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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tton Salam Feb 15. 2023

11. 비싼 돈 주고 산 예쁜 쓰레기 - 02

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11

11. 비싼 돈 주고 산 예쁜 쓰레기 - 02


노트북에 비해 턱없이 작았던 녀석은 결국 교환이나 환불처리도 하지 못했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영수증과 포장용기를 버렸기 때문이다(나의 악습관 중 하나다). 그래서 그 정렬의 빨간 프라이탁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픈 손가락처럼 들쳐 메고 다닌다. 지금보니 피로 물든거 같다.


당연하게도 그 사건 이후,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어쨌든 노트북은 가지고 다녀야만 했고, 가방의 자리 또한 여전히 공석이었다. 집에 굴러다니는 백팩이 하나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작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노트북은 컸다. 훨씬 컸다. 백팩에도 안 들어가다니.... 며칠 동안은 대충 구겨 넣고 다니다가 그마저도 포기했다.


돌이켜 보니 그때의 나는 단순히 노트북이 들어가는 프라이탁이 갔고 싶었었나 보다. 자연스럽게 중고매물에 눈이 돌아갔다. 강력한 우승후보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트북이 족히 두 개는 들어갈만한 사이즈의 프라이탁을 짊어지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가 있었다. 노트북 보다 비싼 가방, 그것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예쁜 쓰레기, 프라이탁이다.


나는 자전거를 좀 거칠게 타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자잘한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커다란 가방에 커다란 노트북을 넣고 다니다 보면 무게의 중심이 비대칭이 되면서 안정적인 운행을 하지 못할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사고는 가방의 내구성이 아니었으면 노트북도 나도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무게가 쏠려 넘어진다면 다행히 가방을 멘 쪽으로 넘어졌기 때문이다.


몇 번의 사고를 겪으며 깨달은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가방이 방수가 잘 되는 두껍고 튼튼한 재질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 속에 있는 물건까지 멀쩡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자전거에서 나가떨어져 몸뚱이가 바닥에 내리꽂아지거나 도로에 나뒹굴었을 때 가방이나 내 몸은 비교적(?) 괜찮았지만, 가방 속의 물건들은 심각하게 박살 나 있었다(다행/우연히도 노트북은 멀쩡했다).

둘째, 이제 중고로 팔긴 글렀다. 사고가 누적된 만큼 내 몸에 난 상처 이상으로 가방상태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인간 몸뚱이야 후시딘을 바르면 낫지만 가방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젠 둘 다 팔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쓰고 있다. 그나마도 이제 쓸 일이 많이 줄었다. 짐이 되는 순간이다.


프라이탁 사건으로 얻은 교훈은 두 개다.

1. 사람은 역시 똑똑해야 한다.

2. 아픈 만큼 한 숨만 나온다. 성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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