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유실물엔 도마뱀이 우글우글

25만 개 유실물보다 살아있는 생물 한 마리에 이목 집중

by 문좀열어주세요


언론매체에서는 주말이나 공휴일 등 출근하지 않는 날을 대비해 미리 기사를 써놓기도 한다. 특히 통신사 같이 매일 기사가 올라가는 매체는 주중에 틈틈이 기사를 작성해놓고 쉬는 날 게재한다. 여기에 맞게 기사거리를 제공하거나 흥미로운 소재를 공유해 기사가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기자가 요청하기도 하는데 시의적절하고 유용한 기사거리를 보낼 수 있다면 기자와 신뢰가 쌓인다. 당장 기사를 쓰지 않더라도 기자가 관심을 갖고 추후에 보강해서 취재를 하기도 한다. 기사거리는 트렌드에 맞는 대중 관심 사항이면 좋다. 여기에 연간 실적, 추이 변화, 이색 사례 등을 추가하면 된다.


2024년 1월이었다. 전사 주간 회의자료 속에서 유실물 관련된 자료를 발견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전국 기차역과 열차에서 습득한 유실물은 2023년 한 해 24만 7천여 건이었다. 생각보다 수치가 높았다. 정확히는 24만 7천225건인데 전년보다 51.9% 늘어났다. 하루 평균 677건의 유실물로 접수했고, 57%는 주인에게 돌아갔다.


관심의 초점은 가장 많은 유실물이었으나 특별하지 않았다. 가방이었다. 전체 품목 중 15%(3만 6천707건)에 달했다. 지갑 11.4%(2만 8천236건), 쇼핑백 10.7%(2만 6천415건), 휴대전화 10.4%(2만 5천589건) 등이 뒤를 이었다. 흔히 소지하는 물품이 유실되고 있었다. 기자에게 보내주기에는 뭔가 특별한 내용이 필요했다.


흥미로운 내용을 덧붙이기 위해 현장 직원들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부산역 등 주요역 유실물센터 몇 곳에 메일을 보내 ‘특이한 유실물’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 보관하고 있는 유실물 중에 특별한 것 좀 찾아봐주세요. 지금까지 처리했던 유실물 중에는 가장 이례적인, 기억에 남는 유실물은 무엇인지 조사했다.


동물, 의료기구, 스포츠용품, 군용품 등 품목은 다양했다.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음식물도 있었고, 살아있는 생물도 더러 있었다. 유실물센터에서는 개별유실물을 품목별로 분류해서 구체적인 물건보다는 품목으로 정리되었다. 더 특별한 사례가 필요했다.


실제로 유실물을 습득해 유실물센터로 인계하는 KTX승무원에게 도움을 구했다. 우리 자회사이기도 하고 KTX 열차 내 승무를 맡고 있는 코레일관광개발의 친한 지인께 부탁했다. 고맙게도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 단체대화방’에 ‘기억에 남는 유실물’을 알려달라고 올렸다.


‘케이지 속 도마뱀’, ‘살아있는 꽃게’, ‘강아지’, ‘뱀’ 등 살아있는 생물을 비롯해 목발, 지팡이, 커플링, 코골이, 양압기, 틀니 등 상상 못한 습득물의 기억을 전해줬다.


"객실 통로에 수석(壽石)인지 유실물인지 판단이 어려운 주먹 크기 돌멩이가 있었는데, 내릴 때 보니 주인이 챙겨간 것으로 보인다"는 승무원의 전언도 있었다.


친분이 두터운 통신사 기자분께 ‘유실물 기사’가 어떤지 문의했다. 기사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줬고 기자의 조언을 받아 내용을 보강했다. 전년도와 비교해 수송량 증가율보다 유실물 증가율이 높다는 해석이 덧붙여지고, 기사가 더 풍성해졌다.


정보성 내용으로 코레일에서 유실물을 처리하는 절차도 알렸다. 유실물은 관련 법에 따라 습득한 역에서 일주일간 보관된다. 이후에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경찰서로 넘겨진다. 유실물과 관련한 고객의 소리 가운데 분실한 물건을 찾아준 것에 대한 감사와 적극적인 직원 응대에 대한 칭찬이 높다는 내용도 함께 기자에게 전달하고 유실물을 찾는 방법 등도 같이 알려줬다.


통신사 기사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컸다. 여러 매체에서 유실물 기사를 인용했다. 종합편성채널에서 유실물센터를 취재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고, 아침방송에서도 유실물처리에 대해 동행 취재하겠다는 방송작가의 요청도 있었다.


한해 유실물 25만여 건이라는 수치보다는 이색 유실물이라는 소수 사례가 더 이목을 끌었다. 부작용은 기사 제목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일부 언론에서는 전체 유실물 수치나 처리 방법보다는 특이한 유실물로 제목을 달았다.


지난해 열차 유실물 1위는 '가방'…목발·틀니·강아지 등 다양

나만 기차 안에 두고 온 게 아니었네…코레일 접수한 유실물 보니

도마뱀‧강아지도 열차 유실물?…가장 많이 잃어버린 건 ‘이것’

살아있는 꽃게부터 뱀‧도마뱀까지…지하의 이곳은 미니동물원

살아서 ‘꿈틀’…열차 안에 두고 간 유실물이 ‘에구머니나’

“정신 안 차리노”…부산이 서울 뛰어넘다니


특이한 기사는 부산지역의 언론매체였다. 평소에도 자주 그러듯이 부산 사투리로 제목을 달고 ‘부산역’에 유실물이 제일 많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았다. 기사를 본 부산 지역지 기자에게서 바로 연락이 왔다. 부산역 유실물이 많은 이유가 뭐냐고? 혹시 부산을 찾는 여행객이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특징이 있는지 물었다.

사실 부산역에는 서울역에서 내려가는 이용객과 수서역에서 내려가는 이용객이 모두 하차하는 종점이기 때문에 유실물이 더 많다. 부산역에서 출발한 KTX와 SRT는 오송역을 지나면서 나눠져 서울역과 수서역으로 가지만, 내려오는 것은 부산역으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다른 통신사에서 먼저 유실물 통계자료를 요청해 왔다. 이번에는 단순한 통계 수치만 전달했다. 특이한 유실물은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대신, 월별로 유실물이 가장 많은 기간, 유실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기차역 순위 등등 통계 수치를 전달했다. 같은 주제이지만 범주를 다르게 해서 차별화했다.

기차역 유실물을 보관한 선반

유실물과 비슷하게 열차 내 ‘빌런’에 대한 자료도 기사화되었다. 기획성은 아니었지만, 열차 내 공중도덕을 지키자는 차원이었다.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모아 언론사에 제공했는데 부정적으로 많이 보도되었다.


코로나19 끝물에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풀리면서 차내 질서 유지 캠페인이 필요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열차에서 주먹다짐을 하는가 하면 삼겹살 파티를 벌이거나 성희롱을 하는 일부 시민들의 추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모든 사례를 통계화해서 관리하지 않기에 KTX 등 열차 승무를 담당하는 서울고속열차승무사업소 근무 일지에서 ‘열차 강제 하차와 철도경찰에 인계된 기록’을 조사했다. 2023년 11월까지 그해 총 41건이 접수되었다. 큰 수치는 아니었으며 전년도 69건보다도 감소했다. 마스크 의무착용이 해제되면서 단속이 줄어든 영향도 있었다.


승차권 없이 열차에 탑승하고 검사나 부과금 지불을 거부한 경우가 9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음주 난동 8건, 흡연 7건, 폭언 등 소란 7건, 성추행이나 성희롱 4건, 폭력 3건 등으로 집계됐다.


건수가 많지 않아서 각각의 사례를 일지 내용과 인터뷰를 통해 보강했다. 20, 30대 승객 사이의 주먹다짐, 술에 취한 승객이 달리는 열차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한 아찔한 일,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에서 승객 4명이 소주와 포장된 삼겹살, 상추를 꺼내 술판을 벌이는 기행도 벌어졌다.

그 외에 화장실 유리창을 부수려고 시도하거나 김천구미역에서 승강문이 열린 틈을 타 흡연하고 제지하는 승무원에게 폭언한 사람도 있었다. 늦은 밤 건너편 좌석에 앉은 여성에게 손하트를 날린 승객, 승무원을 성희롱하거나 추행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병째로 소주를 마시다 승무원이 저지하자 ‘물은 되고 술은 왜 안 되냐?’며 승무원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몰래 승객을 촬영하다 붙잡히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강제 하차되고 철도경찰에게 인계가 되었다. 코레일과 국토부는 열차 전량에 CCTV를 설치하면서 차내 소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안내도 덧붙였다. 열차 내에서의 폭행의 최대 형량을 형법상 일반 폭행의 최대 징역 2년보다 높은 3년으로 상향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더 강력하게 처벌된다.

이전 09화기념일은 '홍보의 날'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