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37
지금 생각해 보니 음악실기시험은 당시의 배경이 작용한 교과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아마 그때쯤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북한에서는 모든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어떤 악기든 하나씩은 다룰 줄 안다는 뉴스 비슷한 걸 본 것이 기억났다.
시작은 그리 순수하진 않았지만 결국 나는 고등학교 음악실기시험 덕분에 북녘의 여느 일반 학생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악기하나정도는 다룰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음악이란 게 참 신묘했다. 주변인들은 물론 나 조차도 적당히 시험만 보고 그만 둘 줄 알았지만 이 녀석은 아바타의 나비족이 동식물과 교감하듯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나 역시도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마치 맨날 싸우는데 헤어지지 않는 연인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난 그 뒤로도 줄곧 기타를 연주했다. 같은 시기에 악기를 배우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연주한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조악하지만 악기를 다룰 줄 알게 된 후로 재밌는 경험들을 악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난 교회에서 굴러다니던 기타를 갈고닦아 연주하기 시작한 지 약 6개월 만에 결국 처음 기타를 발견했던 그 무대에 서게 됐다. 그 이후로는 베이스기타나 일렉트릭기타도 조금씩 배우면서 다른 곳의 객원반주로도 활동할 기회도 생겼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버스킹도 했었다. 물론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진 못했다. 뭐든 일단 해보고 나서 내 능력으로 안 되겠다 싶을 때 비용을 들여서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들의 독학 사례를 보면서 마냥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스스로 기타를 배우면서 독학이란 학습방법의 무서움을 여실히 느끼곤 했다. 자기가 맞는지 틀렸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튜브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에겐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정기적인 무대가 있었고 그것들이 맞는지, 또는 이상한지 매번 점검해 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독학의 장점도 어마어마하다. 한번 학습해서 머리에 숙지하게 되면 절대 잊어버리는 일은 없다.
처음엔 기타로 시작했지만 이후 수년간은 나도 모르게 음악자체의 매력에 홀려버렸던 시기였다. 다양한 음악을 듣고, 연주도 해보고, 여러 가지 악기도 조금씩 공부해 보고, 음악이론도 배워봤다. 그러면서 음악적 취향이란 게 생겼고, 내 연주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틈틈이 음악과 관련된 일도 할 수 있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었고, 음악이나 악기를 가르치는 과외도 했었다. 역시 예체능의 수입은 생각보다 짭짤했다.
전공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전문적인 공부가 더 나은 연주의 길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이나 공부에 집착하진 않지만 나는 여전히 내 음악 수준을 향한 콤플렉스가 손가락 끝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거슬리는 존재로 느껴진다. 지금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채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 거대한 욕망덩어리는 해소해 봤자 새로운 욕망덩어리가 대체될게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