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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tton Salam Feb 07. 2023

05. 술... 좋아하세요? - 소주 02

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05

05. 술... 좋아하세요? - 소주 02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일이었다.

지금도 하루에 버스가 두 대밖에 다니지 않는 아주 깊은 산골의 외가댁에 갔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10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명절이 되어야만 집집마다 고향을 찾아온 가족들로 그나마 조금은 북적이는 동네였다. 사람이 좀 많이 모일 거 같다 싶으면 돼지를 잡아서 함께 나눠 갖기도 하고, 부속물 같은 부위는 즉석에서 삶아 술과 함께 먹고 마시곤 했다.


마을의 중앙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그 밑에는 평상이 놓여있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이미 막 잡은 돼지의 순대를 안주 삼아 한창 약주를 걸치고 계셨다.


쪼르르 다가가 넉살 좋은 사람 마냥 인사를 드리니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상투적인 질문들이 오가는 중에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는데 운 좋게 명절을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말씀드렸다.

"야, 그라모 니도 인쟈 성인이네?"

라며 술 한 잔 받으라고 쑥 내미신 어르신의 한 손에는 종이컵이, 다른 한 손에는 1.8리터짜리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금복주가 있었다.

종이컵을 받으니 어르신은 술로 컵의 빈 공간을 거침없이 채우셨다.

꼴 꼴 꼴 꼴 꼴...

금복주는 요즘 시중에 유통되는 17도짜리 순한 맛 소주 따위가 아니다. 도수로 치면 25도, 양은 일반 소주잔의 2배. 종이컵 속 찰랑찰랑한 소주처럼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어르신이 권하시는 술이니 없는 예의를 차리느라 한 번에 주욱 들이켰다. 그러자  

"마, 내 술도 한잔 받으래이!"

"아따, 술 잘 하는고마!"

그렇게 거의 연거푸 네댓 잔정도를 순식간에 마셨다. 아니, 마실 수밖에 없었다.

술이라고 해봤자 지금까지 기껏해야 또래들과 깨작깨작 마셨던 술이었지만 여기는 게임의 판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를 포함한 시골분들은 가끔 밭일을 하시고는 물대신 술을 드시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가능한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옆에는 이미 찌그러진 두 세병의 빈 페트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 분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얼마나 드신 걸까?, 나는 얼마나 더 마셔야 하는 걸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정신줄이 끊어질 조짐이 느껴졌다. 세상이 일그러지며 지구가 내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결국 한계를 넘어가기 바로 직전에 띄엄띄엄 남아있던 실낱같은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로 자리를 일어났다. 어르신들께 양해를 구하고 3분이면 갈 길을 30분을 넘겨서 도착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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