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환각의 강]
데이터에는 수명이 있다.
서버 로그, 90일. CCTV 영상, 30일. 블랙박스, 충격 후 72시간.
유통기한이 지난 진실은 가설이 되고, 가설은 의심이 되고, 의심은 잊힌다.
2041년 11월 5일. 유통기한 19개월 경과.
하지만 나는 유통기한을 믿지 않는다. 삭제된 파일에도 자기 패턴이 남고, 지워진 로그에도 흔적이 남는다. 완전한 삭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NSA, 미국 국가안보국이었던 전 직장이 물려준 유산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CORTEX가 증명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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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12분, 작업실이었다.
4시의 침묵은 다른 시간대의 침묵과 다르다. 냉장고 압축기의 진동까지 들리는 고요. 건물 전체가 숨을 멈춘 것 같은 밀도. 노트북 세 대의 화면이 방 안을 파란색으로 물들이며 벽 위에 나를 셋으로 나누어놓고 있었다.
왼손 안쪽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엄지 아래 두툼한 살 위에서 새끼손가락 쪽으로 비스듬히 뻗은 선. 유리가 남긴 것치고는 너무 깨끗한 선이었지만 당길 때면 피부 밑에서 무언가가 수축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경이 아니라 기억이 쑤시는 것이겠지만 그런 구분은 신체에는 무의미하다. 비가 내리는 밤은 아니었지만 이런 작업을 시작할 때면 조금의 오차도 없이 켕겼다.
노트북 세 대가 각각 블랙박스 복원, CORTEX 접근 로그, 통신 기록을 돌리고 있었다. 커피는 늘 블랙으로, 설탕 없이 마셨다. 내게 커피는 그저 각성을 위한 연료로, 혀가 아닌 혈관이 마시는 것이었다. 한 모금 마시자 쓴맛이 혈관보다 먼저 혀 위에 도착하며 빠르게 퍼졌다. 바그다드 외곽의 컨테이너에서 마시던 인스턴트 커피와 같은 맛이었다. 기지 남쪽 2킬로미터에서 교전이 있는 밤이면 소총 사격음이 모래바람에 실려 왔고, 간헐적으로 박격포의 둔탁한 착탄음이 컨테이너 강판을 울렸다. 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20분의 유예가 주어졌다. 카페인이 혈류에 닿기까지. 나는 주로 이 시간을 기다리는 쪽의 사람이다.
블랙박스 데이터를 열었다.
Tesla Model S 2040년형, 자율주행 레벨 4였고 사고 당시에는 수동 모드였다. 경찰 분석은 우천 중 과속에 의한 단독 사고, 탑승자 1명으로 종결되어 있었다. 사고조사관의 서명 날짜는 사고 발생 72시간 후. 블랙박스 원본 봉인까지 96시간. 보고서는 14페이지였고, 그중 11페이지가 표준 서식이었다. 나머지 3페이지가 분석이라면 분석이었다.
틀리지 않았다. 표준 분석 범위 안에서는. 하지만 표준 분석은 차량의 진단 포트에서 요약 로그만 뽑는다. 속도, 브레이크 압력, 에어백 전개 시점. 사고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사고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데이터였다. CAN 버스(Controller Area Network), 차량 내부의 모든 부품이 서로 대화하는 통신망이 있다. 이 통신망의 원시 트래픽을 밀리초 단위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물론 사고조사관의 업무 범위 밖이다. 수천만 개의 통신 기록을 시간순으로 정렬하고, 잡음을 걸러내고, 정상 패턴과의 차이를 추출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차량 보안을 뚫어본 적이 있는 사람뿐이다. 다행히 나는 여기에 포함된다.
먼저 정상 상태를 구축했다. 이 차량의 CAN 버스는 초당 약 2,000개의 메시지를 처리한다. 엔진, 차체, 화면, 통신 장치가 각각의 주파수 대역을 점유하며 쉬지 않고 대화하는 구조다. 사고 전 30분간의 통신에서 기준선을 뽑았다. 각 부품의 송신 주기, 메시지 길이, 오류 검증 패턴까지. 이 기준선 위에 사고 직전 60초를 겹쳤을 때, 19초 전부터 이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신 모듈이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대역에서 신호를 수신하고 있었다. 정비용으로 예약된 대역으로, 정상 주행 중에는 침묵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그 영역에서 파묘된 것은 외부에서 차량의 원격 접속 포트를 경유해 주입된 명령 시퀀스였다.
총 세 단계로 실행되었다.
첫 번째, 전동 조향 장치에 좌측 35도 명령 주입.
두 번째, 0.3초 후 주행 안정 장치 비활성화.
세 번째, 동시에 제동 시스템의 압력 해제.
세 명령이 0.8초 간격으로 순차 실행되었고, 각 명령 사이에 위조된 검증 코드가 삽입되어 차량의 보안 검증을 우회했다. 고속도로 101번에서 좌측 35도는 중앙 분리대 방향이다. 제동 없이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콘크리트 분리대에 충돌하면 운전석 쪽 반충 손상이 발생한다. 뇌가 두개골 안에서 충돌 반대 방향으로 튕기며 후두엽을 강타하는 것. 바로 시각피질이 위치한 곳이다.
이는 우연이 설계한 각도가 아니었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원시 데이터의 용량은 1.2기가바이트였고, 시간 오차를 보정하고 잡음을 걸러내는 작업만 첫째 날을 잡아먹었다. 둘째 날에 이상 신호를 분리했고, 셋째 날에 명령 시퀀스를 재구성했다. 세 번째 새벽, 화면에 세 개의 명령이 0.8초 간격으로 나란히 정렬되었을 때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예전 적국의 사이버 무기 서명을 처음 식별했을 때와 같은 종류의 소름.
해당 블랙박스를 다시 열게 된 것은 다른 경로에서였다. 2주 전, IRIS 통신 모듈의 정기 보안 점검이었다. IRIS와 외부 서버 간의 암호화 채널을 감사하던 중, 통신 초기 교섭 단계에서 비정상적 신호를 발견했다. 정상 트래픽에 숨겨진 이 서명을 추출하고 비교했을 때, 차량 통신망에 주입된 명령과 동일한 도구가 생성한 것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IRIS를 침투하려 한 도구와 달시의 차를 해킹한 도구가 같은 곳에서 왔다. 이 연결을 따라가니 블랙박스를 다시 열어야 했다.
원본은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의 증거 보관소에 봉인되어 있었다. 복사본 확보에 이틀이 걸렸다. 보안 컨설턴트 자격으로 차량 제조사 측 기술 재검토를 요청하는 형식이었고, Tesla의 협조 서한과 보험사의 추가 분석 동의서를 첨부했다. 서류상 문제는 없었지만 서류 뒤의 의도는 따로 적지 않았다. 적을 수 있는 서식란이 없었다. '목적'에 체크한 칸은 '제조사 품질 관리'였다.
진짜 목적을 적을 칸은 애초에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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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만이 아니었다.
의심은 괴사율에서 시작되었다. 시각피질의 60퍼센트. 반충 손상만으로는 이 수치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교통사고에 의한 후두엽 손상 사례 중 가장 심한 경우가 40퍼센트였다. 나머지 20퍼센트를 설명하는 것이 없었다. 작전에서 이중 보험을 두지 않는 팀은 없다. 물리적 손상만으로 목표 수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두 번째 경로가 있을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결국 혈액 샘플도 확인했다. 외상센터 프로토콜에 따라 사고 직후 동결 보관된 혈청이었다. 중증 외상 환자의 샘플은 소송 가능성 때문에 최소 3년간 보관된다. 달시의 샘플은 스탠퍼드 외상센터의 영하 80도 초저온 냉동고에 있었다. 보관 번호를 확인하는 데 반나절, 접근 권한을 확보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보험사 측 독립 검증 요청이라는 형식이었다. 샘플 0.5밀리리터를 분취한 후 나머지는 봉인 상태로 돌려놓았다.
표준 독성 검사는 음성이었다. 알코올, 수면제, 진통제, 각성제 등 병원이 돌리는 12종 패널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걸리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다. 만약 있다면 표준 패널의 설계 범위 밖의 물질일 것이다. 군사 등급의 분석 장비가 필요했다.
나는 군사 등급의 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안다. NSA 이후에도 유지되는 관계로, 서로의 약점을 알기에 인맥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엔 부적절한.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연락이 되는 종류의 인연. 포트 데트릭의 전직 화학자에게 샘플을 보냈고, 48시간 후 암호화된 파일이 돌아왔다.
재분석 결과, 합성 신경독소가 검출되었다. 뇌의 신경세포를 과흥분시키는 물질이었고,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도록 분자 구조가 변형되어 있었다. 합성해야 하고, 합성하려면 신경약리학과 화학 양쪽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정상적인 혈뇌장벽, 뇌를 보호하는 생체 방벽은 이 물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분자가 너무 크고 극성이 높아서 장벽의 틈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외상으로 혈뇌장벽이 파열된 부위에는 장벽이 없다. 혈류를 타고 집중적으로 침투한다. 침투한 뒤에는 신경세포를 과흥분시켜 스스로 죽게 만든다. 흥분독성이라고 부르는 메커니즘이다. 우아한 살인이었다. 세포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과잉으로 죽기 때문에 부검에서도 "외상에 의한 이차 손상"으로 분류된다. 의도적 투여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두 공격의 조합을 재구성했다. 차량 해킹으로 좌측 35도 충돌을 유발하면 반충 손상이 후두엽에 집중되고, 결국 후두엽의 혈뇌장벽이 파열된다. 그 시간 창 안에, 사고 전 투여된 화합물이 혈류를 타고 파열 부위에 몰린다. 물리적 손상이 문을 열고, 화학적 손상이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각피질 60퍼센트 괴사. 단독으로는 어느 쪽도 이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충돌만으로는 시각피질의 부분 손상에 그치고, 화합물만으로는 혈뇌장벽을 넘지 못한다. 두 공격이 정확한 순서로, 정확한 시간 간격 안에 실행되어야만 가능한 결과였다. 놀랍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조합이었다.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사고가 아니었다. 작전이었다.
목표는 사망이 아니었다. 사망이 목적이면 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충돌 각도를 5도만 키우면 된다. 화합물의 농도를 두 배로 올리면 된다. 하지만 뒤의 설계자는 그러지 않았다. 목적은 특정 부위의 정밀한 손상이었다. 시각피질. 달시 태드를 실명시키되 죽이지는 않는 것. 이것은 공격이 아니라 수술이었다. 메스 대신 고속도로와 분자를 쓴, 따분할 만큼 집요한 수술.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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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티마 란잔은 5월에 접근했다.
윤리팀 예산 삭감과 자문역 강등, 조직 내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이 잘리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내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잘린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조용히 퇴사하는 사람과 조용히 증거를 모으는 사람. 그녀가 어떤 부류일지 판단하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이메일 패턴, 출퇴근 시간, 사내 문서 접근 로그를 확인한 결과 강등 이후에도 임상 데이터베이스 접근 빈도가 줄지 않은 채 시간대만 바뀌어 있었다. 업무 시간에서 심야로.
그녀는 증거를 모으는 사람이었다.
접선은 CORTEX에서 3킬로 떨어진 공원 벤치에서 이루어졌다. 벤치 반경 50미터 내에 CCTV가 2대 있었지만, 둘 다 사각지대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고지였다. 오후의 햇빛이 벤치 위 떡갈나무 잎사귀를 통과하며 바닥에 흔들리는 그물을 만들고 있었고, 관목에서는 자스민 냄새가 올라왔다. 빛이 바람에 따라 밀리고 돌아오는 것을 한동안 보았다.
"당신이 노라 칼라일이군요." 목소리는 떨림 없이 차분했다. 각오한 사람의 차분함이었다.
"ARGOS를 알고 있습니까." 인사는 건너뛰었다.
"이름은 몰랐어요. 하지만 윤리 감사를 하면서 비정상적인 데이터 흐름을 발견했고, 추적했더니 공식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은 임상 기록이 나왔어요."
프라티마가 가져온 것은 시각 신호 주입 테스트의 임상 기록이었다. 공식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비밀 계약 하에 진행된 실험이었다. 피험자들의 BCI에 외부에서 시각 데이터를 주입하는 것이었고, 비밀유지계약(NDA) 아래 추적 관리가 중단되어 있었다.
"피험자 명단이 있습니까."
USB를 건네는 프라티마의 손이 떨리지 않았다. 이 여자는 두려움을 넘어선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내부 고발자의 전형. 예전에는 이런 사람을 식별하고 제거하는 쪽이었지만, 지금은 그 방법을 알기 때문에 보호하는 데 되레 능숙했다. 이력서의 같은 항목이 정반대의 용도로 쓰일 줄이야.
"... 이것을 주면 당신의 위치가 노출됩니다."
"어차피 더 밀려날 곳도 없어요."
USB를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프라티마가 일어서면서 시선이 내 손등에 걸렸다. 소매 밖으로 드러난 흉터에서 출발한 시선이 올라와 내 눈과 마주쳤지만 그녀는 놀란 표정을 숨기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왼손을 다시 대수롭지 않게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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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리를 추적하는 데 2주가 걸렸다.
명단에는 12명이 있었고, 그중 8명은 추적이 불가능했다. 비밀유지계약 위반 시 법적 제재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연락을 거부하거나 연락처를 바꾼 사람들이었다. 3명은 해외로 이주했고, 1명만 베이 에어리어에 남아 있었다. 마커스 리, 전직 CORTEX 계약직으로 2040년에 시각 신호 주입 테스트에 6개월간 참여한 사람이었다.
산호세 아파트 단지의 3층 복도는 좁았다. 한 사람이 지나갈 폭만 남겨둔 채, 페인트가 벗겨진 난간을 지나야 했고, 어딘가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위로는 텔레비전의 웅웅 거리는 저주파가 벽을 타고 번졌으며, 기름과 세제와 오래된 카펫이 뒤섞인 냄새가 복도에 고여 있었다. 환기구가 오래전에 포기한 건물에서만 나는, 공기가 늙어가는 냄새였다. 복도 끝의 형광등이 느린 간격으로 깜빡일 때마다 벽의 그림자가 숨을 쉬었다.
왼쪽 관자놀이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문을 열었다. BCI 이식 흔적이 켈로이드로 부풀어 분홍빛 조직이 동전 크기로 솟아 있었고 가장자리가 불규칙했다. 제거 수술을 받지 않은 채 방치한 흉터였다. 돈이 없었던 것인지, 그 흉터를 만든 곳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지.
"누구세요." 사내가 낯선 자를 경계하며 물었다.
"CORTEX 보안 컨설턴트입니다. 2040년 테스트에 대해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눈이 변했다. 공포도 분노도 아닌 체념이었다. 언젠가 이 대화가 따라올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의 표정이었고, 문을 닫으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 들어오세요."
아파트는 작았다. 거실과 침실을 겸하는 원룸으로,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칼날처럼 좁은 빛줄기가 바닥의 먼지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빛줄기 안에서 먼지가 회전하며 느리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사이 오래된 카펫과 전자레인지 음식의 잔향이 섞여 있었고 싱크대에는 컵 하나와 접시 하나만 놓여 있었다. 정확히 한 사람분만큼 존재하는 공간의 정제된 고독이 감돌았다. 커피를 권했지만 거절했다. 나는 하나뿐인 접이식 의자에 앉았고, 마커스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있었는데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이 보였다. 떨림을 숨기려는 시도, 아니, 숨길 힘조차 남지 않은 사람의 손이었다.
"6개월 참여했습니다." 목소리를 평탄하게 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초기에는 격자무늬, 색상 블록, 기본 도형 같은 것들이었어요. 나중에 장면이 됐습니다. 경험한 적 없는 풍경. 만난 적 없는 얼굴."
"지금은요?"
마커스의 시선이 블라인드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뭐가 진짜였는지 아직 모릅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테스트가 끝난 지 3년인데 아직도 본 적 없는 얼굴이 떠올라요. 잠들기 직전에. 가끔은 낮에도.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사람이에요. 내 기억인지 주입된 건지 구분이 안 됩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마커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추적 중입니다."
마커스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에 간 사람이 있어요. 김수진. 테스트 후 심한 편두통이 왔는데 CORTEX에서 후속 치료를 거부했어요. 자비로 치료하다 포기하고 이민 갔어요."
기억하고 있었다. 명단에 있었던 해외 이주자 3명 중 하나였다.
마커스의 관자놀이 흉터를 보았다. 계약서에는 '시각 신호 보정 테스트'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뇌에 시각 데이터를 주입하는 실험이었다. MIRAGE의 프로토타입, 사람의 뇌를 스크린으로 쓰는 기술의 시험판으로, 이 사람의 뇌에 허락 없이 이미지를 심은 것이다. 달시는 이 실험의 존재를 몰랐다. CORTEX 내부에서 프로젝트명과 예산 코드를 분리하면 같은 건물에서도 서로의 연구를 모를 수도 있지만... 데이비온이 이 구조를 설계했는지, 아니면 그 위의 누군가가 설계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제 뇌에 남아 있는 것들. 제거할 수 있습니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2초, 3초. 흉터가 당겼다. 내가 감히 대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보안이 아닌 신경과학의 질문이었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전 세계에서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달시에게 이 사람을 데려가면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린다. ARGOS의 전체 그림이 보이는 문. 그리고 자신의 잔류기억이 같은 메커니즘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문. 지금도 무너지고 있는 사람이 이 무게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커스의 뇌에 남아 있는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달시뿐이었다.
"확인하겠습니다." 마침내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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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작업실로 돌아왔다.
노트북 앞에 세 번째 블랙커피가 놓여 있었다.
마커스의 관자놀이 흉터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를 나설 때 1층 우편함 앞을 지나쳤다. 마커스의 호수 우편함에는 이름 대신 별 스티커만 붙여져 있었다. 이름을 떼어낸 접착제의 흔적만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 두려운 사람의 우편함이었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핸들을 잡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앞유리 너머로 페인트가 벗겨진 단지의 벽이 보였고, 3층 복도의 불빛이 켜져 있었으며,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직 들렸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차 안을 천천히 데우고 있었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핸들 위에서 손가락이 하얘질 때까지 쥐었다가 풀었다가 다시 쥐었고, 가죽이 손바닥 땀에 미끄러웠다. 7년 전의 좌표가 올라왔다.
2036년. 하늘이 버린 땅, 죽음마저 흔해 이목을 끌기 어려웠던 곳. 그곳을 떠올리면 모래와 열기와 화면 속 좌표가 구역질처럼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온다.
프로젝트 코드명은 기밀이다. 기밀로 분류하면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외각의 임시 기지에서 센서 네트워크가 민간인 지역의 통신을 수집했다. 에어컨이 고장 난 컨테이너 안에서 모니터 세 대를 보고 있었다. 외부 기온 섭씨 52도. 컨테이너 내부 43도. 등 뒤로 땀이 척추를 타고 허리까지 흘러내렸다. 키보드가 손가락 아래에서 끈적였다. 수집된 데이터의 용도를 알고 있었다. 표적 선정 알고리즘의 입력값이었다. 알고리즘이 판단하고, 드론이 실행하고, 보고서가 정리되었다. 죽은 사람들은 보고서에서 'combatant', 전투원이 되었다. 전투원이 아닌 사람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좌표를 확인했다. 위도, 경도, 소수점 여섯 자리까지 정확한 숫자에는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다음 날 뉴스에 그 좌표의 이름이 나왔다. 마을 이름이었고, 화면에 항공사진이 떴다. 전날까지 건물이었던 것이 잔해였고 잔해 옆에 무언가가 늘어서 있었다. 해상도가 낮아서 형태가 불분명했고, 그때는 흐리고 불분명한 것에 안도했다. 7년이 지나면서 해상도가 올라갔다. 잠들기 전에 올라갔고, 꿈에서는 이름 모를 얼굴들이 보였다. 뉴스를 끄자 화면이 꺼진 모니터에 내 얼굴이 비쳤고, 검은 화면 위에 겹친 낯선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결과는 사람이 죽은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다쳤다'라고 썼다. 숫자를 알고 있었지만 적지 않는다. 숫자를 적으면 통계가 되고, 통계가 되면 처리되고, 처리되면 잊힌다. 이 사람들은 숫자가 되기 전에 이름이 있었다. 이름을 숫자로 바꾼 시스템의 입력값을 넣은 손이 내 손이었다. 7년간 이 한 단어의 거리 안에 숨어 살았다.
흉터는 그곳에서 돌아온 해에 생겼다. 사무실에서 주먹으로 창문을 깼고, 유리가 깨지는 순간의 진동이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통증이 오기 전 찰나의 고요가 있었다. 좌표도 마을 이름도 없는 고요. 그다음에 뜨거운 것이 손을 타고 흘렀다. 동료에게는 "사고"라고 말했지만 사고가 아니었다. 유리의 날카로움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피가 손목까지 흘러내리는 동안 위도도 경도도 소수점도 잠깐 사라졌다. 흉터가 아물고도 비가 오면 당긴다. 지금도.
마커스의 관자놀이 흉터가 7년 전의 사람들과 겹쳤다.
이번에는 방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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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시의 잔류기억 현상도 추적 중이었다.
보안 점검에서 IRIS 뇌 활동 로그를 확인했다. 주간 요약이 아니라 원시 기록이었다. 밀리초 단위의 시각피질 활성 데이터를 6개월치 내려받아 시계열로 정렬했다. 잔류기억 전체가 아니라 보안 관점에서 의미 있는 신호만 걸러냈다. 외부 입력 없이 뇌가 자체적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활성 중, 구조화된 패턴을 가진 것만 추출한 것으로, 그 빈도가 1월에 월 3회였던 것이 5월에는 월 17회가 되어 있었고, 증가 곡선이 선형이 아니라 지수적이었다. 달시가 체감하는 잔류기억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은 그중에서 의도적 설계의 흔적이 있는 것들만이었다. 프로젝트에는 보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달시가 숨기고 있었기에.
이유는 이해한다. 보고하면 IRIS가 중단된다. 하지만 보안의 관점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17회 모두 구조화된 신호였지만, 출처가 같지는 않았다. 12건은 IRIS 서버의 캐시 데이터와 타임스탬프가 일치했다. 장치가 과거에 처리한 시각 정보가 뇌의 자체 생성 회로를 타고 재생된 것으로, 구조는 있지만 IRIS 내부에서 설명이 되는 신호였다. 문제는 나머지 5건이었다. 서버 로그에 대응하는 입력 기록이 없었다. IRIS가 수신한 적 없는 이미지를 시각피질이 생성하고 있었다. IRIS 내부의 잔향이 아니라면 어디서 온 것인가. 뇌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면 파형에 잡음이 있어야 한다. 5건을 겹쳐보았다. 잡음이 없었다. 주파수 대역, 진폭 변조, 위상 정렬이 일관된 설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패턴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만든 신호였다.
IRIS가 잔류기억을 수신할 수 있다면 외부에서 데이터 주입도 가능하다. 마커스의 BCI에 시각 데이터를 주입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MIRAGE의 프로토타입을 마커스에게 시험하고, 실전을 달시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달시의 뇌가 전장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는 유령들 중 일부가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것이라면, 이것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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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 역추적이 왔다.
작업실에 돌아왔을 때 문의 테이프가 끊겨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을 경첩 위에 붙여두는 것, 아날로그 침입 탐지다. 디지털보다 우회가 어렵다. 누군가 들어왔다 나갔다.
문손잡이를 잡지 않고 먼저 냄새를 맡았다. 작업실에는 커피와 먼지와 내 체취만 있어야 한다. 문 틈으로 올라온 공기에서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사람이 머문 공간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체온이 가구에 스며들고, 옷에서 떨어진 미세한 섬유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이 깨끗함은 훈련된 치밀함이었다. 외투 안쪽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낸 뒤 조심스럽게 문을 팔꿈치로 열었다. 실내를 확인하는 데 7분이 걸렸다. 노트북은 세 대 모두 그대로였고, 하드디스크 암호화 상태에도 이상이 없었으며, 물리적 도청 장치도 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이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였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메시지. 총을 내려놓았을 때 손잡이에 내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었다. 땀이었다.
다음 날, 예전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노라. 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그만둬." 날카로운 한 문장 뒤로 전화가 끊겼다. 친구라는 단어를 이 사람이 쓴 적은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전화를 한 것은 아내의 장례식 날이었고, 그때도 30초를 넘기지 않았다. 친구라는 포장을 씌운 부드러운 협박이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이 사람의 입을 빌려 보낸 것이었다.
작업실을 버렸다. 하루 만에 새 거점으로 이동했고, 자료를 암호화된 외장 드라이브 세 개에 분산했다. 한 개는 몸에 지녔고, 한 개는 은행 금고에, 나머지 한 개는 마르코에게 맡겼다. 마르코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내 팀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었다.
달시에게 약속한 일주일이 되었지만 가지 않았다. 접촉하면 내 경로가 노출되고, 달시의 연구실에 내 동선이 찍히면 그가 위험해진다. 짧은 메시지만 보냈다. "당분간 접촉을 자제합니다. 안전한 경로가 확보되면 연락하겠습니다." 전송 완료. 그 네 글자를 오래 보았다. 화면의 푸른빛이 어두운 방 안에서 손등 위의 핏줄을 비추고 있었다. 달시의 뇌 활동 로그가 떠올랐다. 보안 점검에서 비정상적 활성 패턴이 매달 증가하고 있었고 달시는 이것을 팀에 보고하지 않은 채 혼자 안고 있었다.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 과학자이기에 자기 뇌가 무너지는 것을 데이터로 보면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로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경험했듯이. 화면을 껐다. 방이 어두워지자 핏줄이 사라졌다.
새 거점과 새 VPN, 새 통신 경로를 구축하는 데 2주가 걸렸다. 이전 직장의 인맥 중 아직 살아 있는 줄을 하나 더 당겼고, 안전한 경로가 확보되었을 때는 어느덧 6월이 되어 있었다.
권총을 꺼내 새 책상 위에 놓았다. 이번에는 장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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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마침내 전달할 시간이 왔다.
CORTEX 본사는 유리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실리콘밸리의 건축 양식이 내세우는 투명성, 개방성, 혁신. 유리벽은 레이저 도청으로 진동을 읽을 수 있고, 개방형 사무실의 모든 화면은 30미터 밖에서 촬영 가능하며, 배지 시스템은 6개월 전 펌웨어로 돌아가고 있었다. "눈"을 만드는 회사가 자기 건물의 눈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술자들은 자기가 만든 것이 세계 최고라고 믿으면서, 자기를 지키는 보안에는 무관심하다. 이것도 오만의 한 형태다.
주차장을 선택했다. 건물 내부에서는 통신이 모니터링될 가능성이 있었다. CORTEX 서버에 대한 외부 접근 흔적을 발견한 이후, 건물 내부의 전자 통신은 신뢰할 수 없었다.
달시가 왔다. 구두 뒤꿈치가 아스팔트를 치는 소리가 이전보다 느렸다. 2주 만에 본 달시의 상태가 달라져 있었다. 어깨가 앞으로 굽어 있었고, 턱 아래의 그림자가 깊어져 있었으며, 걸음 사이의 간격이 불규칙했다.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보안 전문가의 관찰이 아니라 눈만 있으면 보이는 것이었다. 아르티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르티스 세이, 38년간 시각 없이 세계를 탐색해 온 사람. 보안의 관점에서 이 여자는 흥미로운 존재였다. IRIS도, BCI도, 무선 통신 모듈도 없었다. 해킹할 인터페이스가 없는 사람이었다. MIRAGE가 이 여자에게는 작동하지 않는다. 눈이 없는 사람의 현실을 조작하려면 소리와 촉감과 냄새를 위조해야 하는데,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이다. 해킹할 수 없는 인간. 이 건물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 가장 취약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소리로 읽고, 나는 행동으로 읽는다. 걸음의 속도, 시선의 방향, 손의 위치가 2주 전보다 전부 달라져 있었다.
"밖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달시의 턱이 긴장하는 것이 보였고, IRIS가 나를 스캔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심박, 체온, 미세 표정까지. 이 사람은 나를 데이터로 읽고 있었고, 나는 패턴으로 읽고 있었다. 다른 언어였지만 같은 행위였다.
오크나무 아래로 걸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구두 밑창을 통해 발바닥까지 전해졌다. 주차된 차들의 그림자가 짧았고, 정오에 가까운 태양이 오크나무 잎사귀 사이로 작은 빛의 동전들을 바닥에 흩뿌리고 있었다. 6월의 햇빛이 강했지만 태평양에서 올라온 안개의 잔해가 바람에 실려 피부 위의 열기를 걷어가고 있었다. 태블릿을 꺼냈다.
"2041년 11월 5일. 당신의 사고."
호흡이 정지했다. 짧았고, 회복이 빨랐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봉투를 받았으니까.
기술적 증거를 설명했다. 천천히, 순서대로. 차량 통신망의 이상 신호부터 시작해서 세 단계 명령 시퀀스, 원격 접속 경로, 위조된 검증 코드까지. 그리고 혈액. 합성 신경독소, 신경세포의 과흥분, 혈뇌장벽 파열 부위로의 선택적 침투. 달시의 표정이 단계마다 바뀌었다. 차량 해킹에서는 기술자의 얼굴이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얼굴. 혈액 분석에서 얼굴이 달라졌다.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난 일을 듣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달시의 몸이 변했다. 어깨가 올라갔다. 이전의 달시였다면 내려가며 방어 자세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잔류기억 이후의 달시는 충격을 받을 때 오히려 몸이 열렸다. 위로 올라가고, 뒤로 기울고, 손이 풀리는 방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 몸이었다.
손이 안정적이었다. 보통 사람은 이런 뉴스를 듣고 손이 떨린다. 달시는 반대였다. 충격이 클수록 손이 고요해졌다. 고개가 미세하게 기울었다. IRIS가 있으니까 눈을 감을 필요가 없는데도 소리가 아닌 냄새 쪽으로. 실명 중에 배운 습관이 시력을 되찾은 뒤에도 남아 있었다. 이 사람의 몸에는 두 개의 시간이 겹쳐 있었다. 보는 시간과 보지 못하던 시간. 무언가를 떠올린 얼굴이었다. 분노가 아니었다
"누가 했어?"
"아직 확인 중입니다. 해킹의 기술적 서명이 군사 등급입니다."
"군."
"또는 군에 준하는 기술력을 가진 조직."
"데이비온이 이것을 알고 있어?"
"모릅니다.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왜?"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가해자가 내부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달시의 몸 전체가 순간 경직되었다. 시선만 움직이고 있었다. 어딘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찾는 눈이었다. 데이비온. 달시가 그 이름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22년. 공동 창업자. 자기 눈을 만들어준 사람. 가해자가 내부에 있다는 말이 그 사람의 얼굴 위에 내려앉는 과정을 나는 바깥에서 보고 있었다. 몸이 풀렸을 때, 달시의 눈은 아무것도 없는 곳을 보고 있었다. IRIS가 주차장 너머를 스캔하는 것인지 내면을 보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 조사를 계속해줘."
"계속하겠습니다."
잔류기억에 대해 물어야 했다. 보안의 영역이었다.
"한 가지 더. 보고하지 않은 IRIS의 부작용. 잔류기억 현상."
굳었다. 이번에는 열리지 않았다. 닫히는 쪽이었다. 왼손 검지가 엄지손톱을 긁기 시작했다. 달시의 버릇이 있었다. 불안할 때 이 동작이 나오고, 3초 안에 주제를 바꾸거나 반격한다. 22년을 함께한 데이비온도 이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IRIS가 잡지 못하는 종류의 데이터다.
"어떻게 —"
"보안 점검에서 뇌 활동 로그를 확인했습니다. 비정상적 활성 패턴이 증가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문제야."
"개인적인 문제가 프로젝트와 회사에 영향을 줄 때 보안의 영역이 됩니다."
달시가 나를 보았다. 시선에 무게가 있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었다. IRIS가 내 생체 신호를 읽고 있을 것이다. 심박, 체온, 미세 표정까지. 나는 읽히지 않는 훈련을 받았다. 심박을 하강시키고, 호흡을 조절하고, 동공을 간접적으로 통제했다. 달시의 기계가 나를 읽으려 했고, 나는 읽히지 않으려 했다. 읽히는 쪽보다 읽히지 않는 쪽이 항상 유리하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하나를 통제하지 못했다. 무릎 위의 손이 떨렸다. 왜 하필 이 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커스의 관자놀이 흉터가 떠올랐고, 그 위에 7년 전의 좌표가 겹쳐졌다. 허락 없이 뇌에 이미지를 심은 것과, 동의 없이 좌표를 입력한 것. 떨림은 금방 멈췄지만 IRIS는 이미 잡았을 것이다.
"노라, 왜 이 일을 해?"
"과거에 비슷한 기술이 나쁜 방향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관여한 프로젝트에서."
"전에도 그 말했잖아."
"네. 그때는 방관했습니다. 보안 컨설턴트로서 의뢰인의 지시만 따랐어요.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죽었다. 이 단어를 입 밖에 낸 것은 처음이었다. 7년간 '다쳤다'에 몸을 숨겨왔다. '다쳤다'에 숨으면 '죽었다'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이번에는 방관하지 않으려고요."
달시가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IRIS 데이터로 심박, 동공, 미세 표정을 읽으면서 진실의 증거가 되는지 아닌지를 따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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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를 데려왔다. 전화 한 통으로 "오세요"라고 했다.
주차장 입구에서 걸어왔다. 걸음이 조심스러웠고, 주변을 두 번 확인했다.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몸에 밴 것이었다. 누가 자기 뇌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달시가 먼저 물었다. "누구야?"
"마커스 리. 전직 CORTEX 계약직. 2040년 시각 신호 주입 테스트 참여자입니다."
"시각 신호 주입?" 달시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반음 올라갔다. "우리 회사에서? 내가 모르는 임상을?"
대답하지 않았다. 마커스가 대신 대답할 것이었다.
마커스가 달시를 보았다. 달시의 눈이 아닌, 눈 위의 어딘가를. IRIS 하드웨어가 있는 위치였다. 같은 종류의 장치가 자기 관자놀이에 흉터를 남긴 사람의 시선이었다. 달시도 마커스의 흉터를 보고 있었다. 켈로이드로 부풀어 오른 분홍빛 조직. 달시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신경공학자의 눈으로 읽고 있을 것이다. 이식 위치, 제거 흔적의 부재, 방치된 기간까지.
증언이 이어졌다. 마커스가 말하고, 달시가 들었다. 격자무늬에서 시작해 장면이 된 것. 경험한 적 없는 풍경. 만난 적 없는 얼굴. 3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 마커스가 말할 때 달시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자기
회사가 한 일을 듣고 있는 사람의 어깨였다.
"이걸 승인한 사람이 누구야?" 달시가 내게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확인 중입니다."
"나는... 몰랐어." 달시가 마커스에게 말했다. 변명이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마커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몰랐다는 말이 위안이 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몰랐다는 것은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건물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 것도 일종의 책임이다. 달시도 그것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출처불명 신호가 있었어." 달시가 말했다. 목소리를 추스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잔류기억 중 5건이 서버 데이터로 추적되지 않았어."
태블릿을 꺼내 두 개의 파형을 나란히 표시했다. 왼쪽은 마커스 BCI에 주입된 테스트 신호, 오른쪽은 달시 IRIS에서 검출된 출처불명 5건이었다.
파형 일치율 91%.
달시의 호흡이 정지했다. 이번에는 길었다. 자기 뇌에서 검출된 신호와 마커스의 뇌에 주입된 신호가 같은 도구에서 왔다는 뜻을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숨을 내쉴 때 진동이 있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찾았어?"
"프라티마 란잔입니다. 내부에서 임상 자료를 수집해 왔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마커스가 달시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제 뇌에 남아 있는 것들. 제거할 수 있습니까?"
달시 태드가 기술적 질문에 침묵한 것은 처음이었다. 5초. 10초.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게가 입을 막고 있었다. 이 사람의 뇌에 이미지를 심은 기술은 달시가 만든 기술의 전 단계였다. IRIS의 조상이 이 사람을 망가뜨린 것이다. 달시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까 충격이 클수록 고요해지던 손이 지금은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충격이 아니었다. 죄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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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작업실이었다.
네 번째 커피가 놓여 있었지만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파형 일치율 91%가 화면에 떠 있었다. 사고 해킹의 서명, IRIS 통신 모듈의 서명, 마커스 BCI 주입 서명이 모두 동일한 도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군사 등급이었다.
데이비온 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처음부터 설계한 사람이거나, 설계된 줄 모르고 이용당한 사람이거나. 증거로는 구분할 수 없었다. 20년의 우정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우정은 데이터가 아니다. 그리고 예전 직장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잊고 싶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효과적인 은폐물이라는 것이다.
노트북을 닫아 화면이 꺼지자 방이 어두워졌다. 창밖에서 첫 번째 새의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어둠이 남색에서 회색으로 변하는 시간. 노트북 세 대의 대기 표시등만 천장에 작은 점 세 개를 찍고 있었다.
달시에게 결과를 전달했고, 마커스를 연결했고, 프라티마를 보호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보안 컨설턴트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업무 범위. 7년 전에도 범위라는 것이 있었다. 그 안에서 일했고, 밖은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았다. 보안 컨설턴트에게 범위 밖이란 그런 곳이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서류에는 찍히지 않았고, 찍히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이번에는 범위를 넘었다. 넘는 순간 발밑이 달라졌다. 계약서가 깔려 있던 바닥이 사라지고, 매 순간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바닥이 나타났다. 미끄럽고, 경계가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바닥이었다. 방관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 서는 자리는 언제나 이런 곳이다.
커피가 식어 표면에 막이 생겨 있었다. 잔을 비우지 않은 채 일어섰다. 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다. ARGOS 문서의 전체 구조를 정리해야 했다. 1단계 Sentinel, 2단계 MIRAGE, 3단계 ARGOS. 눈을 감고 세 단계를 머릿속에서 다시 펼쳤다.
Sentinel은 감시다. BCI 사용자의 시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체계. CORTEX의 공식 문서에는 "사용자 경험 최적화를 위한 시각 피드백 수집"이라고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눈이 보는 것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다면, 위성도 CCTV도 필요 없어진다. 사람의 눈이 카메라가 된다. NSA의 PRISM이 통신을 수집했다면, Sentinel은 시각을 수집한다. PRISM은 사람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알려준다. Sentinel은 사람이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려준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한 감시인지는 자명하다.
MIRAGE는 주입이다. 읽는 것의 반대 방향. 사람의 시각피질에 데이터를 쓸 수 있다면, 없는 것을 보게 만들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증거를 목격한 기억. 발생하지 않은 사건의 목격자. 법정에서 위증이 아닌 진술로 채택될 기억. 목격자를 매수할 필요가 없다. 기억을 심으면 된다. 마커스의 뇌에 남은 "만난 적 없는 얼굴"이 그 시작이었다.
ARGOS는 Sentinel과 MIRAGE의 결합이다. 읽고, 쓰는 것. 무엇을 보는지 감시하면서, 무엇을 보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 현실이 편집 가능해지는 것이다. 좌표 하나로 마을을 지웠다. ARGOS가 완성되면 좌표가 필요 없다. 사람들의 눈에서 마을을 지우면 된다. 폭격의 증거를 본 사람의 기억에서 폭격을 삭제하면 된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본 눈에 건물이 서 있는 이미지를 덮어쓰면 된다. 역사가 기록이 아니라 편집이 되는 세계.
창밖에서 새벽의 첫 바람이 유리를 울렸다.
이 기술을 처음 만든 사람은 과학자일 것이다. 허나, 사용하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닐 것이다. NSA에서 10년을 일하며 하나를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기술은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든 사람이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상상하지 못한 규모로 쓰인다. 항상.
왼손 안쪽의 흉터가 당겼다. 비가 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기는 이유를 흉터는 설명하지 않는다. 오른손으로 흉터 위를 눌렀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누르면 당김이 멈추지는 않지만 위치가 확인된다. 여기. 내 몸에 새겨진 유일한 좌표. 위도도 경도도 없이, 그때의 유리 파편만으로 찍힌 좌표.
보이는 것과 있는 것. 달시의 잔류기억이 보이는 것이라면, 내가 추적하는 것은 있는 것이다. 해킹 로그. 신경독소. 피험자의 흉터. 보이지 않지만 있다. 있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있다. 손에 쥔 것들의 무게가 손바닥 위에 고여 있었다. 데이터의 무게가 아니었다. 마커스의 떨리던 손가락, 프라티마의 흔들리지 않던 손, 달시의 내려간 어깨. 사람의 무게였다.
데이터에는 수명이 있다. 진실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창 너머로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수평선 쪽에서 번지는 회색빛이 어둠의 가장자리를 한 겹씩 벗기고 있었다. 아직 빛은 아니었다. 빛이 오기 직전의, 세상이 숨을 들이쉬는 시간이었다.
새벽이 올 때까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어쩌면 7년 만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