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도자료 꼭 내야 했나

by 문좀열어주세요


○○○ 의원, ○○○ 와 단판... KTX 추가 정차 이끌어

○○○ 시장, ○○역 개통에 앞장…지역 발전에 혁혁한 성과

○○○ 기관장, 위기 속 리더십 빛나…향후 행보에 귀추 쏠려

○○○ 사장, 뚝심 통했나! 흑자 전환 성공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기관장을 노골적으로 자랑하는 보도자료는 자제한다. 자기 칭찬은 의도가 다분해 거부감을 준다. 쓰지 말아야 할 보도자료 1순위로 배운다. 그럼에도 간혹 민망한 제목을 단 기사가 올라오곤 한다. 애초에 보도자료가 그런 경우도 있고 의도를 알아챈 기자가 입맛대로 과장하기도 한다.

이런 보도자료는 내용도 용비어천가이다. 기관장 한 명의 성과로 만성 적자가 흑자로 전환된다. 노사 관계도 전례 없는 ‘어깨동무’ 동업자가 된다. 사회공헌도 ‘아이유 급’이다. 개국 이래 놀부 심보만 부리던 조직이 이제야 봉사에 눈을 뜬 것 같다. AI와 첨단기술를 전 분야에 도입해 페러다임을 바꾼단다. 패러다임이 양말처럼 갈아신기 쉬운 줄 몰랐다. 직원들 복지도 대폭 개선되었다. 모두가 위대하신 기관장님 영도력 덕이다.


공적인 성격이 강한 공기업 업무는 기관장 한 명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중장기 경영목표가 있고, 재무관리 계획도 5년, 10년 단위로 미리 세워놓는다. 관할 정부부처와 기획재정부도 깊게 관여해있다. 사회공헌이나 직원복지 문제도 정부 기조에 맞춰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공공기관은 보통 기관 특성에 맞는 활동이나 성과, 정부 정책의 이행을 주로 홍보하는 경향이 있다. 기관장을 포장할 때도 기관의 중장기 전략과 홍보 방향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추진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늘공(늘 공무원)’들이 수십 년 조직을 이끌어왔고, 대부분 기관장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불문율이 깨지는 보도자료는 속사정이 있어서다. 경영평가에서 기관장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던가, 실적을 챙겨야 하는 상황일 수 있다. 자리에 압박이 있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차원도 있다.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채용 비리 등으로 사퇴 압박에 시달리던 한 기관장은 ‘임대 사용료 감면’으로 업계와의 상생에 힘쓴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용료 감면은 범정부적 정책이라 특별할 게 없었다. 여지없이 삐딱하게 보도하는 언론이 있었다.


보도자료는 언론에 보도될 가치가 있느냐가 첫 번째 고려사항이다. 내야 하는 보도자료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꼭 내야 하는 보도자료라도 적절한 때에 내야 한다. 반면에 보도자료를 내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부정적 여론이 만연된 상황에서 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24년 초, 지난 정권 인사였던 기관장이 직원 사망 사고가 터지자 연일 사퇴 압박에 시달렸다. 주요 노선 개통식에도 초대받지 못했고, 정부부처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노골적으로 배제되는 상황이었다. 꼭 필요한 보도자료 외에 홍보를 최대한 자제했다.


특히 사장 동정에 대한 홍보는 시도조차 못했다. 언론에 노출되면 부정적 인식을 가진 매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사퇴를 종용하는 기사를 내놨다. 관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론이 잠잠해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기관장 스스로 결단을 내리거나, 정부 관계부처에서 정리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부는 퇴임을 바라는 눈치면서도 직접 나서기는 부담스러웠다. 이전에 기관장을 해임했으나 절차 등의 문제로 해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인 기관장이 승소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창학 전 한국국토정보공사(LX) 사장은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며 21년 3월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구본환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도 태풍 위기 대응 부실, 국정감사 시 허위보고, 인사운영 공정성 훼손 등이 제기되어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해임처분 취소 소송이 제기되어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2021년 12월 복직해 그 다음해 4월까지 사장이 2명이 있는 상태가 유지되었다. 말 그대로 하나의 활주로에 두 대의 비행기가 나란히 선 형국이었다.


공기업 기관장 해임 처분에서는 절차적, 사유적 정당성이 없으면 취소가 될 수도 있다는 법원 판단이었다. 이후에 기관장을 해임 시키기 위해서는 정당한 절차를 거치거나 스스로 나가는 길 외에는 없었다. 그만큼 자리를 비우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고 그만큼 애매한 상황이 이어지게 되었다.


언론에서 퇴임으로 가닥을 잡고 기사를 쓰면 결국 그렇게 된다. 연이어 물어보는 사장 행보와 감사 조사 결과, 재판 상황 등이 사퇴 수순으로 비친다. 기사가 확산될 수록 기자들은 정보보고 차원에서도 관련 문의가 이어진다. 해당 기관장이 항소는 했는지,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해고사유가 되는지 등등. 거기에 추가로 사고 등 흠집이 더 생기면 여지없이 사유가 추가되는 형국이다.


이런 국내 사정을 국외에선 알 수 없다. 대내외 사정과 상관없이 코레일 기관장이 마침 '국제철도연맹 아태지역 의장‘으로 뽑히게 되었다. 경영진에서는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본인 실적을 드러내고 싶었다. 홍보실에서는 반대했다. 역효과를 우려했다. 의도가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경영진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3장짜리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철도에서 영향력 있는 국제기구의 자리로 공신력과 주목도가 있어 보도자료로서 가치는 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우호적으로 써주는 매체도 있었다. 국제철도연맹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기도 했고, 국내 인사 중에 역대 의장이 있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우려했던 일도 일어났다. 국내 주요 일간지에서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 보도자료 꼭 내야 했나'라는 제목이었다.


직원이 죽었는데 이런 자료를 지금 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임기는 내년부터 시작이라 내년 초에 보도자료를 내도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태지역 의장 자리를 코레일 사장 임기 보전용으로 활용하려고 사망 사고 와중에도 보도자료를 급하게 지시한 것 아니냐는 평도 이어졌다.


나쁜 리더의 대표적 사례로 '무공감'한 사람,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어, 결국 조직에 폐를 끼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일반인 시각과 동떨어진 보도자료를 받은 기자는 ‘논평’을 통해 비난을 한다. 실제 논평 거리를 찾는 기자에게 좋은 소재다. 보도자료이기에 정리된 팩트가 있으니 이를 조목조목 지적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지 말아야 할 보도자료가 있다. 사실 확인되지 않은 것, 이해관계자 합의가 필요한 것, 언론을 설득하지 못하는 보도자료는 대상을 불문하고 비난에 휩쓸릴 수 있다. 국면을 전환하려는 보도자료는 지양해야 한다.


2018년 6월 KTX 승무원 해고 판결과 관련해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법관들이 낸 보도자료도 지상파 뉴스에서 논평 대상이었다. 2015년 2월 코레일과 KTX 승무원 간에 ‘근로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인정한 판결이 ‘법대로 했다’는 해명의 보도자료였다.


보도자료에서는 재판거래 의혹을 부인했지만, 지상파 뉴스에서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내지 말았어야 한다”며 “검찰 수사 시작됐는데 억울하단 식의 보도자료 낸 건 아무래도 볼썽사납다.”고 말하며 대법관들을 비난했다.


한사람만을 위한 홍보는 홍보가 아니다. 우리 기관의 눈으로만 보면 홍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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