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tton Salam Feb 08. 2023

06. 죄송하지만 커피는 사양합니다 - 커피 01

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06

06. 죄송하지만 커피는 사양합니다 - 커피 01


대한민국은 커피에 진심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카페문화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내 기억엔 이미 자판기 커피를 비롯한 맥심커피 류의 인스턴트커피 문화가 먼저다. 커피를 좋아하는 한국인들, 거기에 카페문화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동네가 좀 힙하다 싶으면 한 블록에 2개 이상의 카페가 있는 풍경을 쉽게 발견한다. 후줄근한 골목어귀에도 카페는 마치 전봇대처럼 어김없이 들어서 있다. 대로변에는 거대한 유통사를 앞세운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즐비하다. 어딜 가나 커피와 카페천지인 대한민국, 곧 커피 공화국이 되려나 싶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카페인을 섭취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병원에서 들었다. 몸속에서 카페인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뿐만 아니라 카페인이 함유된 식음료는 대체로 피하는 편이다. 에너지 드링크는 말할 것도 없고, 피로회복제나 콜라도 즉각 반응이 온다. 홍차, 초콜릿도 예외 없다. 여기서 말하는 반응은 다들 짐작하는 수준의 반응이다. 예를 들면 심박수가 급등한다던가, 손발이 떨리며 안절부절못한다던가, 잠을 못 자는 정도다. 

'디카페인이 있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까지 커피의 맛을 탐닉하는 사람은 아니다.


타업체의 사무실이나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는 으레 예의상 차를 한 잔 내어준다. 개인적으로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는 점은 이럴 때 좀 성가시기도 하다.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귀찮고, 말없이 대접해 준 눈앞의 음료를 무시하기도 애매하다. 괜히 뭔가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인간처럼 보일까 봐 그냥 외면하는 게 상책이다. 특히 초면에는 더욱 그렇다.


요즘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먼저 물어봐줘서 좋다.

"마실 거는 무엇으로 드릴까요?"

이 정도 친절함에도 긴장감이 살살 녹는다.

"그냥 물 한잔 부탁드립니다."

나도 상대방이 귀찮지 않게 물 한잔으로 응수한다.


한편으로는 커피를 못 마시는 것은 나에겐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만약 나같이 호기심으로 중무장한 취미부자들이 커피에 까지 손을 뻗힌다면? 와인을 종류의 다양함 때문에 마시는 내가? 커피관련된 장비며, 책, 커피콩까지 닥치는 대로 체험해 보려고 난리를 쳤을 나를 상상해봤다. 아찔하고 끔찍하다. 이것은 형벌이 아니라 축복일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