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정문을 등지고 서서 바라보면 정면으로 내리막길이 있다. 그곳으로 곧장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에 커다란 H&M매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H&M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 건물은 원래 5층정도 크기의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바로 그 건물 1층엔 내 인생에서 처음 방문해 본 스타벅스가 있었다.
나에겐 홍대는 고향 같은 곳이다. 마포태생인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홍대가 자리 잡은 상수동에서 살았다. 홍대의 클럽문화의 흥망성쇠도 봤고, 그동안 사귀었던 사람들과 구석구석을 누비며 데이트도 많이 했다. 몇몇 맛집은 어디로 이사 가고 어떤 가게가 망했는지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첫 경험은 아마도 2003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완전히 탈바꿈을 한 그 건물을 보니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나의 추억을 없애는 일에 가장 적극적이고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2003년 가을쯤이었을 것이다. 요리를 배우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와 홍대에서 가볍게 술을 한 잔 했다. 그리고는 대뜸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그 뒤를 아무 생각 없이 졸졸 따라 들어간 곳이 바로 그 스타벅스다.
이곳은 뭐 하는 곳일까. 카페문화에 일자무식이었던 나는 메뉴판을 쓰윽 훑어봤다. 그리고는 주문을 받으려는 직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술은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친구 놈과 직원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친구 놈은 이미 성가신 벌레 보듯 위아래로 나를 흘겨봤다. 마치 코로나 확진자가 바로 옆에서 5 연속 재채기를 했을 때 지을 수 있는 표정 같았다.
주문을 받으려는 직원의 표정도 결은 다르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당황함과 황당함을 오가는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적당한 애드립이 떠오르지 않았을 때의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억지웃음으로 감춰보려 했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니 데이트 중 밥 먹는데 작은 돌멩이를 씹었을 때 나오는 그 표정.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의 내가 정말 순수했지만 동시에 너무 창피해서 저주스럽기도 하다.
이것이 나의 첫 스타벅스에 대한 기억이다. 창피함이 가득했던 기억. 좋을 리가 없다. 이후로도 스타벅스에서는 본의 아니게 발생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됨과 동시에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다. 그래서 나와 스타벅스의 관계는 마치 7월 7석 다음날의 견우와 직녀 사이처럼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스타벅스를 가는 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예를 들면 외부에서 업무차 소규모 미팅을 해야 하는 경우라던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외부에서 만날 곳을 정해야 할 때, 마지막으로는 선물 받은 기프티콘을 써야 할 때다.
서울의 번화가라면 어느 사거리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게 스타벅스다. 약속장소를 쉽게 정할 수 있어서 내 감정과는 달리 가끔씩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대한민국 카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는데 왜 미팅만큼은 스타벅스에서 하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