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빛의 제국]
깨지는 것에는 소리가 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세계관이 깨지는 소리. 세 번째 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몸 전체로 듣는 것이다. 뼈가 진동하고, 내장이 뒤틀리고, 뇌가 멈추는 그런 종류의.
2041년 11월 5일. 밤 10시 23분. 101번 고속도로 남행선, 산 마테오 브릿지 인근.
사고가 일어난 그 밤이다.
강연장을 나서고, 비를 맞으며 걷고, 차에 타고, 쇼팽이 흘러나오고.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횡단보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귀 뒤의 BCI 인터페이스가 빨간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오작동 표시. 남자가 귀를 감싸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감각 피드백 루프의 고장.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빨갛게 들어왔다. 수막 현상. 스티어링이 의미를 잃는 순간. 관성이 나를 밀고,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세상을 삼키고, 유리가 깨지고 —
여기까지는 기억이 반복하는 부분이다.
적지 않은 것은 그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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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소리였다.
빗소리. 꾸준하고 무심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리는 비. 도로 위의 빗소리는 타이어가 물을 가르는 소리와 섞여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 사고 현장을 비켜가는 차들의 소리가 가까워졌다 - 멀어지는 도플러 효과로 - 파도처럼 밀려왔다 물러갔다.
나는 운전석에 있었다. 안전벨트가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에어백이 터져 있었다 - 얼굴에 닿아 있는 천의 감촉과 화학물질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나트륨 아지드가 연소할 때 나는 냄새. 독특하고 날카로운. 나는 이 냄새의 화학식을 알고 있었다. NaN₃. 이런 순간에도 화학식이 떠오른다는 것이 분석의 잔인한 효율성이다.
눈을 떴다. 감았다. 떴다.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처음에도 적었다. 하지만 그때 적지 않은 것이 있다. 눈을 뜨고 감는 것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시간. 그것은 0.5초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0.5초 안에 뇌가 하는 일의 양은 측정할 수 없었다.
뇌는 먼저 오류를 의심한다. 눈이 열려 있는데 보이지 않으면 첫 번째 가설: 어둠이 너무 짙다. 기각. 도로에는 가로등이 있었고,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있었다. 두 번째 가설: 눈을 무언가 가리고 있다. 손으로 확인. 에어백 천을 밀어냈다. 변화 없음. 기각. 세 번째 가설: 뇌의 시각 처리가 일시적으로 중단. 가능성 있음. 뇌진탕에 의한 시각피질의 일시적 억제. Cortical spreading depression. 이것은 일시적이다. 기다리면 돌아온다.
나는 세 번째 가설에 매달렸다. 과학자니까. 데이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을 선택하고, 추가 데이터를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프로토콜이었다.
일시적이다. 기다리면 돌아온다.
이 문장을 나는 어둠 속에서 반복했다. 소리 내어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리가 가까워졌다. 사이렌. 소방차 사이렌의 주파수는 약 800~1,200Hz를 왕복한다. 나는 그것을 주파수로 분해했다. 습관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플러 효과로 주파수가 감소 없이 계속 상승. 가까워지기만 했다. 멈추었다.
문 여는 소리. 금속이 뒤틀린 문을 여는 유압 커터의 소리. 삐걱. 찢어지는 소리.
"의식 있으세요?"
남자 목소리였다. 소방관이거나 구급대원. 나는 - 이것도 솔직하게 적어야 한다 - 그 순간 가장 먼저 한 것이 "네"라고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목소리의 방향에서 무언가를 보려고 했다.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네. 의식 있습니다."
"움직일 수 있으세요?"
"왼쪽 다리가 끼어 있는 것 같습니다."
촉각. 왼쪽 무릎 아래에 금속이 눌려 있었다. 통증은 이상하게 심하지 않았다. 아드레날린. 에피네프린이 통증 수용체를 억제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도 일시적이다. 아드레날린이 빠지면 통증이 올 것이다.
일시적.
나는 그 단어를 모든 것에 붙이고 있었다. 시각 상실. 일시적. 통증 부재. 일시적. 이 상황 전체가. 일시적.
구급대원이 목에 보호대를 씌웠다. 들것에 올려졌다. 빗방울이 얼굴에 닿았다. 차가웠다. 이것은 신기하게도 강연장을 나올 때 맞은 비와 같은 비였다. 한 시간 전에는 감상의 재료였던 비가, 지금은 그냥 차가운 물이었다. 같은 비. 다른 세계.
앰뷸런스에 실렸다. 문이 닫혔다. 빗소리가 줄어들었다. 대신 앰뷸런스 내부의 소리가 선명해졌다. 모니터의 전자음. 산소 공급기의 씨익 소리. 구급대원의 라디오. 내 심장 소리가 모니터를 통해 전자음으로 변환되어 돌아왔다. 분당 112회. 빠른 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닥터 태드, 눈을 깜빡여보실 수 있으세요?"
"깜빡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내 목소리가 평온했다. 공황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나는 환자가 아니라 과학자로서 이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시각 상실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시신경 손상, 시각피질 손상, 망막 박리, 유리체 출혈. 각각의 예후가 다르다. 정확한 진단 전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과학적 태도.
앰뷸런스가 출발했다. 사이렌이 울렸다. 이번에는 안에서 들었다. 금속 벽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사이렌 소리는 바깥에서 듣는 것과 질감이 달랐다. 더 날카롭고 가까웠다. 마치 소리가 이 좁은 공간 안에서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나처럼.
아니. 이런 비유는 하지 말자. 감상은 지금 필요 없다. 데이터가 필요하다. 진단이 필요하다. 일시적인지 영구적인지를 판별할 데이터가.
구급대원이 내 눈에 펜라이트를 비추었다.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지만, 구급대원이 하는 일을 알 수 있었다. 동공 반사 검사. 빛에 동공이 수축하는지를 확인하는 것.
"동공 반사는 어때요?"
내가 물었다. 평온한 목소리로. 과학자의 질문으로.
잠시 말이 끊겼다.
"좌측 동공 반사 정상입니다. 우측은 미약합니다."
비대칭 동공 반사.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시신경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신경이 양쪽 모두 손상되었으면 양쪽 동공 반사가 모두 소실되어야 한다. 한쪽만 미약하다면 뇌의 문제. 후두엽. 시각피질.
나는 이 추론을 머릿속에서 진행하면서, 동시에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추론의 아래에서, 분석의 아래에서, 과학적 태도의 아래에서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찬물처럼. 발끝부터.
나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붙이면 인정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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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ford Medical Center. 응급실.
시간 감각이 흐려져 있었다. 앰뷸런스에서 내려지고, 밝은 조명이 - 보이지 않았지만 조명이 켜져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서 유추했다 - 켜진 공간으로 이동하고, 여러 사람의 손이 나를 만졌다. 장갑 낀 손. 라텍스의 감촉. 차가운 청진기. 혈압 커프.
"닥터 태드, 저는 응급의학과 닥터 모리슨입니다. 지금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닥터 모리슨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눈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목소리만 있었다. 50대 남성. 약간 쉰 목소리. 야간 근무의 피로가 묻어 있는. 이 사람의 눈은 무슨 색일까. 나는 상대의 눈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하고 있었다.
이것이 아르티스의 일상이었다.
이 생각이 왜 이 순간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아르티스는 태어나서 한 번도 상대의 눈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목소리로 사람을 읽었다. 발소리로. 커피 냄새로. 나는 지금 원치 않게 그녀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것은 '방식'이었고, 나에게 이것은 '상실'이었다.
같은 상태. 다른 무게.
"CT 스캔을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뇌출혈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CT 스캐너로 이동했다. 좁은 터널 안에 눕는 것.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이 소리를 나는 알고 있었다. 메모리 브릿지의 연구 과정에서 수백 번 들은 소리. MRI와 CT의 소리는 다르다. CT는 X선관이 회전하는 소리. 균일하고 기계적인. MRI는 경사 자기장 코일의 두드림. 불규칙하고 폭력적인. 지금은 CT였다.
익숙한 기계의 소리가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내가 아는 세계의 소리였으니까. 이 기계가 데이터를 생성하고, 데이터가 진단을 만들고, 진단이 치료 방침을 결정할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신뢰했다. 데이터를 신뢰하는 것. 그것이 나였다.
CT가 끝나고 다시 응급실로 돌아왔다.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15분? 30분?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시계를 볼 수 없었다. 핸드폰은 사고 때 어딘가로 날아갔을 것이다. 나는 시간을 모르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이것이 예상외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시간을 모르는 것. 시각이 없으면 시간의 감각이 흐려진다. 빛의 변화로 시간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남는 것은 내부의 시계뿐이다. 심장 박동. 호흡. 하지만 아드레날린이 이것들을 교란시키고 있었다. 나는 시간 위에 떠 있었다. 고정점 없이.
통제의 상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 시각의 상실이 아니라 시각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지는 통제. 내가 세상을 스캔하고, 분석하고, 예측하고, 관리하는 능력. 그것이 한 번에 무너진 것이었다.
"닥터 태드."
닥터 모리슨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어조가 달랐다. 미묘하게. 전보다 느리고, 단어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나쁜 소식을 전할 때 의사들이 취하는 톤이었다. 나는 이것을 알았다. 수많은 환자의 가족에게 예후를 설명해온 사람으로서.
"CT 결과가 나왔습니다."
"말씀하세요."
내 목소리가 여전히 평온했다.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뇌출혈은 없습니다. 다행히 두개골 골절도 없고요."
"그러면 시각 상실의 원인은."
"후두엽 시각피질에 부종이 있습니다. 충격에 의한 contrecoup injury로 보입니다. 전두부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반대쪽 후두엽에 반충 손상이 생긴 겁니다."
반충 손상. contrecoup. 나는 이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 뇌가 두개골 안에서 관성에 의해 반대쪽 벽에 부딪히는 것. 전두부 충격 → 후두엽 손상. 그리고 후두엽은 시각피질이 있는 곳.
"부종이면 감소하면 시각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과학자로서.
다시 대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길었다.
"닥터 태드. 부종뿐 아니라 시각피질 내부에 미세 출혈의 흔적이 있습니다. 정밀 MRI를 내일 아침에 진행해야 하지만 CT 소견만으로 볼 때 —"
"어느 정도의 손상이요?"
"V1을 중심으로 양측성입니다."
V1. 일차 시각피질. 뇌의 모든 시각 정보가 처음으로 처리되는 곳. 이것이 양측성으로 손상되었다면 —
"부종이 빠져도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까."
내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분석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내일 MRI 결과를 봐야 확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
"확률로 말씀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확률의 사람이었다. 마거릿에게 12퍼센트를 말하지 못했던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는 확률을 요구했다.
"정밀 검사 전이라 정확한 수치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CT 소견의 범위와 양상으로 볼 때 완전한 시각 회복의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높지 않다.
의사의 언어였다. '높지 않다'는 '낮다'의 완곡어법이었다. 10퍼센트 이하. 어쩌면 5퍼센트 이하.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한다. 정확하게. 이후의 많은 것이 흐려지고 뒤섞이지만, 이 순간은 선명하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소리와 냄새와 촉감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높지 않다'는 세 음절이 내 귀에 닿은 순간.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정말로. 0.5초간. 아무것도. 공백이었다. 컴퓨터가 처리할 수 없는 입력을 받았을 때 프리즈하는 것처럼 뇌가 멈추었다. 데이터를 접수했지만 처리 경로가 없었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될 수 있다'를 처리할 경로가.
0.5초 뒤에 분석이 재부팅되었다.
"MRI를 최대한 빨리 잡아주세요. 가능하면 3T 이상의 장비로. 확산텐서영상(DTI)도 추가해주시고요. 시각피질과 외측슬상체 사이의 시방선(optic radiation) 손상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내 목소리가 지시하고 있었다. 환자가 아니라 동료 의사처럼. 아니 자기 자신을 환자로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처럼.
닥터 모리슨이 무언가를 더 말했지만,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시나리오를 돌리고 있었다. V1 양측성 손상의 범위에 따른 시각 예후. 부분 손상이면 맹점은 있지만 일부 시각은 보존될 수 있다. 완전 손상이면 피질성 실명. cortical blindness. 눈은 멀쩡하지만 뇌가 이미지를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
하지만 피질성 실명이어도 BCI를 통해 시각피질을 우회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면 —
IRIS.
이 생각이 사고 후 45분 만에 떠올랐다.
나는 누워서, 어둠 속에서, 왼쪽 다리에 부목이 감긴 채로, 소독약과 에어백 화학물질 냄새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IRIS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프로젝트를. 2시간 전까지는 '시각 BCI의 이론적 가능성'이었던 것이. 지금은 나 자신의 눈이 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것이 과학자의 반응인가.
아니면 공포에 대한 방어기제인가.
구분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둘 다였으니까.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사람. 해결책을 찾는 것이 연구이면서 동시에 도피.
"데이비온에게 연락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네?"
"데이비온 G. 제 회사 COO입니다. 연락처는 핸드폰이 없어서. CORTEX로 전화해주시면 됩니다."
닥터 모리슨이 간호사에게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천장을. 눈은 열려 있었다. 어둠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기록해둘 필요가 있는 현상이었다. 어둠이 균일하지 않았다. 완전한 검정이 아니었다. 희미한 빛의 입자 같은 것이 시야 전체에 흩뿌려져 있었다. 텔레비전의 정전기 화면 같은. 이것을 visual snow라고 한다. 시각피질이 입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노이즈를 생성하는 것. 뇌가 '아무것도 없음'을 견디지 못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뇌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것도 IRIS에 필요한 원리가 아닌가. 외부 입력이 없어도 뇌가 자체적으로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것. 이것을 제어할 수 있다면 —
나는 앰뷸런스 안에서도 이미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의식하지 못한 채.
과학자의 뇌는 꺼지지 않는다. 세상이 꺼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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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갔다.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병동의 소리가 바뀌고 있었다. 복도의 발소리가 줄어들고, 기계음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간호사의 대화가 속삭임이 되었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데이비온이 왔다. 자정이 넘어서였을 것이다. 그의 발소리를 놀랍게도 알아들었다. 데이비온의 구두 소리. 가죽 밑창이 리놀륨 바닥에 닿는 소리. 다른 사람들은 운동화나 간호사 신발을 신고 있었다. 구두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달시."
그의 목소리. 나는 데이비온의 목소리를 눈이 아닌 귀로만 들었다. 20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그의 목소리만 들으니 낯설었다. 항상 그의 표정을 함께 읽으면서 들었기 때문에 목소리만 분리해서 들은 적이 없었다.
데이비온의 목소리에는 통제가 있었다. 감정을 억누르는 종류의. 나처럼 분석으로 감정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절제. 데이비온은 감정을 느끼지만 표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분석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방식의 방어.
"상태를 들었어."
"CT 소견. 내일 MRI."
"알아. 닥터 모리슨에게 브리핑 받았어."
"회사 상황은?"
데이비온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약간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자기 눈 상태 대신 회사 상태를 물었으니까.
"시연 후 긍정적이야. 주가는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해. 내일 시장이 이 소식을 알면 —"
"이미 관리하고 있어. PR 팀에 언론 대응 지침 내렸고, 공식 발표는 MRI 결과 확인 후에."
데이비온은 효율적이었다. 자정에 병원에 오면서도 이미 위기관리 프로토콜을 가동시킨 것이다. 이것이 그가 필요한 이유였다. 나는 기술을 만들었고, 그는 기술이 현실과 만날 때 생기는 모든 마찰을 관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IRIS를 앞당겨야 해."
내가 말했다.
다시 말이 없었다.
"뭐?"
"IRIS. 시각 BCI. 검토 단계에 있는 거."
"달시, 지금 그 이야기를 —"
"데이비온." 나는 어둠 속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방향을 모르면서. "내 시각피질이 손상됐어. 하지만 IRIS의 원리를 적용하면 시각피질을 우회하거나, 손상되지 않은 영역을 활용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도 뇌의 다른 영역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게 만들 수 있어."
"너 지금 사고를 당한 지 세 시간밖에 —"
"세 시간이면 충분해. 아르티스의 데이터가 필요해. 그리고 내 뇌 스캔. 내일 MRI 할 때 CORTEX의 연구용 프로토콜로 추가 시퀀스를 요청해야 해. 시각피질의 잔존 기능 매핑, 시방선의 연결성 분석 —"
"달시."
데이비온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낮아졌다. 부드러워진 것이 아니라 무거워진 것이었다.
"잠깐만 멈춰."
나는 멈추었다.
"일단 쉬어. 내일 MRI 결과를 보고 —"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준비는 할 수 있어."
"준비가 아니라 도피야."
이 문장이 어둠 속에서 나를 멈추게 했다. 데이비온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20년간. 그는 항상 내 판단을 존중했다. 동의하지 않을 때도 자기 의견을 제시하되, 내 결정을 최종적으로 따랐다.
도피.
"아니야."
내가 말했다. 빠르게. 너무 빠르게.
"지금 네가 하는 건 IRIS를 생각하는 건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거야."
"나는 직면하고 있어. CT 소견을 이해하고, 가능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직면이야."
"아니야, 달시. 그건 이해하는 거지, 느끼는 게 아니야."
느끼는 것.
나는 어둠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데이비온이 맞았을까. 나는 사고 후 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두려워하지도, 분노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CT 소견을 분석하고, 동공 반사를 확인하고, MRI 프로토콜을 지시하고, IRIS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계산했다. 이 모든 것이 분석이라는 방어 라인이었다.
하지만 방어 라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한 반응처럼 느껴졌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찾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니까.
데이비온이 의자를 끌어다 앉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 가까이 앉았다.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소리로 추정했다. 오른쪽, 약 60센티미터 거리.
"잠깐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누워 있어."
데이비온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COO가 아니라 20년 된 친구의 목소리였다.
나는 누워 있었다. 눈을 뜬 채. 보이지 않는 천장을 향해.
어둠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 아니었다. visual snow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뇌가 만들어낸 노이즈. 존재하지 않는 빛의 입자들. 뇌가 '아무것도 없음'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상.
데이비온이 옆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호흡 소리가 들렸다. 균일하고 깊은. 이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닻이 되었다. 시간 위에 떠 있던 나를 잡아주는.
복도에서 간호사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어딘가에서 다른 병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빛이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알 것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로. 나는 모를 것이다. 나에게 새벽은 간호사의 발소리가 바빠지는 것, 병동의 소리가 다시 커지는 것, 아침 식사의 냄새가 복도에 퍼지는 것으로 올 것이었다.
이것이 앞으로의 모든 아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생각이 분석이 아니라 감각으로 왔다.
가슴이 조여들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나는 그것을 반사적으로 분석하려 했다. 편도체의 과활성화. 교감신경의 항진. 스트레스 반응의 생리적 표현.
하지만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는 속도보다 감정이 올라오는 속도가 빨랐다. 분석이 따라잡지 못했다. 방어선이 뚫렸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울었다. 눈에서 물이 흘렀다. 작동하지 않는 눈에서. 보지 못하는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볼을 타고 베개를 적셨다.
데이비온이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자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호흡 소리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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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는 것에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 세계관이 깨지는 소리.
하지만 사람이 깨지는 소리는 없다.
소리 없이 깨진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