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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생각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면

by 탱탱볼

#1 지하철을 타고 약속을 가는 길


어떤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이렇게 돌아서 가는 거 맞지?"

"네? 어디를 돌아서 가요?"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목적지가 어디세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고민하던 할아버지는 "그걸 모르겠어,,,"라고 답하셨다.

그리곤 앞을 향해 걸어가셨는데 천 원짜리 돈을 꼭 쥐고 있던 손이 떠오르며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인지장애가 있으신데 나왔다가 집을 못 찾아가시면 어떡하지? 전철을 타고 더 복잡한 역에 간다면 더 길을 찾기 힘들 텐데 사람을 찾는다고 가끔 전송되는 안전문자에 그 할아버지가 뜬다면 마음이 불편할 거 같았다.

재빨리 민원신고 번호를 찾아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전철 도착이 늦었고 할아버지는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시면서 서성이셨다.

문자로 승강장 위치까지 전달했는데 전철이 들어오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전철을 타면 안 될 거 같아 기다리면 길을 찾아줄 사람이 올 거라고 알려드리려 할아버지 쪽으로 향하는데 저쪽에서 안내요원이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려드리며 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2 어버이날을 맞아 방문한 외할머니댁


어버이날이 며칠 안 남아 결혼식에 참석한 뒤 나는 바로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지난번 할머니가 뇌를 검사하러 병원에 다녀왔는데 군데군데 비어있는 뇌 사진을 보고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몇 달 사이 눈에 띄게 나빠진 할머니를 보며 속상해했는데 나 역시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말도 거의 하지 않고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손으로 계속 몸을 긁는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잘 삼키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제 크게 의미 없는 선물은 없는 거 같았다. 그래도 어버이날이니 예쁜 케이크를 예약해서 식사 후에 함께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엄마는 "할머니가 촛불 끄는 걸 좋아하지" 하며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할머니가 촛불을 끌 수 있게 도와줬는데 할머니는 초를 불지 않았다. "이젠 이것도 안되네,,"하며 엄마의 속상함이 하나 더 늘었다.

집에 오는 길 할머니의 예전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나를 흘겨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참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와 내가 사 온 컬러링북을 펼치고 색칠공부에 열중하는 모습, 책을 읽는 모습! 할머니는 참 집중력이 좋았다. 이건 몇 달 전만 해도 볼 수 있었는데 나도 속상함이 커졌다.





#3 역으로 가는 길 흑염소집 앞


우리 동네 지하철역을 향해 올라가는 길목에는 흑염소집이 자리해 있다. 이곳은 동네 할아버지들의 핫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며칠 전 출근하는 길에 지팡이를 짚고 조금은 거동이 힘들어 보이는 다섯 명의 할아버지들이 함께 언덕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전이라면 '건강이 안 좋으셔서 힘드시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요번엔 달랐다.

'지팡이를 짚고 혼자 이 어려운 길을 천천히 내려가 원하는 식당에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다니 건강하시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이제 혼자 걷지 못하신다. 휠체어로 옮겨드리거나 할머니 몸을 잡고 지탱해 함께 조금씩 움직이는 일만 가능하다. 노화를 알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이 들어 점점 몸과 정신의 건강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키본 내가 생각하는 건강의 척도가 달라진 것이다.



몸이 조금 불편해도 내가 혼자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면

혼자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건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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