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23
'옥탑방'의 이란 곳의 로망, 또는 판타지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내가 옥탑방으로 이사를 하고 난 뒤 주변인물들에게 알리고 나서부터였다. 부동산이 공포의 대상이 된 지금은 선호하는 주거환경의 형태가 조금은 다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그곳으로 이사를 갔을 때는 그랬다.
옥탑방에 산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예외 없이 두 가지 중 하나, 또는 두 가지 모두였다.
"춥지 않아?"
"좋겠다. 거기서 고기 구워 먹으면 딱이겠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옥탑방의 이미지는 춥고 고기 구워 먹기 좋은, 캠핑의 대체공간인가 보다.
두 가지 대답 중 춥지 않냐는 질문은 적당히 무시할 만하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전의 살던 곳의 극심한 추위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은 재개발예정지역으로 묶인 지 10년 이상 된 동네였다. 오랜 시간 방치되다 보니 지역자체가 슬럼화돼 있었다. 건물의 소유주들 역시 임대계약건이 없어 개보수는커녕 단열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대의 대부분은 공실이었고 그 때문에 동네의 을씨년스러움은 짙어있었다. 그 어떤 소음이나 잡음도 나지 않는 적막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당시 몹시도 궁핍했던 생활 탓에 서울의 한 복판 초저가 월세라는 이유로 덥석 물었지만 역시나 지나치게 저렴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게 된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단열이었다. 내가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 사실을 첫겨울이 시작되기 전 찬바람이 살짝 불기 시작하면서 곧장 깨달았다. 보일러를 아무리 강하게 틀어도 한겨울에는 방안에서도 입김이 났다. 손과 발, 코가 시려서 잠에서 깬 겨울날도 한둘이 아니다. 커다란 창문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외풍은 여름이었으면 땀 한 방울 안 흘릴 정도였다. 심지어 수도관이 얼어버린 탓에 겨울 내내 목욕탕을 드나들거나 회사에서 씻었던 날도 적지 않았다. 결국 난 세 번째 겨울이 오기 전에 그곳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둘러 겨울초입에 알아본 옥탑방은 햇살이 잘 들어오고 온기가 감돌았다. 햇살은 이전 집도 잘 들었다. 너무 잘 들어서 문제였다. 집은 동향이었는데 창문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여름에는 아침햇살에 눈에 부셔 잠에서 깨고, 겨울에는 한기에 몸서리를 치며 잠에서 깼다.
어쨌든 처음 만난 공간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온기는 단 숨에 나를 그곳에 눌러앉게 만들었다. 공간의 따스함은 그동안 지냈던 혹한의 환경 속에서 뼛속 깊이 박혀있던 성에까지 단번에 녹여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