워진 카메라는 표준렌즈의 카메라로 바뀌었다. KTX가 근접해 오자 다시 광각렌즈로 성급히 갈아 끼워졌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KTX 표면을 2m 브러시가 닦는 작업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세척고 어둠 속에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다. 무전기로 열차 속도를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KTX 앞부분의 전조등도 켰다. 카메라 셔터가 연사로 터졌다.


운이 좋게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비스듬한 빛이 비쳤다. 벽면에 작은 홈이 있었는데 그 사이로 강렬한 햇빛이 파고든 것이었다. 사진에 생명력을 더했다. 다음날 지면 여러 곳에 사진기사가 실렸다.

여러 지면에 실린 봄맞이 KTX 자동세척

사진기자 초청 현장 취재를 위해서는 몇 가지를 후보로 올린 후 사진기자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좋다. 기자에게는 언제나 많은 정보가 들어오기에 차별화된 콘텐츠를 고를 수 있고 유익한 의견을 주기도 한다. 홍보 담당자 생각과 사진기자 눈이 다를 수가 있다. 근사하게 연출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돋보이는 부분이 없어 평범하게 나오기도 한다. 꼭 의견을 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시의적절한 콘텐츠를 선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새로운 것이 좋고 매년 나오는 주제에서 새로운 의미를 주어도 좋다. 설과 추석 등 일 년, 두 번 있는 명절 대수송 기간은 빼놓을 수 없는 연례행사다. 현장에 많은 사진기자가 찾아오면 요구가 많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카메라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준비한 것과는 다른 주문도 있다. 기자가 현장에서 의외의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한번 연출된 장면을 재현하길 바라기도 한다.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현장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작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현장 통솔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진기자들을 위한 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특히 통신사 기자들은 여러 장의 사진을 설명과 함께 1시간 이내로 올리는데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시간, 장소, 작업과 등장인물 등의 공식적 명칭, 장면에 대한 간략한 설명, 기사에는 나오지 않더라도 풍부한 이해를 위한 세부적인 내용 등등


자료는 취재를 요청하는 ‘취재요청서’와 같이 발송하는 게 좋다. 취재요청서는 초대장이다. 시간, 장소, 작업 내용, 위치, 세부 일정 등등 기본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의외로 주차장이 신경이 쓰이는 문제이다. 여러 렌즈와 2대 이상의 카메라를 휴대하는 사진기자이지만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한 장소는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시간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도 있다. 대개 희소한 촬영 장소라서 승용차가 들어올 수 있는 동선까지 고려해야 한다. 현장 위치와 동선은 기자들이 찾아오기 편해야 한다. 최근에는 드론으로 촬영하는 기자도 많기에 ‘드론촬영허가 구역’ 등도 고려해야 한다. 허가구역이라도 비행 중에 장애물은 없는지 이륙, 착륙하는 과정에서 위험요인은 없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기자를 초청할 때는 특정 기자만 부르거나 일부 기자를 배제하면 안 된다. 모든 매체에 공유할 수 없으니 사진기자협회 등을 통해 정보가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급하게 진행되는 경우라도 통신 3사 정도는 따로 연락해 취재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주요 언론사에도 통보하고 기자들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게 해야 추후에 있을 행사에서도 원활하게 도움을 받는다.


참석 희망 기자를 사전에 파악해 최종 준비해야 하지만 당일에서야 기자가 배정되곤 한다. 사진부 부장이 취재 여부와 기자를 배정한다. 당일 일정에 따라 취재를 취소하기도 급하게 배정하기도 한다. 급한 취재가 생기면 취소되는 경우도 잦다. 모든 변수를 감안하고 준비해야 한다.


안전관리와 시간 역시도 중요하다. 대형 사고 현장도 집 드나들 듯 취재하는 기자들이기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크다. 준수사항을 잘 지키는 만큼 정확한 준수사항을 전달하고 그 범위 안에서 최대한 안전이 확보되게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지시사항만 지켜주면 당신은 100% 안전하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사진기자가 마감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도 필요하다. 통신사 기자들은 현장에서 바로 사진을 올린다. 통신사가 앞다퉈 사진을 게재하고 신문 기자들도 미리 지면을 배치받기 위해서는 오전 중에 마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승용차로 온 기자들은 보통 차에서 작업을 한다.


취재 장소가 한정된 공간일 수도 있다. 좁은 곳에 많은 기자들이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공동취재단’을 꾸리면 된다. 사진기자 사이에는 질서와 규칙의 합의가 잘 이뤄진다. 꼼꼼한 준비에도 언제나 변수는 뒤따른다. 이례 상황에 대한 대처가 기자들은 빠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오히려 더 좋은 취재거리가 되기도 한다. 정확한 가이드라인과 정보만 전달된다면 그 안에서 사진기자들이 작품을 만들어낸다.


실패도 있었다. 성의껏 기사를 실어준 기자분께 죄송하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없었다. ‘봄맞이 KTX 색칠을 하다’로 ‘KTX 세척’의 후속 콘셉트였다. 2025년 봄 친환경 페인트로 KTX를 색칠하는 보도자료를 보고 기획했다. 푸른색 물감이 뿌려지면서 KTX가 새단장을 하는 그림이 꽤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방송 뉴스에서 적합해 보였다.

페인트 색칠하는 작업장

KTX는 최고 300km/h 속도로 달리기에 맞바람 등 공기저항을 크게 받는다. 고속운행으로 생기는 진동으로 차량 연결부위 균열이 발생하고 페인트가 벗겨지곤 한다. 벗겨진 표면을 다듬고 용접한 후에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데, 이번에 기존 유성 페인트 대신에 친환경 페인트로 바꿔서 색칠하게 되었다. 한 지상파 보도에서 수성페인트가 발암물질이라는 지적에 따른 개선사항이기도 했다.


해당 지상파의 다른 기자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취재 가능한지를 묻고(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사진 기자에게도 연락을 했다. KTX 1칸이 분리되어서 좌우로 2~3미터 정도의 여유 밖에 없는 좁고 밀폐된 장소에서 페인트가 분사되기에 주의사항도 복잡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유기화합물 취급 특별장소로 출입제한 및 보호구(복) 착용 의무화에 따라 보호(위생)장비 착용 후 촬영해야 했다. 페인트 액체의 분사로 인해 ‘버리는 옷’, ‘카메라 보호 비닐’도 필수라고 전달했다. 까다로운 조건 때문인지 촬영하겠다는 사진기자는 5팀에 불과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분사형 페인트칠 자체는 촬영하기가 쉽지 않아 진작에 포기했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서 힘들게 작업하는 직원과 불편하게 촬영하는 기자

사진기자들이 모이고 촬영을 시작했다. 공간이 워낙 협소해 1, 2팀으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팀별로 10분도 촬영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심층 보도하기로 한 한 분만 30여 분 세심히 촬영했다. 기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페인트가 칠해지기 전은 의미가 없고, 칠해지는 장면은 드러나지 않고, 칠한 이후는 일반 열차와 똑같아서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작업 순서별로 나눠서 찍기에도 동일한 구도가 나오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페인트칠이 끝나고 개방된 공간에 놓여있는 1칸을 따로 촬영했다. 현장을 취재 온 베테랑 사진기자에게 문제점을 알려달라고 했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 아니고 결과다”며 “가장 깨끗한 페인트칠로 완성된 KTX를 사진 잘 나오는 곳에 옮겨놓으면 알아서 구도를 잡고 콘셉트에 맞게 사진을 촬영을 하고, 페인트 칠하는 과정은 추가로 요청하거나 연출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작업을 마치고 나온 KTX-산천을 촬영


페인트를 칠하는 장소와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현장을 직접 가보지도 않고 작업 동영상과 사진, 문서와 설명만을 듣고 촬영 과정을 구상했기에 기대하는 사진은 나올 수가 없었다. 귀한 시간을 내준 기자분들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기자들은 종종 있는 일처럼 값진 조언을 전해줬다. 과정이 선명하고 결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작업을 선정해야 했다. 담당자로서도 미흡한 준비로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깊이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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