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3 정점

[1부. 빛의 제국]

by 새보음

Ch.3 정점



꼭대기에서는 바람이 분다.


비유가 아니다. Moscone Center의 백스테이지에는 환기 시스템의 바람이 항상 불었다. 이천 명의 체온과 호흡이 만들어내는 열을 관리하기 위해 공조기가 풀가동되고 있었고, 그 바람은 무대 뒤의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일정한 소리를 냈다. 저주파의 윙윙거림. 나는 이 소리를 좋아했다. 이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소리로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으니까.


2041년 11월 3일. 사고가 나기 이틀 전이었다. 이틀. 그때의 내가 이 숫자를 알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마 아무것도. 나는 미래를 아는 것이 현재를 바꾼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데이터가 있으면 대응하면 되니까. 감상에 빠질 이유가 없다.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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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전입니다, 닥터 태드."


스태프가 말했다. 나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네이비색 수트, 타이 없이, 셔츠 첫 번째 단추를 풀어놓은. 데이비온이 골라준 스타일이었다. "과학자의 진지함에 실리콘밸리의 캐주얼함을 섞어야 해. 넌 TED 스피커가 아니라 비전을 가진 설립자여야 하니까." 나는 옷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었다. 데이비온에게 맡겼다. 그가 선택한 스타일이 투자자와 미디어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데이비온이 가지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 서른여섯.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머니의 광대뼈.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기 전에 떠난 사람이다. 어머니가 전부였으니까.


거울에서 눈을 떼었다. 자기 얼굴을 오래 보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위험한 일이었다. 누구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2분 전."


태블릿에서 오늘의 발표 자료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메모리 브릿지 3차 임상 결과. 300명의 알츠하이머 환자 코호트에서 기억 복원 성공률 73퍼센트. 기억 유지 기간 평균 47일. 이전 2차 임상의 38퍼센트, 22일에서 비약적 향상. FDA 패스트트랙 지정. CORTEX의 기업가치를 50억 달러로 끌어올릴 숫자들.


하지만 오늘 발표의 하이라이트는 숫자가 아니었다. 데이비온이 준비한 것이 따로 있었다.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메모리 브릿지를 시연하는 것. 피험자는 일흔다섯 살의 전직 피아니스트, 해롤드 윌슨. 알츠하이머 3기. 진단 전에는 쇼팽의 발라드를 외워서 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악보를 읽지 못한다. 피아노 앞에 앉아도 건반이 무엇인지 모른다.


오늘 무대에서 메모리 브릿지를 가동하고 해롤드가 쇼팽을 치는 것.


데이비온의 아이디어였다. 나는 처음에 반대했다. 임상 시연을 쇼처럼 만드는 것은 과학적 엄밀성을 훼손한다고. 데이비온이 말했다. "엄밀성으로는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의회를 움직이려면 숫자가 아니라 눈물이 필요해."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데이비온의 논리가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 사실 옳았다 - 이 시연이 성공하면 IRIS 프로젝트에 대한 사내 지지가 높아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동의는 과학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계산도 과학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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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앞, 객석의 불이 꺼져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이천 석의 객석 곳곳에서 작은 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BCI 인터페이스의 상태 표시등. 청각 증강 BCI 사용자의 귀 뒤에서 연한 파란빛이, 촉각 BCI 사용자의 손목에서 초록빛이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이천 명 중 BCI 비사용자가 몇 명이나 될까. 이 행사의 VIP 티켓이 2,500달러였다. 그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미 하나 이상의 감각 증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무대 위의 나만 빼고.


앞줄에는 투자자들이 앉아 있었다. Sequoia의 파트너, Andreessen Horowitz의 제너럴 파트너, 그리고 데이비온이 특별히 배치한 상원 보건위원회의 보좌관 두 명. 보험 적용 법안을 밀어줄 사람들. 그 옆에 FDA 관계자가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데이비온이 관리하는 영역이었다.


뒤쪽에는 미디어. Wired, MIT Technology Review, Nature, The New York Times 과학 섹션. 라이브 스트리밍이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전 세계에서 43만 명이 시청 중이라는 수치가 태블릿에 떴다.


43만 명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숫자가 주는 것. 두려움이었을까, 쾌감이었을까. 솔직하게. 쾌감이었다. 그리고 쾌감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약간의 경멸. 그리고 그 경멸마저 즐기는 자기인식. 겹겹이 쌓인 자의식의 탑. 나는 그 탑의 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꼭대기.



무대 중앙의 조명이 켜졌다. 나는 걸어 나갔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분 뒤에, 이 무대 위에서 한 남자가 쇼팽을 치게 됩니다."


첫 문장. 이천 명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 정적을 0.5초 동안 맛보았다.


"해롤드 윌슨. 일흔다섯 세. 전직 피아니스트. 알츠하이머 3기. 지금의 해롤드는 피아노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건반이 88개라는 것도,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의 차이도, 자기 손가락이 한때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도. 하지만."


여기서 멈추었다. 아르티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극적인 침묵을 잘 활용하는 발표자였다. 다만 아르티스의 침묵과 나의 침묵은 다른 것이었다. 그녀의 침묵은 청중에게 공간을 주는 것이었고, 나의 침묵은 청중의 기대를 끌어올리는 도구였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스크린에 해롤드의 뇌 스캔 이미지가 떠올랐다. 색으로 구분된 영역들. 마거릿의 것과 유사하지만 더 복잡한 음악 기억은 일반 에피소드 기억보다 뇌의 더 많은 영역에 분산되어 있었다. 운동피질, 청각피질, 전두엽, 소뇌.


"사라지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문장은,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만든 문장이 아니었다. CORTEX의 PR 팀에서 초안을 쓰고 데이비온이 다듬은 것이었다. 나는 과학적으로 정확한가만 확인했다. 정확했다. 그리고 효과적이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명제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족에게 희망이 되었고, 투자자에게는 시장성이 되었고, 미디어에게는 헤드라인이 되었다.


하나의 문장이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 데이비온은 이것을 "메시지의 효율성"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다. 과학도 커뮤니케이션이니까. 연구실에서 아무리 혁명적인 것을 만들어도 세상에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이 논리의 유효 범위를 나는 검증하지 않았다. 유효하다고 가정하면 편했으니까.


발표가 이어졌다. 300명 코호트 데이터. 73퍼센트 성공률의 통계적 유의성. 연령별, 병기별, 기억 유형별 서브그룹 분석. 슬라이드가 바뀔 때마다 객석에서 작은 반응이 있었다 - 투자자들의 반응은 숫자에서 왔고, 미디어의 반응은 스토리에서 왔고, 의회 보좌관의 반응은 정치적 함의에서 왔다. 나는 이 모든 반응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었다. 발표의 톤을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이것이 나였다. 이천 명 앞에서 과학을 말하면서 동시에 이천 명의 반응을 관리하는 사람. 데이터와 쇼맨십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 그 경계가 내 영토였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직접 보시게 됩니다."


무대 왼쪽에서 해롤드가 걸어 나왔다. 간호사가 팔을 잡고 있었다. 해롤드는 키가 크고 마른 노인이었다. 한때 사진으로 보았다. 턱시도를 입고 카네기홀에서 연주했던 남자. 지금은 무대 위의 조명에 눈을 찡그리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피아노가 무대 중앙에 있었다. 스타인웨이 D-274. 콘서트 그랜드. 해롤드가 그 앞에 앉았다. 건반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기술진에게 신호를 보냈다.


"해롤드, 저는 닥터 태드입니다. 지금부터 헤드셋을 씌워드릴 겁니다. 조금 눌리는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아프지는 않습니다."


해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기술진이 메모리 브릿지 헤드셋을 씌웠다. 모니터에 해롤드의 뇌 활성 맵이 실시간으로 투사되었다. 대형 스크린에도 동시에 표시. 이천 명이 보고 있었다.


"가동합니다."


오존 냄새가 이 넓은 무대에서는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희미하게 났다. 혹은 내가 아는 냄새를 뇌가 자동으로 불러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니터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운동피질에서 먼저. 노란 점이 커지기 시작했다. 근육 기억. 손가락이 건반을 누르는 동작의 기억. 이어서 청각피질. 소리의 기억. 그다음 전두엽. 악보의 구조, 프레이징, 해석의 기억.


해롤드의 손이 움직였다.


왼손이 먼저. 건반 위에 올라갔다. 떨리고 있었다. 오른손이 따라왔다. 두 손이 건반 위에 놓인 채 3초. 5초. 객석이 숨을 멈추었다.


해롤드의 왼손이 건반을 눌렀다.


G단조.


쇼팽 발라드 1번의 첫 음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했다. 모니터의 데이터를 확인했다. 활성화 패턴이 예측 모델과 91퍼센트 일치. 해롤드의 운동피질이 30년 전의 근육 기억을 재생하고 있었다. 손가락의 위치, 압력, 타이밍. 몸이 기억하는 것. 뇌가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 이것이 메모리 브릿지의 핵심 발견 중 하나였다.


음악이 계속되었다. 해롤드의 연주는 완벽하지 않았다. 중간에 멈칫하는 부분이 있었고, 손가락이 엇나가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고 이것이 이천 명이 숨을 멈춘 이유였다. 그 불완전함 자체가 증거였다. 기계가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억해내고 있다는 증거. 완벽한 재생은 기계가 한다. 떨리면서도 계속하는 것은 인간이 한다.


나는 이것을 알았다. 지적으로. 그리고 이 지적 이해를 발표에 활용하는 것도 알았다. 불완전함이 진정성의 증거라는 서사를 미디어가 좋아할 것이라는 것도. 이 장면이 뉴스 오프닝에 쓰일 것이라는 것도.


해롤드가 치고 있었다. 쇼팽이 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이천 명 중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앞줄에서. 해롤드의 딸이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감동. 이라고 대답해도 되는 건가. 나는 확실히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가슴 어딘가에서 조이는 것. 하지만 그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객석의 반응을 스캔하고, 모니터의 데이터를 읽고, 이 시연이 CORTEX에 가져올 가치를 계산하고 있었다. 감동과 계산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곡이 끝났다. 해롤드의 손이 건반 위에서 멈추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의 침묵. 그리고 박수가 터졌다. 이천 명이 일어섰다. 스탠딩 오베이션.


해롤드는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객석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딸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아버지를 안았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졌다. 완벽한 장면이었다.



완벽.



나는 무대 가장자리에 서서 그 장면을 보았다. 아버지를 안고 우는 딸. 기억을 되찾은 늙은 피아니스트. 이천 명의 박수. 43만 명의 시청자. 내가 만든 기술이 만든 순간.


이것이 정점이었다.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꼭대기에서의 바람이 불었다. 공조기의 바람이 아니라 이천 명의 박수가 만들어내는 공기의 파동이었다. 그것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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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


시연이 끝나고 15분 뒤. 나는 백스테이지의 대기실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발표 후의 탈진. 익숙한 감각이었다.


MIT 시절이 떠올랐다. 기숙사 라운지에서 데이비온과 밤새 화이트보드를 채우던 시간. 내가 수식을 쓰면 데이비온이 그 옆에 사업 모델을 그렸다. 새벽 4시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데이비온이 말했다. "이거 되면 세상이 바뀌어." 나는 "이거 되면 Nature에 실려"라고 답했다. 데이비온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것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데이비온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내가 읽을 수 있는 한 만족이 있었다. 하지만 만족 아래에 무언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긴장? 기대? 데이비온의 표정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표정을 관리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훨씬.


"훌륭했어."


"시연 데이터 정리해야 해. 해롤드의 기억 복원 패턴에서 운동피질이 선행한 것, 논문에 추가해야 —"


"그건 내일 해.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야 해."


"사람들."


"상원 보좌관 두 명이 리셉션에서 기다리고 있어. 보험 적용 법안 관련해서. 그리고 Nature 기자가 인터뷰 요청했어."


"데이비온, 나는 —"


"15분이면 돼. 악수하고, 웃고, 두어 마디 하면 된다."


"너한테는 호흡이고 나한테는 전신마취야."


"마취에서도 잘 깨어나잖아."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표 직후의 에너지 저하 상태에서 사교적 가면을 쓰는 것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데이비온은 그것을 알면서도 요구했다. 그가 옳았다. 이런 순간에 만들어지는 관계가 나중에 법안을 통과시키고, 보험을 적용시키고, 결국 마거릿 같은 사람들에게 기술이 닿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데이비온을 따라 리셉션 홀로 향했다.


리셉션은 Moscone Center의 3층,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열렸다. 샌프란시스코의 11월 오후. 해가 기울면서 SoMa의 건물들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유리벽 너머로 그 풍경이 보였고, 실내에서는 와인과 카나페가 돌아다녔다.


나는 이 공간의 소리를 습관적으로 분석했다. 와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낮은 대화. 그 아래 깔린 기계음. BCI 인터페이스의 미세한 작동음. 청각 증강 사용자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 주파수 대역이 있었다. 그들은 일반 대화를 하면서 동시에 초음파 대역으로 사적인 코멘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공식 대화의 아래에 숨겨진 사적 대화. 이것은 이 세계의 일상이었다.


상원 보좌관 중 한 명, 로렌 매키니는 감정 조절 BCI를 사용하고 있었다. 관자놀이 뒤의 미세한 빛으로 알 수 있었다. 감정 조절 BCI는 편도체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조절하여 불안과 긴장을 억제한다. 협상이나 정치에서 이점을 주는 기술.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권력이었다.


"닥터 태드, 정말 인상적인 시연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메모리 브릿지가 보험에 적용되면 —"


데이비온이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책 이야기로 넘어갈 때 데이비온이 나보다 적합했다. 나는 기술을 말했고 데이비온은 시스템을 말했다. 나는 한 명의 환자를 말했고 데이비온은 백만 명의 유권자를 말했다. 나는 물러났다. 데이비온에게 상원 보좌관을 맡기고, 카나페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유리벽 너머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Moscone Center 앞 Howard Street.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피켓을 들고 있었다. 여기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피켓의 문구는 읽을 수 있었다.



SENSE EQUALITY NOW



YOUR UPGRADE, OUR DOWNGRADE



BCI IS A RIGHT, NOT A LUXURY



감각 평등 운동. SenseJustice라는 이름의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지난 2년 사이에 급성장한 운동이었다. 이들의 주장: 감각 증강 BCI는 기본권이다. 의료용 BCI가 보험 적용을 받듯, 모든 시민이 기본적인 감각 증강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은 부유층에게 더 날카로운 감각을, 빈곤층에게 둔해지는 감각을 배분하고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다.


나는 이 운동을 알고 있었다. 데이터로. 시위 참여자 수의 증가 곡선,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 빈도, 의회 청원 서명 수. CORTEX의 PR 팀이 주간 보고에서 다루는 항목이었다.


데이터로.


시위대 중에 한 여자가 유리벽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그녀의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양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이 건물을. 이 유리벽 뒤의 리셉션을. 와인 잔을 들고 서 있는 우리를.


나는 그 여자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감각 빈부격차. 이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3년 전, SenseJustice의 창립자가 TED에서 발표했을 때였다. 나는 그 발표를 흥미롭게 보았지만, 내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CORTEX는 치매 환자를 위한 기술을 만드는 회사였다. 감각 증강 시장은 SenseUp 같은 소비자 기업의 영역이었다. 우리는 치료를 했다. 그들은 상품을 팔았다.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하지만 아르티스의 발표가 떠올랐다. "시각은 독재자입니다." 시각만이 아니었다. 감각 자체가 독재자가 되고 있었다. 더 많이 느끼는 자가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느끼는. 나선형의 격차. 되돌릴 수 없는.


CORTEX의 기술은 이 나선의 어디에 있었을까. 치매 환자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의료 행위였다. 하지만 기억을 기록하고 백업하는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그것은 감각 증강의 최상위 계층이 된다. 기억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추억을 고화질로 재생할 수 있는 자와, 자연적으로 퇴색해가는 기억만을 가진 자.


나는 이 생각을 3초 정도 했다. 그리고 와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 괜찮았다. 미각 증강 BCI가 없어도 충분히 맛있었다. 이 정도의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권이었지만.


유리벽 너머의 시위대 사이로 경찰이 보였다. 시위를 정리하는 것 같았다. 피켓이 하나씩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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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셉션이 30분쯤 진행되었을 때, 데이비온을 찾았다. 로렌 매키니와의 대화가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데이비온은 홀의 구석, 비상구 옆의 어둑한 공간에 서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남자 한 명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를 나는 처음 보았다. 군복은 아니었지만 자세가 군인이었다. 어깨의 각도, 체중의 배분, 주변을 의식하는 시선의 패턴. 이런 것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시각의 언어로.


데이비온이 나를 알아차렸다. 표정이 0.2초 변했다가 돌아왔다. 무엇이었을까. 당혹? 불편? 아니면 그냥 타이밍이 나쁘다는 판단? 나는 그때 그 미세한 변화를 등록했지만 해석하지 않았다. 데이비온에게는 내가 모르는 미팅이 항상 있었다. COO의 업무. 투자자, 파트너, 정부 관계자. 모든 만남이 나에게 보고될 필요는 없었다.


데이비온이 그 남자와 악수를 마치고 나에게 걸어왔다.


"누구야?"


"정부 쪽. BCI 규제 관련 자문을 요청받았어."


"규제?"


"신경주권법 관련해서. 뇌 데이터의 법적 지위. 우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논리적인 설명이었다. CORTEX는 뇌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였다. 뇌 데이터에 대한 법적 프레임워크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형성되면 사업에 도움이 되었다. 데이비온이 정부 관계자와 접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그 남자의 자세가 군인의 자세였다는 것을. 나는 등록했지만 해석하지 않았다.


등록했지만 해석하지 않는 것.


돌이켜 보면,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맹점이었다. 데이터를 수집하면서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분석하는 것.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라는 서랍에 넣어두는 것. 그 서랍을 여는 일은 대부분 오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이었다.



리셉션이 끝난 뒤. 저녁 7시.


Moscone Center 앞의 Howard Street는 이미 조용해져 있었다. 시위대는 떠난 뒤였다. 바닥에 전단지 한 장이 남아 있었다. 바람에 날리다가 내 발밑에 멈추었다. 주워서 읽지는 않았다. 주울 이유가 없었다. 이미 아는 내용이었으니까. 데이터로.


이틀 뒤의 강연도 여기 Moscone Center에서 열릴 것이었다. 같은 건물, 같은 무대. 이틀 뒤에 나는 다시 이 길을 걸을 것이고, 비가 올 것이고, 101번 고속도로에서 모든 것이 깨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정점이다.


나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시연 성공. 91퍼센트 매칭률. 스탠딩 오베이션. 43만 라이브 시청자. 상원 보좌관과의 접촉. Nature 인터뷰 확정.


숫자로 정리하면 완벽한 하루였다. CORTEX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공개 행사.


정점이었다.


그리고 정점에 서면 모든 방향이 아래다.


이것은 물리학이 아니라 상식이다. 하지만 상식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정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꼭대기에서는 바람이 세서, 올라온 길이 보이지 않고, 내려갈 길도 보이지 않고, 그냥 바람만 분다.


나는 차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왔다.


"...CORTEX의 공개 시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메모리 브릿지 기술의 상용화가 가시화되면서 BCI 관련 주가가..."


내 이름이 뉴스에서 나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운전했다. Palo Alto까지. 101번 고속도로. 같은 길. 항상 같은 길. 가드레일의 반사판이 헤드라이트를 받아 리듬을 만들었고, 만(灣)의 수면이 공항의 불빛을 머금고 어둡게 호흡하고 있었다. 이틀 뒤에도 이 풍경을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그날 밤은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올리브 나무가 뒷마당에 서 있었다. 가로등의 빛을 받아 잎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1초.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노트북을 열었다. 오늘의 시연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롤드의 뇌 활성 패턴. 운동피질에서 시작되는 기억 복원의 순서. 이것을 논문으로 —


그리고 습관적으로 다른 파일을 열었다.


어머니의 데이터.


잡음. 잡음. 잡음.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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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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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에서는 바람이 분다. 바람에 눈이 마르고, 눈이 마르면 깜빡이게 되고, 깜빡이는 순간 아주 짧은 순간 어둠이 온다.


나는 그 어둠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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